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66
머나먼 꼭짓점 댄스가 되어 버린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도시에서는 부침이 많았다.
나는 늘 차디찬 바람이라고 주창했는데
긴긴 시간이 틀어 놓은 각도를 잘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바로잡는다는 사고도 이상한데
현재의 모습이 분명 탈이 난 것이다.
의식은 개인과 사회를 내달리며,
심연이라는 광장에서 곧바로 기준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흉내는 낸다.
시대를 증언할 이유로, 혹은 한계로.
_ 2장 「지지직 찌직」
P. 118
장마가 끝나면 매미가 바통을 이어받을 차례다.
올해도 무더위 걱정에 여름의 정점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지레 겁부터 나는데
그러던 중 푸른 잎사귀에 쑥쑥 추켜올려진, 취침 중인 옥수수를 본다.
잠시 어두운 이불을 걷고.
야트막한 산 아래의 밭에는 선착순 성장을 겨루듯 옥수수가 무성하다.
웜톤의 알이 찬 옥수수. 여름의 맛으로 손색이 없다.
키가 커서인지 멀리서도 제철을 알려주는 푸른 등대로도 보인다.
알이 다 차기도 전, 멧돼지에게 이빨을 탈탈 털리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_ 4장 「여름의 높이」
P. 120
산은 그 자체로도 중하고 이와 더불어 푸른, 포실포실, 짙은, 검정의 모습을 반복해서 전한다. 빌딩 숲 사이에서 고개를 떨구며 지내던 생활에서, 물구나무 선 듯 환기된 높이를 체험할 수 있음이 현재의 자연이라고 생각하니 오래전 성장기 기억이 부르르 떨린다. 그 짙은 능선을 따라 나의 걸음을 얹혀 첨예한 풍경의 피부를 두드려 본다.
_ 4장 「계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