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폭우가 한바탕 지나간 어제 오후, 자전거를 타고 뜰 안으로 가만히 들어오신 선생님, 다가와 커다란 수박 한 통을 건네주십니다. 제가 들어도 무거운 수박을 땀 흘리며 손수 들고 오신 것이지요. ‘차 한 잔을 하고 가시라’는 소리가 무색하게 ‘어서 가봐야 한다’며 곧바로 자전거를 돌리십니다. 너무도 감사했지만 표현도 못 하고 제대로 배웅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선생님의 자전거가 골목길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대문 앞에 서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수박 한 통을 받고 보니, 보이고 스치는 모든 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내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첫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 좋은 미역과 소고기를 사다 주신 아버지 모습도 보였습니다. 저희는 그 수박을 바로 먹을 수 없었어요. 일하는 동안 짬짬이 바라보기도 하고 한참 동안 만져보면서, 퇴근 후 집으로 가져올 때도 품에 꼭 안고 가져왔습니다. 저희의 마음고생을 진심으로 어루만져주심에 감동했기 때문이지요.
사흘 전 제민천 범람 소식을 공주시청의 긴급 문자로 받고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새벽부터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폭우 속에 츄리닝 바지에 장화를 신고 찾아오셨어요.
“루치아, 별일 없나 보러 왔어요. 오늘, 내일 문학관은 시청에서 휴관하라고 해요. 한 팀장, 둘러보자.”
“선생님 너무 무서워요. 골목에 있는 하수구까지 넘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빠지네요. 급한 마음에 다락방으로 짐을 옮기고 있었어요.”
불안한 표정 사이로 기분 좋은 온기가 흐릅니다.
처음 겪는 자연재해 앞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락방으로 중요한 것들을 대충 올려두고, 계속 긴장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이틀 동안 ‘루치아의 뜰’ 오픈을 하지 않았지만 한 달 동안 쓸 에너지를 다 쓴 기분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선생님께서 비를 맞고 제민천 끝인 금성동까지 돌아보셨다는 것입니다. 점심도 거르신 채로 제민천변 가게들을 걱정하시며 이집 저집 들여다보셨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천변에 나와 있던 마을 사람들이 위로가 되었는지 시인님을 알아보고 ‘나오셨냐’며 좋아하셨습니다. 순간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지역의 어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염려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선생님의 따뜻한 인품이 보였고 저절로 풍겨 나오는 삶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그 수박이 식탁에 놓였습니다. 남편과 함께 먹으면서 선생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다시 힘내라고 가져다주신 수박 한 통은 그저 단순한 수박이 아님을 기억하자고 했습니다.
‘루치아의 뜰’과 저희 부부에 대한 선생님의 과분한 사랑의 표시! 거기에는 사랑과 무언의 가르침, 깊은 위로와 친밀함이 들어 있었습니다.
요즘 ‘혜윰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있는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 나오는 모리 교수님 생각도 났습니다. 매주 화요일에 제자 미치와 함께 진행한 마지막 수업의 주제는 ‘인생의 의미’였습니다. 교수님은 경험에서 얻은 바를 가르쳤고 그 가르침은 제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리 교수는 선생님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시간을 쌓아야 하고, 타인에게 뭔가를 베풀면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 건너감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기에는 많은 돈이나 높은 권력도 필요 없다고 말하지요. 모리 교수님이 죽음 앞에서 자신 가까이에 있는 책과 노트, 작은 히비스커스 화분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죽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수박 한 통은 제 불안한 마음을 평온함으로 녹아내리게 했습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오늘날 주변 사람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마음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소탈하면서도 따뜻함이 넘치는 선생님의 있음이, 마치 저만큼 서서 “아이고, 내 새끼 고생 많았다.” 하며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시는 부모님 같았어요.
“우리에겐 염치없이 급할 때만 찾는 하느님이 계시잖아요. 그래도 루치아는 잘 돌봐주실 거야. 이 집은 괜찮을 거야.” 하시던 말씀과 수박 한 조각이 제 입으로 들어옵니다. 그 대가 없는 보살핌을 먹고 나니 이른 아침부터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을 깼지만 마음에 작은 틈이 생기고 있음을 느낍니다.
“선생님, 저희가 십 년 동안 ‘루치아의 뜰’을 얼마나 정성들여 가꾸며 좋아했는지 아실 거예요. 그런 집이 사흘 동안 내린 폭우로 제민천이 범람해 휩쓸려 간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무서웠어요.”
“루치아, 공주 사람 다 됐다.”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압니다. 많은 사람이 합심하여 힘과 위로가 되어주고 또 이런 어려운 가운데 따뜻한 정도 느끼게 됨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외로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이 계셔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늘 저희에게 과분한 사랑을 베풀어주심도 알고 있습니다. 기쁜 일에 누구보다 축하해 주시고, 공주 태생이 아니라서 겪는 서운한 일들을 달래주셨지요. 팔순이 다되어가는 선생님을 마주할 때마다 저희는 반갑고 설렙니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사뭇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선생님께서 끝까지 여생을 보내실 곳,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공주 원도심에서 오래도록 선생님과 우리 마을을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나태주 선생님과 수박 한 통」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