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문 | 남북한 양쪽에서 추앙받는 독립투사 6
| 추천사 | 언젠가는 역사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길 11
제1부 총사령으로 부임하다
1) 사령관 취임과 요녕농민자위단 성립 20
2) 연합전선을 펴다. 중·조 인민 최초의 군중대회 25
3) 중·조연합군 최초의 승리, 제1차 영릉가전투 29
제2부 탕쥐우의 요녕민중자위군 성립, 그리고 다시 연합
1) 국민당 정부 동북군 탕쥐우와 만남 36
2) 신개령전투와 양세봉의 후퇴 41
3) 제1차 흥경전투 43
4) 제2차 흥경전투와 통화, 그리고 특무대 48
5) 귀녀의 죽음 50
6) 관전현 보위전 53
7) 김일성과 만남 56
8) 요녕성 정부 출현과 특무사령부 62
제3부 만주와 국내에서 항일투쟁
1) 조선 국내와 압록강 연안에서 항일투쟁 72
2) 청원 공격전, 가족과 만남 75
3) 윤희순, 그리고 철도 연변 투쟁 78
4) 서진 원정 그리고 무순 공방전, 그 외 전투 80
5) 통화를 다시 빼앗기고 자위군 해산 81
6) 이회영 선생의 친서, 만남의 불발 87
제4부 조선혁명군, 다시 일어서다
1) 양세봉의 회고 92
2) 의목수(依木樹) 회의, 조선혁명군 재정비 96
3) 제3차 흥경전투 102
4) 중국공산당 동북혁명군과 만남 104
5) 양세봉의 인품과 에피소드 105
제5부 출생과 소년 시절
1) 출생 112
2) 1894년 동학농민운동 115
3)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117
4) 을미사변, 아관파천(노관망명) 120
5) 간도 그리고 연해주 123
6) 소년 시절, 서당 생활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교육 128
7) 안중근을 배우다. 그리고 한일병합, 서당 문을 닫다 130
8) 윤재순 132
9) 아버지의 죽음과 양세봉의 혼인 134
제6부 중국으로 이주, 독립군이 되다
1) 흥경현 영릉가 138
2) 양세봉, 독립운동에 뛰어들다 142
3) 천마산 독립군에 입대하다 144
4) 다시 찾은 집 그리고 양시봉의 결혼 145
5) 참의부 참가, 고마령전투 147
6) 양세봉, 정의부에 가다. 그리고 길림에 상주 149
7) 왕동헌과 만남 151
8) 금구자로 이사, 김형직의 죽음 155
9) 삼부 정립과 갈등 157
10) 길림에서 안창호를 경호하다 161
제7부 국민부, 조선혁명군 설립
1) 국민부 창립 166
2) 금구자에서 가족과 만남 169
3)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출범 174
4) 국민부의 약화, 내부 이념 다툼 177
5) 9·18사변과 연합항일의 서막, 중국공산당의 대두 182
6) 흥경사건과 양세봉 189
7) 조선혁명군과 무장투쟁 제일주의 192
제8부 1934년
1) 쌍립자회의 200
2) 중국공산당의 동북인민혁명군 203
3) 최후 209
| 에필로그 |
‘한국광복군’에 맥락이 닿아 있는 양세봉의 ‘조선혁명군’ 219
| 부록 |
양세봉 연보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