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奸臣)의 글자와 뜻풀이 및 관련 용어
간신의 어원과 뜻풀이
‘간신’이란 단어는 언제 생겼을까? 이 질문부터 풀어간다. 간신과 간신현상이란 이 심각한 역사현상의 뿌리부터 철저하게 캐서 미래를 위한 역사 법정의 생생하고 처절한 증언 자료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간신이란 단어를 알자면 먼저 ‘간(奸)’이란 한자부터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한자의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려면 현재로서는 적어도 3천 년이 훨씬 넘은 가장 오랜 ‘갑골문(甲骨文)’의 글자들을 보아야 한다. 갑골문에 새겨져 있거나 쓰여 있는 문자들은 상(商) 왕조(기원전 1600~기원전 1046년)가 사용한 문자인데, 상나라의 마지막 도읍인 은(殷)의 유적지에서 다량 발견되고 발굴되었다. 상이 은으로 천도한 때는 제20대 국왕인 반경(盤庚) 때였다. 반경 이후로도 11명의 왕이 더 있었기 때문에 상은 반경 이후로도 200년 넘게 더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경은 대체로 기원전 14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다. 그렇다면 갑골문의 역사는 약 3,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글자와 문장의 구조 등으로 볼 때 처음 사용된 시기는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일 것이다.
이 갑골문에 과연 ‘간(奸)’이란 글자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까지 갑골문에 ‘간’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다투다’ ‘시끄럽게 하다’ ‘송사를 벌이다’는 뜻을 가진 ‘난(奻)’이란 글자는 확인되었다. ‘간’자가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지만 상나라 때 청동기에 주조되어 있는 글자, 즉 금문(金文)에는 보인다. 이 청동기의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상나라 시기는 분명하기 때문에 역시 3천 년 이상 전에 이미 ‘간’이란 글자가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 뜻은 ‘여자를 범하다’로 풀이하며, 이후 여성이 간여되어 있는 일로서 간음이나 간통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뜻이 넓어졌다.
‘간’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또 다른 글자로 ‘간(姦)’이 있다. 이 글자로 ‘간신(姦臣)’이라 쓰기도 한다. 글자 모양에서 보다시피 여자가 많다는 뜻인데, 아내 외에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했다는, 즉 음란(淫亂)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해서 ‘奸’과 ‘姦’은 두 글자 모두 간사한 행위, 교활, 속임수 등의 뜻을 두루 아우르게 되었고, 여기에 남에게 차마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은밀한 행위도 이 글자의 뜻에 포함되었다. 간신의 가장 큰 특성이자 특징이 이 글자에 담겼다.
‘신(臣)’도 갑골문에 이미 보인다. 갑골문에는 눈 ‘목(目)’과 비슷한 모양으로 나오고 있으며, 그 뜻 또한 눈으로 해석한다. 고증에 따르면 신(臣)과 민(民)은 모두 노예를 나타내는 글자라고 한다. 이후 관직 이름에 차용되어 군주를 모시는 신하를 나타내게 되었다.
다음으로 이 두 글자가 붙어 ‘간신(奸臣)’으로 사용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면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을 지낸 관중(管仲, 기원전 약 730~기원전 645)의 저작으로 알려진 《관자(管子)》가 가장 이르다.(물론 이 책이 지금의 형태로 완성된 시기를 관중이 죽고 200년이 넘어 지난 기원전 5세기 전국시대로 보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 내용에 관중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주장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 책 제52편 <칠신칠주(七臣七主)>에 일곱 가지 유형의 신하들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칠신칠주’는 일곱 유형의 군주와 신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올바른 군주와 신하는 단 한 가지 유형에 불과하고 나머지 여섯은 모두 잘못된 나쁜 군주와 신하들이다. 관중은 각각 일곱 유형의 군주와 신하의 특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군주와 신하의 올바른 길을 밝히고 있다. 일단 주제와 직결되어 있는 ‘간신’ 부분만 인용해 본다.(《관자》에는 ‘간신姦臣’으로 나온다.)
“간사한 신하 ‘간신’은 백성의 실정을 몹시 고통스럽게 말하여 군주를 놀라게 하고, 반대의 무리에게 죄를 주는 옥사를 일으켜서 (같은 패거리를 위해) 길을 청소한다. (같은 패거리를 위해) 길을 청소하면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주고,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주면 같은 패끼리 편안히 산다. 그러므로 (간신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교묘히 떠벌여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군주는 친한 신하를 잃게 된다.”
나머지 다섯 유형의 잘못된 신하들은 꾸미기를 잘하는 ‘식신(飾臣)’, 법도를 어기는 ‘침신(侵臣)’, 아첨하는 ‘첨신(諂臣)’, 우매한 ‘우신(愚臣)’, 어지럽히는 ‘난신(亂臣)’이다.
《관자》의 ‘간신’에 대한 인식은 꽤 구체적이어서 역대 간신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특징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군주를 겁주고, 패거리를 짓고, 옥사를 일으키고,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반대파의 잘못을 확대하고,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등의 행태는 간신들의 일반적인 행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 또 나머지 다섯 유형의 신하들 역시 크게 보면 간신에 포함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특징 역시 간신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관자》의 ‘간신’은 여러 유형의 신하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달리 말해 간신의 존재와 그로 인한 폐해가 나라와 백성들 전반에 미칠 정도로 크지 않았을 수도 있고, 또 간신에 대한 인식이 심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서 ‘간신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인식이 그 당시만 해도 철저하게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물론 오늘날이라 해서 ‘간신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인식이 그 옛날보다 철저하다고 심각하다고 단정할 수는 결코 없다.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전반적인 ‘간신 현상’을 볼 때 결코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신’에 대한 역대의 인식과 이론에 대해서는 별도의 탐구가 있을 예정이므로 이 정도로 그친다.
참고로 간신의 영어 표현에 대해 알아본다. 대부분의 사전에는 traitor, 즉 반역자 또는 배신자로 나와 있고, 간혹 불충한 신하라는 뜻의 disloyal subject, 또는 기만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신하를 뜻하는 treacherous subject로 나와 있다. 간신의 전형적인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단어이자 뜻풀이라 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는 우리는 익숙한 ‘traitor’를 쓰고, ‘간신 현상’도 ‘traitor phenomenon’ 또는 ‘traitor syndrome’을 쓰고자 한다. 역사가 생생하게 보여주듯 간신이 득세하여 설치면 ‘간신 현상’이란 악성 바이러스가 사회를 전염시켜 이른바 ‘현상’으로 발전하는데, 심하면 단순 현상인 phenomenon을 넘어 심각한 syndrome으로까지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상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간신’이란 글자는 늦어도 3천 년 이상 이전에 이미 있었다. 당연히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 ‘간신’이 하나의 단어로 붙어 나온 시기는 약 2,700년 전이고 출처는 제자백가의 원조로 불리는 관중의 《관자》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간신’의 일반적인 특징이 꽤나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고, 관련한 올바르지 못한 다섯 유형의 신하들이 보여주는 특징도 간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간신’을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기준이 되는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그 의미가 상당하다 하겠다. 《관자》의 ‘간신’은 간신과 그 범주에 드는 존재들을 기록으로 남긴 전적들을 검토하면서 다시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