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자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질까? 돈은 어떤 원리로 움직일까?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이고, 경제 위기는 언제 발생할까? 실업자는 왜 생길까? 아이들도 던질 법한 질문이지만, 경제학자들은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질문은 무시한 채 현실과 아무 상관 없는 수학적 모델에만 집착한다.
-13쪽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대기업이 지배하고 은행이 허공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완전히 무르익은 자본주의 속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경제학자들은 금융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한다.
주류 경제학의 오류는 대안으로서 스미스와 마르크스, 케인스의 경제학을 알아야만 보인다.
-16쪽
자본주의는 경제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스며든 총체적 시스템이다. 그게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이 모험적 시스템은 그것의 가장 명석한 이론가들, 그러니까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를 알 때 우리 눈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17쪽
[애덤 스미스]는 부자의 특권에 맞서 싸운 사회 개혁가였다. 경쟁과 자유시장을 두둔하기는 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지주와 부유한 상인의 특권을 축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늘날 스미스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사회민주당원이 되었을 것이다.
-18쪽
누가 자본가가 되고, 누가 노동자가 될까?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평생 뼈 빠지게 일해야 할까? 스미스는 어떤 누군가가 일용직 노동자가 되든 철학자가 되든 개인의 재능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명확히 말함으로써 시대를 훨씬 앞서나갔다. 그는 오만하지 않았고, 사회적 다윈주의자도 아니었다. 부자와 빈자 사이에 지능 차이가 있다고도 믿지 않았다. 그건 그저 누가 운좋게 더 높은 신분과 지위로 태어나느냐에 따른 사회적 우연일 뿐이었다. 스미스는 성과주의를 최우선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순진하다며 일축했을 것이다.
-67쪽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의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돈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투자된다. 상품이 팔리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 즉 이윤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의 일반적 공식은 사실상 M‘ (돈) - C(상품) - M(돈)’이다.”
여기서는 욕구 충족이 목표가 아니라 화폐 축적 그 자체가 목표다. 자본가는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되고 달성한 것에 만족해서도 안 된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이윤을 재투자해야 한다.
-169쪽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쉼 없는 역동성을 추동하는 힘은 무엇일까? 자본가들은 어떤 이유로 집에 편안히 앉아 노동자들에게서 쥐어짜낸 잉여가치를 즐길 수 있을까?
-171쪽
마르크스의 변하지 않는 업적은 그가 자본주의의 역학을 정확하게 기술한 최초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현대 경제는 지속적인 과정이지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소유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사용될 때만 존재하는 것이다. 수입 역시 결코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투자될 때만 얻을 수 있다.
-187쪽
대신 ‘시장’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순진한 경제관이 득세했다. 여기선 마치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격과 물물교환만이 관건으로 떠오르고, 마치 기술이나 성장, 이윤, 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정적 균형이 구축된다. ‘신고전주의’의 이 인위적 세계가 모든 교과서를 지배하게 되는데, 그것은 종종 ‘신자유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190쪽
신고전주의는 실제 세계를 반영하지 않았음에도 탁월한 장점이 있었기에 시대의 지배 학설로 부상했다. 경제 모델을 미분과 적분을 활용한 우아한 수학 공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경제학자들이 너무 쉽게 빠져드는 방법론적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경제에서는 늘 수량과 가격, 즉 숫자가 중요한데, 수학도 숫자를 사용하기에 경제학이 수학 공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197쪽
케인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이미 묘사한 바 있는 그 수수께끼를 푼 최초의 경제학자였다. 사회는 부유한데 빈곤은 왜 발생할까? 실업자는 일하고 싶어 하는데 공장은 왜 돌아가지 않을까? 케인스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열쇠는 돈이다. 미래가 너무 불안해 보이면 사람들은 돈을 쥐고 내놓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포인트는 기대와 우연, 그리고 인간의 집단 본능이다.
-264쪽
금융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케인스는 큰 자산에 세금을 부과하자고 했다. 대상은 주로 상당 재산을 물려받는 피상속인이었다. 이들은 부의 창출에 기여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제안은 혁명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케인스 본인은 이 방식이 좌파적이 아니라 오히려 ‘중도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치고 싶었다. 부자에 대한 과세를 늘리는 데 찬성했지만, 원한에 찬 적개심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산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너무 많이 저축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자가 돈을 쓰지 않으면 수요가 줄어 경제가 위축된다. 그러다 결국 다른 이들도 모두 부를 모으려고만 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전체 자산은 쪼그라든다.
-275~276쪽
현재 우리의 자본주의는 전혀 통제되지 않은 채로 나아가고 있다. 주류 경제학이 현실 자본주의와 무관한 이론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대기업을 비롯해 생산도 대출도, 심지어 화폐도 없는 이론이다. 모든 경제학자의 약 85퍼센트는 스스로 신고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시 실패할 것이고, 수조 달러의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321쪽
결국 경제학이 유의미한 지식을 생산하려면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겠다던 신고전주의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매우 역동적이어서 시대에 따라 관점과 문제는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각 세대는 각자의 경제학을 발명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는 아주 중요한 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