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과 효율을 넘어 나, 인간, 삶의 관점으로 바라본 생성형 인공지능
2022년 12월 오픈AI 사가 챗GPT를 공개하며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눈에 띄게 커졌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말이 들려오기도 하고, 읽고 쓰는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텍스트 생태계를 금방이라도 바꿀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지요. 도서 시장에도 생성형 인공지능을 다룬 책이 쏟아졌습니다. 챗GPT가 저자로 등장하기도 했고요. 그런 책 대부분은 인공지능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런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다루었습니다. 논의의 중심은 주로 생산성과 효율이었지요.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는 바로 이 논의의 중심을 바꿉니다. 인간처럼 읽고 쓴다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보기를 제안하지요. 생산성과 효율의 자리에 ‘나’ ‘우리’ ‘인간’ ‘삶’과 같은 단어를 놓고,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고 공존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이며 효율을 넘어 우리 삶의 유익을 추구하는 쪽인지 고민합니다. 나아가 인간처럼 학습하고 이해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인간만이 가지는 차별점이 무엇인지, 그 기술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 전에 확립해야 할 윤리는 무엇인지도 살핍니다. 인간의 읽기-쓰기, 인공지능의 읽기-쓰기를 비교·대조하며 사람이 읽고 쓴 글과 인공지능이 읽고 쓴 글의 구조적·내재적 차이를 설명하기도 하지요.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는 거의 무한하기에 ‘제대로 된 좋은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와 지식을 모두 얻을 수 있다’라는 환상 속에 어떤 허점이 숨어 있는지도 탐색합니다.
기술은 언제나 우리 상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합니다. 인공지능을 배척하거나 배제할 여지는 점점 좁아지겠지요. 하지만 기술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따라갈 수도, 어떤 존재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냥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응용언어학자로서 개인과 사회, 기술과 리터러시가 엮이는 방식을 오래도록 연구해 온 저자는 인공지능을 도구가 아닌 관계의 주체로 바라보자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읽고 쓰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새로운 존재와 함께 읽고 쓰는 행위는 어떤 가치와 한계를 지닐까요? 리터러시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 속에서 우리는 읽고 쓰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더 잘 돌볼 수 있을까요?
문해력의 개념과 리터러시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어떻게 인공지능과 함께 읽고 쓸 것인가
챗GPT가 이전의 인공지능에 비해 더 빠르게 확산되고 화제가 된 이유는 온전히 사람의 몫이라 여겨졌던 읽고 쓰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읽고 쓰는 일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지요. 그럼에도 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텍스트의 영역이 영상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긴 글 읽기-쓰기를 이전보다 더 어려워하고, 사회에는 문해력 논란이 끊이지 않지요. 웬만해서는 수월히 할 수 없는 읽기-쓰기를 대신해 주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었다니, 이 기술이야말로 모두의 삶을 편리하게 할 거라고들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의 생성형 인공지능이 과연 모두를 돕고 있을까요? 인간처럼 읽고 쓰는 AI의 행위는 인간의 읽기-쓰기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을 둘러싼 이런 논의들이 문해력의 개념과 우리 사회의 리터러시 담론에 변화의 물결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의 읽기-쓰기와 인공지능의 읽기-쓰기는 어떤 면이 비슷하고 어떤 면이 다를까요?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글을 읽고 쓰며, 인공지능은 어떤 방식으로 읽고 쓸까요?
저자는 최근까지 지속된 국내외 연구들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텍스트를 생성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며, 인공지능은 텍스트를 생성할 수는 있으나 읽기라는 행위가 창출하는 다양한 가치까지 만들어 낼 수는 없음을 지적합니다. 읽는 기쁨과 읽는 동안 활성화되는 뇌, 읽으면서 경험하는 깨달음의 순간, 이유 없이 생기는 여운과 감상, 쓰면서 비로소 정리되는 생각, 쓰고 나서야 분명해지는 자신의 감정 등을 인공지능의 읽기-쓰기는 구현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읽기-쓰기를 ‘대신’할 수 있다는 건 환상이며, 인간의 읽기-쓰기에는 기술로 대체불가능한 면이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줍니다. 그럼으로 인공지능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리터러시 생태계를 바꾸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새로운 기술이 우리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꾸고 있으며 우리는 그 변화를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논의하자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이지요.
사실 리터러시의 개념은 이제까지도 꾸준히 변화해 왔습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미디어 리터러시·디지털 리터러시 같은 개념이 생겨나고 그 의미 또한 변화·확장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리터러시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고, 그 기술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활용법 학습을 넘어 제대로 된 관점과 태도 정립을 돕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 책이 바로 그 시작을 도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