공자의 논어와 플라톤의 대화편의 철학 전통을 계승하는 고급 학술대담
공자의 논어나 플라톤의 대화편이 예증하듯이 동서를 막론하고 철학은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철학의 길은 철학자 이승종이 어떻게 철학과 만나서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그것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후학 윤유석에게 생생히 들려주는 대화의 형태로 진행된다. 이승종과 윤유석은 아주 개성 있고 활기 넘치는 대화와 토론으로 철학함을 생중계하고 있다. 윤유석의 질문은 정곡을 찌르고 이승종은 예상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에 대답한다. 둘 사이에 주고받는 사유는 밀도가 아주 높아 독자들도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하게 된다. “철학은 가르칠 수 없고 철학함은 가르칠 수 있다”는 칸트의 말처럼, 독자들은 이 책에서 창의적으로 철학함의 실제를 목격하고 그 과정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이승종이 평생에 걸쳐 지은 일곱 권의 책을 본격 토론에 부치다
철학의 길』에서는 그동안 이승종이 지은 일곱 권의 책을 주제별로 나누어 한권 한권 읽고 토론하는 북 토크(Book Talk) 형태의 실제 강좌가 열두 번에 걸쳐 전개된다. 매 강좌는 교재가 되는 이승종의 책에 대한 저자의 발제, 윤유석과의 심도 있는 난상 토론, 수강생들과의 질의응답순으로 진행된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철학’ ‘현대철학’ ‘영미철학’ ‘대륙철학’ ‘비교철학’ ‘한국철학’ ‘역사철학’ ‘자연주의’ ‘앞으로의 길’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승종은 자신이 ‘철학의 길’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와 그 길에서 무엇을 배우고 지었는지를 중심으로 철학의 다양한 주제를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철학은 미리 정해져 있는 길을 따라가는 활동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밝혀 나가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강조점이다.
(2) 현대철학의 지형도는 크게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으로 나누어진다. 이승종은 두 진영이 각각 ‘데카당스’와 ‘과학주의’라는 질병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륙철학의 대표자인 데리다와 영미철학의 대표자인 비트겐슈타인에게서 ‘해체주의’와 ‘자연주의’라고도 일컬어지는 대안적 사유를 이끌어 낸다.
(3) 영미철학에 대한 논의는 비트겐슈타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과학주의에 빠진 오늘날의 영미철학과는 달리, 사유를 특정한 이론적 틀 속에 가두고자 하지 않았다. 논리학과 수학이 더 이상의 아무런 원리나 토대에도 의존하지 않는, 사람의 활동이라는 사실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4) 대륙철학에 대한 논의는 하이데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이 세계가 시간의 지평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우리에게 매 순간 새롭게 드러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의 ‘존재’를 고정적으로 파악되는 세계 속 ‘존재자’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통적 형이상학에 제기하는 그의 비판이다.
(5)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승종의 비교철학 연구 역시 오늘날의 철학이 빠진 데카당스와 과학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유가, 불교, 도가 등 동양의 전통은 서양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2인칭적’ 사유를 함의하고 있다. 이승종은 동양철학의 2인칭적 사유가 지닌 현대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다방면의 시도를 전개한다.
(6) 철학이 2인칭적 대화의 활동이라는 사실은 이승종이 한국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2인칭적 대화는 언제나 대화에 참여한 인물들이 놓인 구체적인 삶의 맥락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승종은 자신의 철학적 여정에 커다란 영향을 준 한국의 인물인 고유섭, 서영은, 김형효, 박이문 등의 사유가 지니는 의의와 한계에 대해 논평한다.
(7) 역사철학에 대한 이승종의 관심 역시 2인칭적 대화에 대한 고찰에 근거를 두고 있다. 2인칭적 대화의 조건이 되는 한국인의 삶이 놓인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 역시 중요한 맥락이다. 이승종은 우리의 사회적 현실에서 제기되는 주요 쟁점들을 비판적 시선으로 탐구하면서 한국이라는 맥락을 성찰한다.
(8) 2인칭적 사유는 우리가 ‘사람의 삶의 형식’에 따라 주어지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하는 일종의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승종은 2인칭적 사유를 통해 제시된 자연주의를 ‘사람의 얼굴을 한 자연주의’라고 명명한다. 우리가 어떠한 ‘삶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자연이 어떠한 얼굴로 우리에게 주어지는지는 달라지게 된다.
(9) 윤유석은 이승종이 제시한 2인칭적 사유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철학적 가능성을 예상하면서 앞으로의 길을 그려 본다. 2인칭적 사유는 세계를 사물들의 총체로서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그러한 세계가 바로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운 존재사건의 연속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2인칭적 사유가 보여 주고자 하는 진리이다.
이 책은 ‘대화’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쓰였다. 여기서 ‘대화’는 이 책을 구성하는 형식일 뿐만 아니라, 이 책이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즉, 철학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1인칭적 독백이나 3인칭적 관찰이 아니라, 2인칭적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철학이 우리에게 밝혀 주는 진리란, 주관적 심리 상태에 대한 진리도 아니고, 객관적 사물에 대한 진리도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성립하는 ‘사람의 진리’와 ‘사람의 사실’이라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이다.
이승종과 윤유석은 세계에 대한 해석의 시도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철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세계에 대한 완결된 해석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철학이 무한히 풍요롭고 다양하게 뻗어 나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타자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해석하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철학의 길은 대화의 해석학이 계속되는 동안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다.
이승종과 윤유석이 진행한 대화의 텍스트가, 이승종이 지금까지 지은 일곱 권의 철학 서적이라는 점에서 철학의 길은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이 책의 부제가 시사하듯이 대화의 해석학이라는 미래의 철학을 향한 것이자 그 학문에 입각한 현재의 실천이기도 하다. 대화의 해석학이라는 철학은 철학의 길이 그러하듯이 도상에 있는 진행형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