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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ISBN-13
    979-11-6684-337-2 (93160)
  • 출판사 / 임프린트
    세창출판사 / 세창출판사
  • 정가
    26,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7-19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쇼펜하우어
  • 번역
    이서규
  • 메인주제어
    철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철학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2 * 225 mm, 628 Page

책소개

의지의 부정을 통한 무의 경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우리 삶의 갈등 및 모순에서 비롯된 고통과 그 원인에 천착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쇼펜하우어의 주저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의지가 객관화된 개체로서 우리 자신을 있게 한 맹목적 의지에 휘둘리기 때문에 삶이란 본질적으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것이 결국 의지의 맹목적인 활동 때문임을 직관하며, 모두가 너나없이 같은 처지에 있음을 알고 서로를 부둥켜안을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놓여날 수 있다.

목차

차 례

 

옮긴이의 말

 

1판 서문

2판 서문

3판 서문

 

1권 표상으로서의 세계 첫 번째 고찰 

근거율에 의존하는 표상: 경험과 학문의 대상

 

2권 의지로서의 세계 첫 번째 고찰 

의지의 객관화

 

3권 표상으로서의 세계 두 번째 고찰

근거율에 의존하지 않는 표상: 플라톤적인 이념, 예술의 대상

 

4권 의지로서의 세계 두 번째 고찰

자기인식에 도달했을 때의 살려는 의지의 긍정과 부정

 

쇼펜하우어철학 해제

본문인용

책 속에서

 

p. 35

“세계는 나의 표상(Vorstellung)이다.” 이것은 살아서 인식하는 모든 존재에 적용되는 진리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이러한 진리를 반성적으로, 추상적으로 의식할 수 있는데, 인간이 이것을 진정으로 의식한다고 하면 그는 분별력(Besonnenheit)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가 아는 것은 태양과 땅이 아니라 태양을 보는 눈 그리고 대지를 느끼는 손을 아는 것이라는 사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단지 표상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 세계가 오로지 완전히 다른 존재, 즉 인간 자신인 표상하는 자(das Vorstellende)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고 확실해질 것이다.

 

p. 63

이렇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은 기꺼이 마법이나 기적을 믿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양한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약속된 연관성 속에서 행동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따라서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속거나 음모에 넘어간다. 어리석은 사람은 주어진 충고와 진술된 판단 등등의 숨겨진 동기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항상 인과법칙을 예리하고, 신속하게, 쉽게 사용하는 것, 즉 오성의 힘뿐이다.

 

p. 104

이런 점에서 의 직접적인 반대는 감정(Gefühl)인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이러한 감정에 대해 설명해야만 한다. 감정이라는 단어가 표시하는 개념은 전적으로 단지 소극적인(negativ) 내용, 즉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는, 즉 이성의 추상적인 인식이 아니라는 내용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추상적인 인식 이외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감정이라는 개념에 속하게 되는데, 그런 까닭에 감정이라는 개념의 지나치게 넓은 영역은 아주 이질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질적인 것들이 오로지 이러한 소극적인 점에서만, 즉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점에서만 일치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주 상이하고 적대적인 요소들이 감정이라는 개념 속에서는 평온하게 서로 나란히 놓여 있기 때문이다.

 

p. 165

우리는 1권에서 표상을 단지 그 자체로, 따라서 단지 일반적인 형식에 따라 고찰하였다. 개념, 즉 추상적인 표상은 직관적인 표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내용과 의미를 갖는 한에서 그 내용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는데, 추상적인 표상은 이러한 직관적인 표상 없이는 그 가치나 내용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전적으로 직관적인 표상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직관이 우리에게 나타내는 직관의 내용과 보다 상세한 규정들 그리고 형태를 알게 된다. 특히 우리에게는, 그러한 직관의 지각된 의미와는 다른 직관의 본래적인 의미를 해명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해명을 통해 이러한 형상들(Bilder)이 완전히 낯설고 아무런 의미 없이 우리를 지나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이해되며 우리의 전 존재가 흥미를 갖게 한다.

