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수저, 은수저도 아니지만 흙수저도 아니다. 일 억만금 재산보다 더 귀한 것을 물려받았다. 그것은 바로 아빠의 피끓는 유전자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듯이 나도 유별난 점이 하나 있는데, 지치지 않는 체력과 실행력이 그것이다. 친구들이 내 일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살이 날 것 같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무술용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손을 안 대어본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을 유통하고 제작했고,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거의 모든 온라인 마켓에 상품을 홍보했다. 그로 인해 온라인 창업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상품을 판매해 본 사이트가 워낙 많다 보니 도맡아 하는 과목도 여러 가지가 되었다. 취미가 돈 벌기라 할 만큼 20대 중반부터는 일에만 매진했는데 취미로 했던 에어비앤비 운영, 스톡 사진작가, 블로그 운영 등으로 쏠쏠한 수익을 얻었으며 이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를 펴내어 또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더욱 열심히 살았다.
- 14~15쪽
부모님에게 진 가장 큰 빚이 있다. 바로 부모님의 청춘을 먹고 자란 것이다. 아빠, 엄마의 수많은 시간과 돈은 다 나를 위해 쓰였다. 그 세월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내가 무얼 한다고 부모님의 흐른 세월을 되돌릴 수 있을까.
- 53쪽
부모님의 속마음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무심한 듯 딸의 결혼 여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부모님 덕에 여태 압박 없이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잘 살고 있다. 엄마는 우리가 자
라날 때부터 딸들이 어딘가의 구성원이 아닌 독립적인 개체로서 이름 석 자를 걸고 당당히 살기를 바랐고 아빠는 혼자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사는 딸의 모습을 보더니 언젠가부터 우리 입장을 지지해 주었다. 부모님 연배면 시집을 안 가고 있는 딸이 골칫덩어리라 여길 수도 있고 자식들이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 친구나 친척들이 부러울 수 있을 텐데 딸들이 시집 안 가냐는 주변의 물음에도 딸들 편을 곧잘 들어준다.
- 99~100쪽
“돈을 벌기보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만 65세가 지나면 이 자격증도 발급받을 수 없으니 미리 자격증을 따 두고 싶은 거야.”
더 이상 아빠를 말릴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아빠 생각이 내 생각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아빠의 일은 아빠가 알아서 조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내가 좀 안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 125쪽
생각난 김에 엄마에게 빚졌던 답변을 하나씩 해볼까 싶다. 심지어 올해는 연초에 집에 한 번 내려갔을 뿐이다. 거의 1년간 아빠, 엄마를 못 본 것이다. 유학 시절에도 4개월에 한 번은 집
에 왔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아빠 엄마와 오래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미뤄뒀던 ‘엄마 숙제’를 하나씩 해야겠다.
- 142쪽
살다 보면 많은 스승을 만나게 된다. 그중 우리 부모님과 같은 스승을 만난 것은 평생의 재산이 분명하다. 아빠에게는 지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삶의 자세를, 엄마에게는 긍정적이고 밝게 사는 삶의 태도를 배웠다. 부모님은 내게 최고의 스승이다.
- 216쪽
나이가 들고 부모님과 크게 마찰이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듯하다. 부모님도 나도 서로 고집 피우지 않고 한 발씩 양보한 것이 큰 이유겠지만 서로 자주 보지 않으니 더욱 애틋하고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 가끔 이렇게 만나보면 1년 365일 한 집에서 살 부대끼고 살던 시절이 아득하다. 서로의 바뀐 모습이 나 새로운 습관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가족을 만나는 일이 이렇게 동창회를 하거나 전우회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일 줄이야.
- 263~2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