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최고의 지성인이자 저술가 키케로
서구 정신의 근간을 이룬 그의 대표작 『의무론』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윤리 준칙에 관한 오랜 지혜
키케로 혼자서도 그리스 철학자 모두에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 볼테르
로마 최고의 문장가이자 저술가인 키케로의 대표작『의무론』이 서양 고전 연구자이자 전문 번역가인 김남우 씨의 새로운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의 291번째 책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정치인, 법률가, 저술가로, 당대 최고의 연설가이자 문장가로 칭송받았다. 그는 카이사르의 독재를 비판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논했고,『국가론』,『법률론』,『최고 선악론』,『스토아 철학의 역설』 등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키케로는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부터 토마스 아퀴나스, 이마누엘 칸트까지 서구 지성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서구 정신과 도덕 철학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키케로의 철학을 한층 밀도 높게 소개할 〈키케로 철학적 선집 번역〉 프로젝트를 맡아 이끄는 연구자이자 스무 권이 넘는 서양 고전을 꾸준히 소개해 온 전문 번역가인 김남우 씨는 엄정하고 정갈한 번역으로 『의무론』을 새롭게 소개한다. 이번 번역본에서는 오랫동안 라티움어를 가르쳐 온 번역가의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심을 거듭한 우리말 번역어들이 깊이와 정확성을 더한다. 또한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채운 5백 개가 넘는 풍성한 각주와 친절한 해제를 담은 이번 열린책들판은 키케로가 남긴 글의 정수를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의무론』은 공화정이 붕괴하던 시기, 키케로가 자신의 아들에게 전하는 절실한 가르침을 담아 쓴 책으로, 서구 사상사에서 〈공동체〉의 근거와 가치를 사유하는 근간이 되었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제1권에서는 인간이 가져야 할 〈훌륭함〉과 실천해야 할 〈의무〉에 대해, 제2권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가장 이득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3권에서는 〈훌륭함과 이득〉의 관계에 관해 살피며, 〈훌륭함이 궁극적으로 이득〉이라는 첨예한 통찰을 보여 준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자유 시민의 윤리 준칙을 다룬 교과서로 꼽히는 『의무론』은 〈개인과 공동체〉,〈의무와 도덕적 선〉과 같이 현대에도 유의미한 주제들을 짚어 내며 시대를 뛰어넘어 빛바래지 않은 가르침을 전한다.
공동체의 결속과 그 가치를 사유한
정치·도덕 철학의 영원한 고전
〈의무는 모두 절대적인가?〉, 〈어떤 의무가 어떤 의무보다 중한가?〉, 〈어떤 의무가 어떤 의무와 동등한가?〉. ― 16면
인류의 결속이 사라지면, 은혜도, 관대함도, 선함도, 정의도 완전히 없어진다. ― 202면
『의무론』은 구텐베르크가 『성경』 이후 세 번째로 인쇄한 책일 만큼 서구 사상과 세계관을 구성하는 가장 주요한 저작 중 하나였으며,〈공동체〉의 근거와 가치를 사유하는 주축이 된 작품으로 이후 정치, 도덕 철학 형성에 있어 〈역사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키케로에게 인간은 자연의 본성적 힘, 즉 질서가 무엇인지, 바른 게 무엇인지를 지각하는 힘을 탐구할 수 있는 존재다. 또한 인간은 생각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더 분명한 아름다움과 일관성, 질서를 지키도록 하는 이성의 힘과 진리의 습득을 천착한다. 이 힘을 바탕으로 인간은 어떤 의무가 어떤 의무보다 더 중요한지, 〈훌륭함〉을 기준으로 사유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키케로는 올바른 정치 공동체가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그 궁극적 근거가 무엇인지를 〈훌륭함〉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설파한다. 특히 이를 로마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 상세하게 설명하여 역사적 맥락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높인다. 개인의 행복과 관련된 일상의 도덕적인 선택의 문제로 시작된 논의는 공동체의 구성과 원리, 그 이해에 대한 정치 철학적인 사유로 나아간다. 이어 궁극적인 근거가 되는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훌륭함과 바름에 대한 도덕 철학의 사유까지 아울러 정연한 언어로 깊은 가르침을 전한다.
훌륭함과 이득은 과연 상충하는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일상적이고도 궁극적인 지침
오직 훌륭함만이 이득인바, 이득이기에 훌륭함이 아니라, 훌륭함이기에 이득인 것이다. ― 255면
키케로가 제3권에서 가장 첨예하게 다루는 바는 〈훌륭함〉과 〈이득〉은 과연 상충하는가 하는 문제다. 실로 사람들은 훌륭함과 이득은 때로 상충되는 가치라고 생각하며, 어떤 이득을 따를 것인지 살핀다. 그러나 키케로의 결론은 〈언제나 훌륭함이 궁극적으로 이득〉이며, 이 훌륭함의 훼손을 상쇄할 수 있는 이득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훌륭하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이득이라고 할 수 없다.
번역가 김남우 씨는 이 책의 해제에서 오늘날 우리가 『의무론』을 읽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량한 사람들은 명예로운 평온과 공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가운데 지혜, 용기, 절제, 정의 등 훌륭함을 실천한다.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태도를 지니고 훌륭한 처신을 하며 훌륭한 선택을 내린다. 하지만 반대로 훌륭한 태도와 훌륭한 처신과 훌륭한 선택이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행동이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다. (......) 키케로가 제시한 바른 행위의 준칙이나 공식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훌륭함의 개별적 실천을 〈바름〉이라고 한다. 바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사람마다 연령, 환경, 소질,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 따라서 자유 시민은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독재자의 권력은 법을 익사시키고 공포로 자유를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 선량한 시민은 기필코 자유와 법을 되찾는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을 다시 세우고자 목숨 바쳐 싸운 선량한 시민들의 대표자였다. 정치적 격랑 속에 죽음을 예감한 키케로는 마지막 순간 선량함과 바름의 지침을 또 다른 키케로에게 남겼고 그의 아들처럼 우리도 『의무론』을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