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2
치매를 고칠 수 있는 약은 없다? 물론 그렇다. 그렇지만 간병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치매 환자의 분노를 억제하는 약은 존재한다(간병인을 힘들 게 하는 것은 기억상실이 아니라 시도 때도 폭발하는 분노이다).
p.14
놀랍게도 현재 치매 환자의 간병을 맡고 있는 당사자 중에도 치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모래에 고개만 파묻는 심정’으로 알고 싶지 않은 일에서 눈을 돌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p.15
치매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 알고 있다면, 환자가 심각한 증상을 보이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다.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도 난다. 웃음은 삭막해지기 쉬운 마음을 지켜주는 방패이다. 우선은 치매 환자보다 간병인의 심신부터 챙겨야 한다.
p.18
치매 환자였던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중략] 내가 체득한 중요한 사실은 간병인의 마음과 생활에 여유가 없으면 환자를 웃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p.33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경우, 화를 참기가 어렵다. 특히 논리적인 반박을 들으면 더 화를 낸다 [중략]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초조해지고, 화를 내게 된다.
p.47
부모의 치매 증상을 초기에 발견하고 싶다면 본인이나 형제자매의 의견보다는 그 외 관계에 있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식들은 오히려 부모의 치매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p.71
좋은 마음으로 사드린 새 가전제품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중략]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손에 익은 가전제품을 가능한 한 계속 사용하는 게 좋다.
p.75
치매인 엄마에게 ‘화를 내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오히려 전보다 더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해서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났기 때문이리라.
p.99
환각을 보는 환자는 본인도 무섭겠지만, 가족까지 섬뜩해진다. [중략] 머릿속에 보이는 영상을 수정할 수 없는 환자를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 현실에 함께 따라가 대처해보자.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안심시킬 수 있다.
p.165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간병 가족이 내린 ‘입원 결정’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다. 주로 떨어져 살고 있는 형제나 친척들, 어쩌다 한 번씩 환자를 보러 오는 이가 그렇다. [중략] 평소 간병에 도움을 주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이 환자와 간병가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단언컨대 경제적 지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