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피로 물들인
순수할 만큼 잔인한 학교폭력
어느 평온한 주말, 안태는 절친한 친구 정식을 만나러 번화가로 나섰다. 함께 새로 생긴 분식점도 가고 피시방에 가서 게임도 할 생각이었다. 난데없는 민규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악! 살려줘.”
옆 학교 애들이 자신을 때리고 있다는 민규의 전화에 안태는 정식과 한달음에 그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안태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옆 학교 학생들이 아닌, 안태네 고등학교의 일진 클럽 ‘세븐틴’ 무리였다.
“왔냐? 너 오늘 좀 맞아야겠다.”
“내가 왜?”
“너 맞아도 멀쩡한 놈이라며.”
세븐틴의 구성원은 이름 그대로 17명. 우두머리 진열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처럼 선전포고를 하니 나머지 16명이 손으로 발로 안태와 정식을 때리기 시작했다. 정식은 순식간에 나가떨어졌고, 안태는 퍽, 퍽, 소리가 나도록 맞았음에도 버텼다. 그러자 그들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무언가 실행시켰다. SNS 라이브 방송을 켠 것. 그렇게 코피가 터지고 물에 처박힌 안태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다. 보도블록 위로 안태의 피가 흘렀고, 킥킥대는 진열의 웃음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안태에게 펼쳐질 지옥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지독한 현실과
상처에 목 졸린 친구의 죽음
엄청난 구타를 당한 안태는 병원에서 금방 깨어났지만, 정식은 좀처럼 의식을 찾지 못했다. 금방 기절해 안태에 비해 얼마 맞지 않은 정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안태는 이상하기만 했다.
‘아닌가, 멀쩡한 내가 이상한 건가…….’
하지만 진짜 이상한 일은 이후 생겨났다. 정식이 아직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 열린 ‘학폭위’에서 가해자인 진열 측은 기세등등했고, 피해자인 안태와 정식 측은 전전긍긍했다. 아무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당한 이들에게 교사들마저 용서를 강요했다. 부모가 없는 안태의 보호자인 할머니는 자꾸만 머리를 조아렸고, 진열 아버지의 건물에서 상가를 운영 중인 정식의 부모는 앞장서 합의서에 사인했다. 현장에 있던 안태는 분노가 끓어 올랐고,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정식은 몸이 채 회복도 되기 전에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식은 자살했다.
18년만에 밝혀진 존재적 비밀,
서서히 맞춰지는 퍼즐 조각들
무자비한 폭행과 상처뿐인 학폭위를 겪은 안태에게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상처를 가진 유일한 친구인 정식의 죽음은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만을 안겼다. 그 순간에도 안태가 얻어맞는 장면은 인터넷에 끝없이 유포되고 있었고, 안태를 향해 각기 다른 온도를 지닌 셀 수 없는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열여덟의 나이로 감당하기 힘든 시련들은 그렇게 안태를 옥상 난간으로 이끌었다. 소년의 작은 결심을 방해한 이는, 마치 필연적인 듯한 우연으로 안태에게 다가왔다.
평소 알고 지냈지만 이토록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던 임씨 아저씨는 안태를 구해냄과 동시에 혼란에 빠트렸다. 현실의 지옥에서 건져져 우주의 공상을 헤매게 된 안태는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아저씨의 말을 조금씩, 서서히 이해해갔다. 맞아도 상처가 나지 않는 몸, 단 한 곳도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가족, 평소 의아하기만 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태도 등등 어긋난 채 쥐고 있던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존재적 비밀을 깨달은 안태는 자신에게 있다는 초능력을, 분명 지니고 있지만 제대로 발현된 적 없어 보이는 그것을 되찾고 싶었다. 여전히 불쑥불쑥 차오르는 복수심을 해소할 무기가 되어줄 것 같았으니까. 그런 안태에게 아저씨는 조심히 일러주었다.
“증오와 원한이 너의 초능력을 살리는 힘이 될 거다.”
놓으려야 놓을 수 없는 복수심
드디어 세상을 향해 겨눠진 총구
그때부터 안태의 수련은 시작됐다. 복수로 빼든 칼날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향할 곳보다 벼리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의미 있어졌다. 하지만 안태의 품이 넓어지고 능력치가 향상될수록, 그래서 복수라는 명분이 동력을 잃을수록 진열은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잔잔하고 고요한 안태의 호수에 자꾸만 돌을 던졌다. 그 돌에 안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맞았고, 삼촌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재력 있는 부모와 학교에서의 높은 서열이 진열을 끝내 악마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안태는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자신도 변해야 함을 깨달았다. 자신의 주변을 지키는 것 또한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각성에 각성을 거듭한 안태는 이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어쩌면 안태가 이토록 능력을 키우게 된 건 쉬지 않고 괴롭힘을 일삼은,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게 만든 진열의 덕이었다. 그 아이러니한 원리 속에서, 평행우주에서 온 우주의 ‘버그’는 지구에 사는 정의로운 인간으로서 힘을 쓰기로 했다. 기회는 줄 만큼 줬고, 인내는 할 만큼 했다.
마지막 트리거를 당긴 건 과연 누구일까. 안태는 과연 자신의 세상을 지킬 수 있을까. 그가 있었다던 평행우주는 어떤 곳일까. 선명한 이야기 너머로 자꾸 질문을 던지는, 무언가 궁금하게 만드는 마력이 존재하는 소설이다. 고정욱 작가의 초능력이 발휘된 건 아닐지 의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