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태주는 왜 시를 쓰는가. 책 뒤에 수록된 산문에서 그는 삶을 위해서라고 쓴다고 밝히고 있다. 시는 시인의 ‘생존 방법’이며, ‘말로 사람을 살리는’ 작업이다. 언뜻 ‘왜소해’ 보이는 장르인 시의 ‘영광과 축복’은 그곳에 있다.
오늘날 도시화, 과학화로 삶은 자연스러움과 멀어졌고, SNS가 낳은 상호비교는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켰다. 현대인의 자존감은 이제 바닥이다. 시인은 시인답게 ‘힐링’ 같은 상업적인 표현에 완곡한 거부감을 표현하지만, 그것에 대한 장삼이사들의 관심과 지향까지 탓하지는 않는다. 감성의 고양으로 인한 정서의 만족, 그리고 살가운 언어를 통한 위로와 응원, 그것이 독자와 시인이 따로 또 같이 사는, 살아남는 길이다.
사소한 듯한 아름다움으로 잃어버린 행복을 찾게 해주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21세기의 ‘국민 시인’ 나태주의 대표 시선(詩選)들. 어떻게 하면 더 생동하게 할 수 있을까. 기계적인 활자의 시선이 아닌, 움직이는 듯한 언어의 활력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책의 물성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통상의 눈으로-시-읽기를 배반하는 경험을 부여하는 방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큰 병 얻어 중환자실에 널부러져 있을 때
아버지 절룩거리는 두 다리로 지팡이 짚고
어렵사리 면회 오시어
한 말씀, 하시었다
얘야, 너는 어려서부터 몸은 약했지만
독한 아이였다
네 독한 마음으로 부디 병을 이기고 나오너라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
아버지 말씀이 약이 되었다
두 번째 말씀이 더욱
좋은 약이 되었다.
- 나태주, 「좋은 약」
강병인은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래피를 대중화시키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해온 작가다. 한글의 창제원리를 작품 철학으로 삼아 한글 글꼴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알려오는 한편, 집요하게 소리 문자의 영역을 넘어 뜻 문자로서의 가치를 글씨에 담아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그의 글씨는 단순한 흘림글씨나, 과도한 디자인과 상업성에 천착하는 캘리그래피와 궤를 달리한다.
이 작품만이 아닌, ‘강병인 쓰다’ 시리즈 전체와 그의 창작세계를 통틀어 그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한글의 제자원리에서 드러나는 천인지(天人地)와 합자, 순환의 원리다. 하늘(초성)과 땅(종성), 사람(중성)의 세 요소가 합하여 문자를 이루는 원리에서 한글의 입체성과 예술성을, 모음의 변화를 통해 기운의 생동과 자연의 변화를,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봄’이라는 글자에서 꽃의 생장이 그려지고, ‘바람’이라는 글자에서 불어오는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다.
강병인의 글씨 도구는 붓이다. 모필의 탄력을 이용해 소리가 없어도 음률이 와닿고, 빛깔이 없어도 현란한 색채감을 느끼게 한다. 시가 가지는 고유한 미적 요소들을 표현해낼 수 있는 최적의 도구다. 강병인의 글씨는 ‘소리 문자’ 한글에 ‘뜻 문자’의 기능을 부여해 자연의 미세한 변화와 사람의 다채로운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여기에 붓이 가지는 미적 기능을 더해 먹먹한 문자향(文字香)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시가 가지고 있는 감정들
시어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
활자로는 전달되거나 표상되지 않는 이야기들
획 하나하나에 스며들고 입체적으로 일어나
또 다른 시어가 되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글씨를 썼습니다.
저 옛날 왕희지가 난정서를 썼듯이.
추사를 따르는 이들이 인왕산 아래 송석원에 모여
시를 짓고 글씨를 쓰며 그림을 그렸듯이.
-강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