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기 트라우마가 뇌 구조, 면역계, 인간관계, 사회경제적 지위,
범죄율에 미치는 영향부터,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개인적·사회적 해법까지
아동기 부정적 경험(ACE) 최신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역작!
★★★★★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교사, 『슬픔의 방문』 장일호 기자 강력 추천!
아동 학대 및 방임, 가족의 자살, 부모의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 등 아동기 부정적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은 자극적인 뉴스의 소재나 드라마 주인공의 극적인 배경으로 익숙하지만, 막상 학술적 연구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의사 펠리티가 자신의 비만 클리닉에 찾아온 내원자 55%가 어린 시절 성적 학대 및 여러 ACE를 겪었음을 발견한 이래, ACE가 성인이 된 후의 심신의 질병, 사회경제적 지위,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가 급증했다. 지난 수십 년간 방대한 연구 성과가 쌓였지만, 관련 자료 대부분이 영어 논문 형태로 되어 있어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ACE 연구 지식이 연구자와 정책 결정자들만의 관심사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ACE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 되어야 바뀔 수 있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이 네 가지 이상인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심장 질환은 2.2배, 암은 1.9배, 뇌졸중은 2.4배, 만성 폐 질환은 3.9배, 당뇨병은 1.6배 발생 확률이 높았다. 알코올 의존증은 7.4배, 우울증은 4.6배, ‘50명 이상과의 성관계’는 3.2배, 자살 미수는 12.2배 발생 확률이 높았다. 학력, 실업률, 수입도 큰 격차를 보였고, 혼인 상태에도 차이가 있었으며, 자녀를 양육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힘들어했다. ACE 생존자는 불리함이 누적되면서 평생 괴로움을 겪는다. 우연히 태어난 가족의 생활환경 격차가 일생에 걸쳐 다면적인 격차로 이어진다. 또한 부적절한 양육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부정적 경험의 연쇄가 확인되었다.
일본의 복지사회학, 가족사회학 권위자인 미타니 하루요(三谷はるよ)는 민족, 장애 유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ACE 생존자의 고통을 ‘사각지대에 있는 소수자의 문제’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을 끌어안고 아무한테도 발견되지 않고,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사는 지역에서는 2021년 아동 학대·방임 피해자 오빠가 여동생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저자는 아동기 트라우마가 아이의 전 생애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ACE 연구의 학술적 성과를 집대성하고 알기 쉽게 설명함으로써, 그 누구도 ACE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지 않는 세상, ACE 생존자도 회복되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예방 시스템과 사회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데 기반이 되는 지식을 제공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ACE 전문가 곽영숙 현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이 책을 의료·교육·사회복지 종사자, 정책 담당자에게 강력 추천했고, 청소년 정책 연구자로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통해 가난한 청소년들이 온갖 악조건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꼼꼼하게 그려낸 강지나 교사는 “지금 고립된 가족의 문제를 방치하면, 수십 년 후 그 속에서 성장한 불안하고 우울한 어른들을 수없이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지금 꼭 읽어야 할 지침서!”라고 평했다. ACE 생존자 당사자로서 에세이 『슬픔의 방문』과 기사를 통해 약자에 대한 사랑과 지지를 일관되게 표현해온 〈시사인〉 장일호 기자는 “트라우마의 부정적 연쇄를 끊어내고 회복을 도울 ‘안전기지’를 만드는 일은 마땅히 사회의 몫이다. 이 책에 촘촘히 담긴 ‘기초 지식’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에 부재한 것과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거울처럼 비춘다”고 소감을 밝혔다.
ACE 생존자의 불이익을 줄이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사회적 해법
이 책에서는 ACE 생존자에 대한 설문조사, 통계, 종단 연구 등의 학술 데이터를 집대성하는 한편, 6장에서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개인적 삶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서적 학대, 신체적 방임, 가족의 정신질환, 가정폭력, 성적 학대 등 네댓 가지 중복된 아동기 부정적 경험으로 처참한 삶을 살았으나 현재는 전문 직업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ACE 생존자 B와 C를 소개한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거나 한때 전폭적으로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거나 다른 사람에게 헌신한 경험은 회복탄력성을 설명해 준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해지기 쉬운 ACE 생존자에게는 저소득층, 한부모가족 등에 대한 국가의 복지제도도 큰 버팀목이 되어준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도 빈곤만이 아니라 부모의 정신질환과 아동 학대 등의 ACE가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빈곤과 ACE는 밀접하게 얽혀 있어 열악한 ACE 생존자의 삶이 빈곤의 영향인지 ACE의 영향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는 그 영향을 구분하려는 학술 연구들을 소개하며, 무엇보다도 빈곤 대책과 ACE 대책이 다르므로 이 두 문제를 구분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신을 보호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거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지지해 줄 어른이나 친구가 있거나,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등 아동기 긍정적 경험(Positive Childhood Experience, PCE)을 여럿 기억하는 성인은 ACE 경험과 상관없이 우울증, 불안 장애, 자살 충동 발생 확률이 절반으로 낮아진다. 한편,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주로 부적절한 양육을 할 리스크가 큰 ACE 생존자 부모 그룹의 아동 학대 발생률을 떨어뜨렸다. “반세기에 걸친 회복탄력성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회복탄력성은 기본적인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 가족, 친구, 이웃, 동료의 배려와 친절만이 아니라 공무원, 교사, 복지 담당자와의 연결이 중요하다.
저자는 ACE를 예방하고 ACE 생존자를 지원하는 각종 제도와 민간단체의 노력을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네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ACE 생존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큰 의료인, 사회복지사, 심리 상담사 등이 TIC(Trauma Informed Care), 즉 트라우마에 대한 지식을 사전에 갖춘다. 둘째, 모든 아이가 다니는 의무교육 기관인 학교에 사회복지사나 상담사를 배치하고 교사와 교사가 아닌 사람들이 저마다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팀 학교’를 중심으로 아동·가정을 지역의 자원과 연계해준다. 셋째, 아동 상담소와 지방자치단체가 효과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인사제도를 혁신해서 전문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며 학대 대응 창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넷째, 임신할 때부터 ACE 예방 대책을 실시한다. 일본에서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어 임신 신고서를 제출하면 모자보건수첩을 발급받고 복지 혜택을 받는다. 이 모자수첩을 수령할 때부터 담당 공중보건사가 임산부와 관계를 형성해서 영유아 가정 방문, 영유아 검진 등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가족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육아를 도와주는 것이다. 주치의 역할을 하는 네우볼라 공중보건사를 중심으로 산전·산후·육아 지원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지는 핀란드의 ‘네우볼라(neuvola)가 모델이다.
고립된 밀실 같은 핵가족 속에서 아이들을 접한 경험이 별로 없는 어른 한두 명이 독박육아를 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갈수록 육아가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이 책의 결론은 사회 전체가 부모를 지원하며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위기를 미리 감지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