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은 집에서 중국이 지은 밥을 먹는 한국”
영국 최고의 외교안보 전문가가 제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생존 전략
▶ 한국을 위한 맞춤형 자문
로빈 니블렛은 유럽 각국이 중국 및 러시아 대상 외교전략을 구상할 때 최우선적으로 자문을 구하는 최고 권위자다. 이번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특수한 상황을 십분 고려한 맞춤 전략을 조언하고 있다.
“중국을 향한 미국의 통제와 억제에 어느 선까지 맞장구쳐줘야 하는가?”라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고민을 언급하면서, 미국과 안보 동맹을 강화하되 중국과 제한적이지만 건설적인 관계를 이어가라고 제안한다. 한국이 중국을 규제하는 G7과 동조해서 중국의 거센 반발을 받고 있지만, 같은 민주주의 진영의 한국으로서는 “다른 선택은 없다”고 단정한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가 첨단 기술 분야를 제외하고 중국과 무역 및 투자를 유지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미국이 막을 일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고 분석한다.
▶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로빈 니블렛은 신냉전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도 강조하는데, 호주와 함께 G7에 합류해서 G9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새롭게 축을 이루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에 대항할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한국 정부나 정책입안자 또는 외교전략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은 한국을 또 얼마나 압박할 것인가?’, ‘EU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디까지 더 개입할 것인가?’, ‘중국은 과연 대만 침공의 명분을 찾을 것인가?’, ‘북한의 계속된 군사도발은 한국의 핵무장을 불러올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글로벌 사우스는 벌써 중국의 편에 서 있는가?’, ‘이란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폭력을 부추기는가?’
이처럼 복잡한 신냉전의 세계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이 책은 국가간 경쟁구도를 깔끔하게 정리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 초강대국이 되고 있는 중국
중국 GDP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정권을 잡은 1980년 이후부터 40년 동안 거의 꺾이지 않고 연달아 성장했다. 중국의 GDP는 총량만 놓고 보면 양적으로 미국을 추월하기 직전이며, 일부 질적인 영역에서도 미국과 유럽을 따라잡거나 이미 능가했다.
2001년 중국의 GDP는 1조 2,000억 달러(미국은 10조 2,500억 달러)였지만, 2022년에는 18조 달러(미국은 25조 9,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구매력 평가(PPP)’ 지수, 즉 다른 국가 통화 대비 위안화의 구매력 수준만 놓고 본다면 중국의 실제 GDP는 전 세계의 16.6%를 차지해 미국의 15.8%보다도 높다. 중국은 2009년에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등극했으며, 현재는 미국과 독일보다도 한참 앞선 상황이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이다.
▶ 신냉전을 피할 수 없는 이유
미국과 지경학적인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된 중국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각도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중국의 공산당 독재 체제는 국가 권력을 향한 그 어떤 내부 도전도 허용치 않는 반면, 미국이 옹호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국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며 개인의 권리가 그 중심에 있다. 미국과 중국은 정반대의 통치 형태를 갖고 있는데, 두 나라 모두 자신들의 체제로 21세기를 지배하길 욕망한다. 양국이 현재 전 세계에 걸쳐 누구도 중재할 수 없는 경쟁을 벌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냉전의 골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미중 양국이 특히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고 불리는 저위도 개발도상국들을 동맹과 우방으로 끌어들이고자 그토록 열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교, 기술, 군사력, 정보, 대외원조, 문화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역과 투자 등 모든 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결국 양쪽 다 핵무장을 한 강대국들의 근본적인 경합에서는 경제 및 기술 패권을 쥐는 것이 관건이기에 양국 기업들은 좋든 싫든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다.
▶ 미국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국가 간의 외교와 안보에서는 ‘영원한 적도 무조건적인 친구도 없다’는 것이 철칙이다. 현대는 경제적인 실익을 따라 움직이는 나라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인도는 인구가 가장 많은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미국이나 유럽 동맹국들 편에서 한쪽만 동조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진영이 한마음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할 때도, 동참하기는커녕 오히려 석유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에서 2022년 중반 이후부터 수입을 열 배나 늘렸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수입한 석유 일부를 정유해 러시아에서 직접 수입을 금지한 유럽 및 서구 국가에 되팔았다.
중동에서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인도와 유사한 전술을 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와 오펙플러스를 구성해 석유 생산량을 조절하는가 하면 중국과의 관계도 심화시켰다. 또한 2023년 3월 중국의 중재를 받아들여 국교를 단절한 지 7년 만에 이란과 외교 관계를 회복했다. 중국에도 대규모 석유 수출 판로가 트이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미국이 기술 및 시장 접근을 차단한 많은 중국 기업과 제휴를 맺어 자신들의 대규모 국가전략사업 ‘비전 2030(Vision 2030)’ 계획에 대거 참여시켰으며, AI를 비롯해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창 미국과 경쟁 중인 중국 기업들에 투자했다.
▶ 전 채텀하우스 소장이 지경학적으로 분석한 국제정세 긴급 보고서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에 위해를 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명백하다. 유럽의 식민지 쟁탈전이 그랬고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미소 냉전 시대도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항상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정책과 전략을 준비하는 일은 필수다.
저자는 “냉전과 신냉전의 주요 차이점을 이해하는 일”은 우발적이든 의식적이든 “전 세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사태를 피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진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중국은 소련과 무엇이 다른가?”, “21세기의 미국과 20세기 후반의 미국은 어떻게 다른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분열된 세계에서는 어떤 국제기구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가?”,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 대응은 가능한가?”
이 책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서 10개의 장에 걸쳐서 신냉전이 구냉전과 다른 차이점과 특징을 살펴본다. 또한 마지막 장에서는 신냉전이 비극적 종말의 결과로 향하지 않도록, ‘자기충족적 예언을 하지 말 것’, ‘자유민주주의로 뭉칠 것’, ‘평화로운 경제 경쟁 구조를 만들 것’, ‘세계 각국의 군비 통제를 위해 노력할 것’,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할 것’이라는 5가지 규칙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