 

p. 211

우리는 다수성이 보통 시간과 공간을 통해 필연적으로 제약되고 오로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생각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개체화원리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근거율의 형태로 인식하고, 이러한 근거율 속에서 우리의 모든 인식이 선험적으로 표현되지만, 그러나 우리의 모든 인식은, 위에서 논의했듯이 그 자체로는 사물들 자체가 아니라 단지 사물들의 인식가능성, 즉 물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인식형식일 뿐이다. 물자체는 그 자체로 인식의 모든 형식으로부터, 또한 가장 보편적인 인식으로부터, 주관에 대해 객관으로 있음(Objektsein)이라는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즉 표상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p. 286

따라서 학문이라는 이름을 공통으로 갖는 이 모든 것들은 다양한 형태의 근거율을 따르고, 학문의 주제는 현상, 현상의 법칙들, 연관 그리고 여기에서 생기는 관계들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밖에서 존재하는 것, 즉 본래 세계의 본질, 세계의 현상들의 참된 내용, 그 어떤 변화에도 종속되지 않기에 항상 동일한 진리로 인식되는 것, 한마디로 말하자면 물자체, 즉 의지의 직접적이고 적절한 객관성인 이념들을 고찰하는 것은 어떤 인식방식인가? 그것은 천재의 작업인 예술(Kunst)이다. 예술은 순수한 관조를 통해 파악된 영원한 이념들, 즉 세계의 모든 현상의 본질적인 것과 지속적인 것을 재현하고, 이념들이 재현되는 재료에 따라 예

술은 조형예술, 시, 음악이 된다. 예술의 유일한 근원은 이념의 인식이다. 예술의 유일한 목표는 이러한 인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p. 388

따라서 다른 예술은 모두 단지 간접적으로, 즉 이념을 수단으로 의지를 객관화한다. 그리고 우리의 세계는 개체화원리(개체 그 자체에게 가능한 인식의 형식)에 관계하여 다양성으로 여러 이념이 현상한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은 이념을 고려하지 않고, 또한 현상하는 세계에 전혀 의존하지 않으며, 현상하는 세계를 전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에, 음악은 세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음악은 세계 자체가 그런 것처럼, 다양하게 현상하여 개별 사물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여느 이념들이 그렇듯이, 전체 의지직접적인 객관화이고 모사인 것이다. 따라서 음악은 결코 다른 예술처럼 이념의 모사가 아니라 의지 자체의 모사이고, 이러한 의지의 객관성이 이념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음악의 영향은 다른 예술들의 영향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다른 예술은 그림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지만 음악은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p. 494

그러나 의지는 자기 신체의 자기긍정을 수많은 개체들에서 나란히 드러내면서, 의지는 모두에게 있어 고유한 이기주의 덕분에 어떤 개체에서는 아주 쉽게 이러한 긍정을 넘어 다른 개체에게서 현상하는 동일한 의지를 부정할 수 있게 된다. 전자의 의지는 다른 사람의 의지긍정의 경계를 침범하여, 개체가 다른 신체 자체를 파괴하거나 부상을 입히거나 또는 다른 신체 자체에서 현상하는 의지에 봉사하는 대신에 다른 신체의 힘을 자신의 의지에 봉사하도록 강요한다. 따라서 개체가 다른 신체로 현상하는 의지로부터 이러한 신체의 힘을 빼앗아 버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의지에 봉사하는 힘을 자신의 고유한 신체가 지닌 힘을 넘어 증가시키며, 따라서 다른 신체에서 현상하는 의지를 부정함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신체를 넘어 자신의 고유한 의지를 긍정하게 된다. 다른 개체의 의지긍정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이전부터 분명하게 인식되어 왔는데, 이러한 침범이라는 개념은 부당함(Unrecht)이라는 말로 일컬어져 왔다. 왜냐하면 침입하는 사람과 침입당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우리처럼 분명하게 개념적으로가 아니라 감정으로서, 순간적으로 그러한 사태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부당함을 당하게 된 사람은 다른 개체에 의해 자신의 신체가 부정당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신체의 긍정의 영역으로 침범해 오는 것을 직접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으로 느끼게 된다.

 

p. 602

우리 앞에는 오직 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무로 사라져 버리는 것에 저항하는 것, 즉 우리의 본성이 바로 살려는 의지이며, 이러한 살려는 의지가 우리 자신이며 우리의 세계이다. 우리가 그다지도 무를 싫어하는 것은 우리가 그같이 삶을 의욕하고 있고, 이러한 의지 말고는 다른 것이 아니며, 그러한 의지 이외에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는 점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궁핍과 난처함으로부터 세계를 극복한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리게 되면, 끝없는 충동과 노력 대신에, 소망에서 두려움으로 그리고 기쁨에서 고통으로의 지속적인 이행 대신에, 의욕하는 사람의 삶의 꿈을 만족시키려는 결코 충족되지 않고, 결코 소멸하지 않는 희망 대신에, 모든 이성보다 고차원적인 평화, 큰 바다와 같은 완전한 마음의 고요, 깊은 평온,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명랑함이 나타나게 된다. 세계를 극복한 사람에게서 의지는 우리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사실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기인식에 도달하고,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며,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부정하고, 그런 후에 오직 의지의 마지막 자취가 그를 생기 있게 하는 신체와 함께 소멸하는 것을 보려고 기다린다.

