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당신이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내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엄지 척’(그 유명한 ‘좋아요’)을 누를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수십억 번의 클릭은 어떤 지리적 분포 양상을 보이며, 그것들의 물질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은 어떤 생태적·지정학적 위협을 가하는 걸까? 이 책은 바로 그런 질문들을 주제로 삼고 있다.
-p.14, 「책머리에」 중
우리는 돈에 색깔이 있듯이 인터넷에도 색깔(녹색)과 냄새(상한 버터 냄새), 심지어 맛(짭짤한 바닷물 맛)이 있음을 발견했다. 인터넷은 또한 거대한 벌집에 비견할만한 새된 소리를 낸다는 사실도 알았다. 요컨대, 우리는 디지털 세계를 감각적으로 체험했으며, 이 체험을 통해서 그 세계의 과도함의 정도를 가늠해보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한 번의 ‘좋아요’를 보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간이 세운 것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거대한 규모일 것으로 여겨지는 엄청난 하부구조를 설치하고 가동시켜야 한다. 우리는 말하자면 콘크리트와 광섬유, 강철로 이루어진 왕국, 항상 대기 중이며 지시가 떨어지면 백만 분의 일 초 만에 복종하는 굉장한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이름하여 데이터센터, 수력발전용 댐, 화력발전소, 전략 금속 광산 등으로 형성된 ‘인프라 월드’.
-p.18~19, 「책머리에」 중
이렇듯, 디지털 기술의 홍보에 ‘녹색’, ‘지속 가능’, ‘친환경’ 같은 어휘들이 동원되는 것은 자칫 위험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만든다. 때문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당하다고 손가락질 받았을 법한 질문을 던지는 활동가, 기업가, 정치인들이 요즘 들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디지털 산업 자체가 녹색(Green IT)이 아닌데 어떻게 녹색 환경 구현에 도움이 되는 디지털 기술(IT for Green)이 가능한지 묻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자재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지를 안다면, 아마도 당신은 이 질문이 굉장히 통찰력 있고 똑똑한 질문임을 인정할 것이다.
-p.51, 「1 디지털 산업과 생태계: 환상에 지나지 않는 관계」 중
소비자와 디지털 산업과의 최초(최초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유일한)의 만남은 스마트폰 자체일 것이다. 알다시피 스마트폰은 순수함이라는 개념을 전파하는 아름다운 물건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어떻게 더러울 수 있단 말인가? 물건이 지닌 미학적 완벽함은 직관적으로 오염이라고 하는 것을 밀어낸다.
-p.71, 「2 스마트폰의 정점에서」 중
당신이 전동킥보드 주행에 드는 실제 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처럼 비싼 서비스를 이용하려 할 것인가? 사업자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앞으로 디지털 산업을 번성하게 하는 것은 컴퓨터나 프로그램 판매가 아니라 데이터의 상품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업이 클라우드의 중심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릴수록 점점 더 많은 부를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권력도 장악하게 된다. 늘 더 많은 정보를 빨아들이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에게 ‘무료’로 인식되는 서비스들을 미끼로 제공해야 할 터이다.
-p.122~123, 「4 클라우드 탐사」 중
아마존웹서비스가 필요로 하는 총전기량의 30퍼센트는 석탄에서 얻어진다. 넷플릭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15퍼센트가 오직 이 온라인 영상 플랫폼으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한층 더 흥미진진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어도비, 오라클, 링크드인 등도 각각 사용하는 에너지믹스의 23퍼센트, 36퍼센트, 23퍼센트를 석탄을 때서 얻은 전기로 충당한다니…. 트위터의 경우, 이 숫자는 21퍼센트 수준이라고 하니 다음에 트윗을 올릴 땐 잊지 말고 기억하시라!
-p.159, 「5 전기가 빚어내는 대혼돈」 중
우리가 2020년 겨울에 스칸디나비아의 북쪽 끝까지 순례를 감행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인터넷이 열기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를 구성하는 몇몇 부품들의 온도는 섭씨 60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최적화된 작업 환경에서라면 데이터 농장은 상온 20도에서 27도 사이로 유지되어야 한다. 에너지 먹는 하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냉방 시스템은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체 전력의 절반까지도 끌어다 쓴다”고, 한 정보학 교수가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p.165, 「6 북극에서의 전투」 중
인터넷이 거리를 단축시켜준다는 점에 주목하는 건 흥미롭다. 그런데 하이베르니아 익스프레스의 공사 담당자들은 줄곧 킬로미터 수를 따지고 또 따졌다. 뿐만 아니라 웹이 국가 간 경계도 없애줄 것이라고 했는데, 각국은 케이블이 지나가는 곳에 위치한 자국 영토의 주권을 행사하기를 원했다. 디지털 업계는 지리를 무시하기는커녕 극구 찬미한다. 웹 설계자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p.260, 「9 바다 밑 2만 개의 촉수」 중
그러나 2015년에 영국 버밍엄대학의 공학과 응용과학 교수인 앤드류 엘리스가 경종을 울렸다. 우리의 데이터 생산량이 네트워크가 수용할 수 있는 용량에 비해 너무 빨리 증가하고 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8년 후, 그러니까 2023년에 시스템의 한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용량 부족(capacity crunch)’이라는 표현이 이때 등장했다. 이 선언에 화답하듯, 케이블 사업자들은 우리가 ‘샤논의 한계(Shannon limit)’, 즉 광섬유가 운반할 수 있는 데이터의 최대량에 근접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들은 또한 다량의 전략적 케이블이 지나가는 해협들처럼 병목 지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이러한 병목 지점들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그 사고는 곧 대륙 수준에서 더 나아가 전 지구 수준에서 효과를 야기한다.
-p.267, 「9 바다 밑 2만 개의 촉수」 중
영향력을 위해서든 경제성장을 위해서든 또는 네트워크의 탄력성을 위해서든, 각국은 막무가내로 팽창하는 광케이블 회로의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에 자리 잡아야 유리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경로상에서 이집트와 중동이 차지하고 있는 중심적인 위치를 전복시킬 정도로? 케이블 하나가 특별히 판세를 급격하게 뒤집어놓을 수 있다.
-p.275, 「10 디지털 인프라의 지정학」 중
인터넷 DNA 안에는 환경에 대한 염려라는 부분이 들어 있지 않다. 환경을 염려했다면 네트워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존재한다 한들 최소한 현재와 같은 형태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세속적이다. 인터넷은 권력과 돈을 쟁취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이다. 베이징 정부는 21세기에 디지털이 주는 오락이란 결국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전쟁의 지속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은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게 될 것이다. 케이블은 점점 더 팽창할 것이고, 데이터센터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역량을 자랑할 것이다. 왜냐하면 데이터야말로 우리가 힘과 명예, 영향력과 번영의 추구라고 부르는 것, 다시 말해서 역사를 전진하게 만드는 영원한 동력 기관의 새로운 연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과 중국의 경쟁국들은 이것을 탐한다. 결과적으로, 인터넷의 지정학과 이 네트워크가 결정짓는 새로운 역학 관계는 디지털 산업의 활력을 강화할 것이며, 그에 따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커질 것이다.
-p.282~283, 「10 디지털 인프라의 지정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