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의 부재에서 전쟁의 본질을 찾다
이 책은 사이토 미나코의 『전시하 레시피(戦下のレシピ)』(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 2015)를 완역한 것이다. 저자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져 가는 일본인의 먹거리 사정을 당대 여성지에 실린 요리 레시피를 통해 밝힌다. ‘총력전은 절미부터’, ‘관민 하나가 되어 절미운동’, ‘부엌의 전투 배치’, ‘장엄한 결전 비상식’ 등의 장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전쟁 전 풍요로운 먹거리 시대를 구가하던 일본이 중일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일반 가정의 밥상에까지 ‘대동아공영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게 되는 과정이 실감 나게 펼쳐진다.
주부들은 식구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적은 양의 쌀을 몇 배로 불려 밥을 짓고,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길가의 잡초까지 식자재로 활용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입을 것이 부족해 매일매일 바느질에 시달려야 했고, 물자를 배급받기 위해 긴 시간 줄을 서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매일 밤 공습경보가 울리는 통에 잠도 편하게 잘 수 없는 삶. 저자는 이렇듯 수면 부족과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밥이 없다는 것에서 전쟁의 본질을 찾는다.
오늘날 풍요로운 식생활 이면에 자리한 궁핍하고 처절한 식문화의 역사
이 책은 전쟁을 옹호하거나 미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당시 생활에서 인내하는 것, 참는 것의 숭고함을 배우자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전쟁은 먹거리와의 전쟁이자 민중의 수난사이기도 했음을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사례들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며, 전쟁의 고된 삶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국가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촉구한다. 더 나아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상천외한 레시피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다시는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반전평화의 메시지까지 분명하게 전달한다.
단순한 요리 레시피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펼쳤다면, 오늘날의 풍요로운 식생활 이면에 전쟁이 초래한 궁핍하고 처절한 식문화의 역사가 자리한다는 사실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전쟁의 광기가 우리들의 평범한 밥상을 침입하고 위협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