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재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책은 패전 후 전쟁범죄자들의 체포에서 기소까지의 여정에 숨겨있는 진실을 다룬다. 1945년 9월 11일, 연합국총사령부(GHQ)는 진주만 공습을 명령한 도조 히데키(東条英機)에 대한 체포 명령을 시작으로 4차에 걸쳐 전쟁범죄자를 체포했다. 전범으로 지명되어 스가모형무소에 체포·구금된 주요 전쟁 범죄 용의자는 계산 방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육·해군의 군인·정치인·관료·사업가·우익 등 10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도쿄재판이 개정되고 뚜껑이 열리자, ‘A급 전범’ 피고인은 겨우 28명, 이들은 어떻게 선정되었는가?
제목에도 있듯이, 도쿄재판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도쿄재판이 열릴 때까지의 무대 뒤를 쫓은 책으로 일본의 주요 전쟁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이 개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정치적 의도가 얽힌 국제검찰국의 설립이나 뉘른베르크재판과의 비교에 의해 편향된 그 본연의 자세, 음모사관에 사로잡힌 고노에 후미마로 전 수상 자살의 파문, 괴로운 천황 변호론을 전개하는 기도 고이치 내대신의 일기, 쇼와 천황 전쟁 책임 문제의 행방, 몇 번의 회의를 거친 후에 제출된 기소장 등 도쿄재판의 개정에 이르는 구체적 과정을 GHQ 및 검찰 측과 일본 측의 교섭・대항 관계 속에서 입체적으로 해명하고 있으며, 미국 주도로 전범재판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과 한계에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쇼와 천황의 불기소와 전쟁 책임, 소추 대상의 축소, 재판 대상에서 식민지 지배 제외 등 도쿄재판에 기소되어야 할 대상이 면책되고 재판의 범위가 축소된 도쿄재판의 한계,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보론」에서는 일본측의 자주적 재판구상에서 볼 수 있는 ‘개전책임론=가해자의식’보다 ‘패전책임론=피해자의식’을 강조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루지 못한 도쿄재판 연구 자료를 후배들에게 남기며…
이 책은 저자의 제자들이 그 뜻을 받아 번역한 도쿄재판 전사(全史)이다. 연구자의 일편단심으로 자료에 근거하는 실증을 관철해, 해외에 방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자료를 발굴하여 집필한 역서이기에 ‘도쿄재판’을 알고자 한다면, 우선은 이 책부터 읽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책 속에서 저자는 A급 전범, 전범 용의자, 관련자의 방대한 심문조서를 분석했다. 유감스럽게도, 저자가 2019년 9월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책이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담은 마지막 성과서가 되어 버렸다. 미국 일국에 의한 점령으로, 맥아더라는 독특한 인물의 통치 방식과 사상으로 인해, 연합국 사정의 복잡함 등, 혼란스러운 정세 가운데서 진행된 ‘도쿄재판’. 천황 면책을 둘러싸고 언동이 소용돌이치는 서사를 포함해, 개정 전사를 이해할 수 있다.
역자 서문으로 보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전말
1946년 4월 29일에 전범으로 지명된 100여 명 중 도조 히데키 등 28명의 피고가 A급 전범자로 정식 기소되어, 같은 해 5월 3일부터 심리(審理)가 시작되었다. 여기에 히로히토 천황의 이름은 없었다. 미국의 대일 전후 처리를 위한 선결 과제였던 도쿄재판은 2년이 넘는 재판 기간을 거쳐 심리 중에 사망과 정신질환을 앓은 3명을 제외한 25명에 대하여 1948년 11월 12일에 전원 유죄를 인정하고, 교수형 7명, 종신형 16명, 금고 20년 1명, 금고 7년 1명의 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12월 23일, 7명에 대한 교수형을 집행한 후 다른 전범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일본은 1952년 12월 9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전쟁 범죄에 의한 수감자의 석방 등에 관한 결의’를 통과시켰고, 1953년에는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전범으로 처형된 사람들을 ‘공무사(公務死)’로 인정했다. 이후 1956년 3월 말에는 극동국제군사재판에 의해 수감된 12명을 모두 가석방했으며, 1978년에는 도조 히데키와 다른 A급 전범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어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여전히 도쿄재판을 ‘승자의 심판’이라고 비난하는 시각에서 도쿄재판사관이 형성되었고, 도쿄재판사관으로 인해 자학사관이 유래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도쿄재판사관은 1970년대부터 논단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역사관으로 도쿄재판의 판결을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일부 군국주의자’들이 ‘공동모의’하여 일으킨 침략이라고 인식하는 역사관이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도쿄 재판에서 중요한 면책 조항으로 ‘쇼와 천황의 면책’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 ‘화학전·생물전의 책임’, ‘너무 빠른 A급 전범 용의자 석방’ 등으로 인해 전후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한국의 시선에서 볼 때 한일관계는 여전히 과거사와 전후 배상문제를 둘러싸고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의 시선에서 볼 때 일본과 과거사와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한 국가는 없다. 이는 가장 철저해야했던 전쟁 범죄자 처벌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이는 한일 간의 갈등에서 현상에 나타나는 문제뿐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관심이 일본만이 아닌 한일 양국 나아가 동북아시아에서 높아진다면 전후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밝히는데 더욱 큰 의의가 있음은 물론 여전히 존재하는 과거사 문제를 풀어갈 단서를 마련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