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창밖으로 폭신한 초록빛 양탄자가 펼쳐졌다. 그 사이를 구불거리며 흐르는 강이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아마존강이었다. 한국은 아직 한겨울인데 브라질 열대 우림은 뜨거운 여름 날씨라는 게 놀라웠다. 비행기를 타고 고작 몇 시간 날아왔을 뿐인데 계절이 다르니 꼭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은실이도 처음 보는 거대한 숲이 신기한지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착륙할 거야. 다들 손잡이 꽉 잡아!” _9쪽
라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호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저렇게 속이 뻔히 보이는 애는 처음이다. 브라질까지 와서 저런 아이를 만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_14쪽
선생님을 따라 워크웨이와 연결된 자동 사다리를 타고 땅에 내려온 우리는 순식간에 말을 잃었다. 불탄 숲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큰불이 났는지 멀쩡한 나무가 없었다. 반쯤 타 버린 채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 때문에 걷기도 힘들었다. 잿빛 땅에는 미처 불을 피하지 못한 동물의 사체가 새까만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완전히 파괴된 아마존 숲을 보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_16~17쪽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 해가 지면 큰일이었다. 빨리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하이퍼폰이 먹통이라 선생님은 종이 지도를 꺼내 살폈다. 한참 만에 고개를 든 선생님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공중 정류장까지 가려면 숲을 가로질러 세 시간은 가야겠는걸.” _25쪽
“서림아, 은실이가 보통 고양이야? 무슨 생각이 있을 거야. 기다려 보자.”
리호의 갈색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보다 더 은실이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굳건한 눈빛 덕분에 걱정이 조금 줄어들었다. _26쪽
“그런데 이모, 그 마을은 너무 꺼림칙해요. 이모도 알잖아요.”
“꺼림칙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라리사가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마을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 북쪽 숲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다는 거야. 최근에도 마을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소문도 있고. 너무 무섭지 않니?” _32쪽
“으, 여기 너무 기분 나빠. 빨리 가자.”
라리사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빠르게 걸어갔다. 이번만큼은 나도 라리사와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벌레잡이통풀 군락을 지나쳤다.
바쁘게 걸었지만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부후우우, 부후.” 하고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_37쪽
‘요즘도 아마존 원주민이 있나? 너무 아파서 환상이 보이는 건가? 나, 이대로 죽는 거야?’
하지만 더는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곧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아마존 원주민이 우르르 몰려드는 환상을 보며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_41쪽
리호의 두 눈이 빨개지더니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왔다. 그동안 나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위험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리호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살짝 목이 멨다. 나는 얼른 목을 가다듬었다.
“그게 마음에 걸리면 검도 대회에서 우승하면 되잖아. 내가 엄청 큰 소리로 응원할게!” _48쪽
그때 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라리사가 문을 열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곤잘레스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저씨는 라리사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리호가…… 사라졌어.” _58쪽
‘리호가 왜? 그럴 리 없잖아. 분명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리호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넓지도 않은 방에 텅 빈 침대와 옷가지 몇 개만 흩어져 있을 뿐 리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_59쪽
‘리호까지 모두 다섯 명이나 사라졌어. 그것도 모두 십 대 남자아이들만. 이건 단순한 실종 사건이 아니야. 누군가 일부러 소년만 노리는 게 아닐까? 하지만 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의문이 계속될수록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리호는 지금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게다가 경찰은 워크웨이가 수리되는 오후 늦게나 이곳에 올 것이다. 그동안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_66쪽
“잘 봐, 이건 뱀이 아니야. ‘악마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나무야. 이름은 무시무시하지만, 독도 가시도 없어. 착한 녀석이지.”
라리사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며, 다른 나무 근처로 다가갔다.
“와, 카무카무 열매가 있네. 목말랐는데 잘됐다.”
라리사가 나무에서 붉은 열매를 몇 개 따더니 내게 내밀었다. _91쪽
머리끝이 쭈뼛 솟았다. 그때였다. “냐야아아!” 은실이의 높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은실이가 뭔가에 붙잡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맙소사, 저게 도대체 뭐야?” _95쪽
머리끝이 쭈뼛 솟았다. 그때였다. “냐야아아!” 은실이의 높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은실이가 뭔가에 붙잡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맙소사, 저게 도대체 뭐야?” _96쪽
“아무리 생각해도 숲이 이렇게 변해버린 건…… 그날부터인 것 같아.”
“그날이라니요?”
할아버지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힘든지 이마를 찡그렸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_111쪽
“치, 친구? 나 말이야?”
“그럼, 우리 친구잖아. 죽을 고비를 같이 넘긴 친구. 그러니까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 잘 부탁해, 이서림.” _115쪽
“저건 토코투칸이야. 큰부리새 중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해. 북쪽 숲에 다른 동물은 없는 줄 알았는데 새들은 용케 피했나 봐.”
동물이 전부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건 반가웠지만, 저 새가 소중한 물을 가져가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돌아온 토코투칸은 할아버지 배낭을 노렸다. 새의 단단한 부리에 할아버지가 다칠지도 몰랐다.
나는 할아버지를 향해 힘껏 외쳤다.
“할아버지, 그 배낭 얼른 줘 버려요!” _121쪽
“어? 물이다, 물!”
놀랍게도 가지에서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미지근하긴 했지만, 분명 맑은 물이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음료보다 달고 맛있었다. 라리사가 다른 가지를 잘라 물을 마시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와 은실이에게도 물을 나눠 주었다.
“신기하다. 물이 나오는 나무가 다 있네?” _126쪽
이제는 정말 끝장이었다.
새하얗게 변한 머릿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서림아, 포기하지 마!’
엄마 목소리 같기도 하고, 리호 목소리 같기도 했다. 사방이 꽉 막혔을 때마다 리호가 온몸으로 부딪치며 길을 열어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럴 만한 힘도 용기도 없었다.
“리호야, 미안해. 나는 여기까지인가 봐.” _139쪽
“누, 누구세요?”
리호가 놀라서 소리치자 검은 그림자가 펄쩍 튀어 올랐다.
“아이, 깜짝이야! 그러는 너희야말로 이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니?”
모레나 선생님이었다. 솔라 에너지 손전등을 든 선생님은 현미경 안경까지 쓰고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무얼 찾고 있느냐고 리호가 물어보자 선생님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_212쪽
“이서림 할머니, 시간 여행할 준비 됐죠? 그럼 이제 출발합니다.” _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