 

p. 628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러한 무의 경험을 인도인들은 브라흐마로 합일한다거나 불교도는 니르바나에 도달한다고 말하는데, 진정한 종교에서 말하는 성자들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처럼 무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평

현대 사회에 이르러 

날이 갈수록 두터워지는 타인과의 경계

여기저기에 만연한 고통과 불안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해답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우리 삶의 갈등 및 모순에서 비롯된 고통과 그 원인에 천착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쇼펜하우어의 주저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근거율에 따라 맹목적인 살려는 의지의 지배를 받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리고 의지가 객관화된 개체로서 우리 자신을 있게 한 맹목적 의지에 휘둘리기 때문에 삶이란 본질적으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보다 높은 단계에서 객관화된 개체로서 이러한 의지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인식주관에서 순수인식주관으로의 고양을 의미한다. 마치 “수많은 형태의 구름 모양을 바라보지만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구름이, 수증기로 이루어졌다는 구름의 본질을 통찰한 사람에게는 동일한 구름으로 조망되는 것”(621쪽)처럼 순수인식주관으로서 이념(의지의 직접적이고 적절한 객관성)을 직관하는 것이다. “이념을 관조하는 순수인식주관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율에 사로잡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벗어나며 이때에 비로소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완전하고 본래적인 모습,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의지가 객관화된 세계에 불과하다는 점을 통찰한다.”(620-621쪽)

 

이념의 직관, 의지의 부정 

모두의 처지가 하나같다는 동정심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다 

 

하지만 이념을 직관하는 것만으로는 의지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고 근거율에 종속되어 개체들이 구분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상태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의지의 부정이 필요하다. “의지의 부정은 인식작용이 의욕으로부터 분리되어 개체들의 이념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맹목적인 살려는 의지가 이끌어 가는 고통스러운 삶의 본질들을 간파하여, 결국은 의지의 진정제가 된다.”(624쪽)

시간과 공간, 인과율에 붙들리는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타인(원인) 역시 의지의 한 개체이자 나의 일부임을 인식해야 한다. 무언가를 향한 시도 때도 없는 나의 욕구와 그것이 해결되었을 때 느끼는 만족이나 그러지 못했을 때의 불만족 또한 모두 목적 없는 의지의 한 작용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것이 결국 의지의 맹목적인 활동 때문임을 직관하며, 모두가 너나없이 같은 처지에 있음을 알고 서로를 부둥켜안을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놓여날 수 있다. 

자살로써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살은 방법이 아닐뿐더러 의지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배를 강력하게 긍정해 버리는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체만을 부정한다.”(586쪽) 자신이 처한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만족할 만한 삶이 따로 있다는 뜻도 되므로 이러한 자살에도 삶에 대한 의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가독성을 높인 본문 디자인, 옮긴이의 정합성 높은 번역

세창클래식으로 새롭게 만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 책은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첫 번째 고찰로 충분근거율에 의존하는 표상을 다루고, 2권은 의지로서의 세계를 고찰하며 의지의 객관화를 다룬다. 3권에서는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다시 고찰하면서 충분근거율에 의존하지 않는 표상을 다루다가 4권에 이르러서는 의지로서의 세계를 다시 살피면서 자기인식에 도달했을 때의 살려는 의지의 긍정과 부정에 대해 살펴본다. 끝으로 쇼펜하우어철학 해제에서는 섬세하고 정묘한 옮긴이의 해설이 본문 전체를 정리하듯 조망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오랜 시간 연구하고 가르쳐 온 이서규 교수의 정합성 높은 새로운 번역과 친절한 해제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세창클래식 시리즈로 기획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2색 인쇄를 통해 책의 가독성을 높이고 펼침성 좋은 제본으로 독자들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할 수 있도록 독자의 편의를 고려하였다. 거기다 원주와 옮긴이주를 별색으로 구분하는 등의 편집 체계로 독자들이 주석을 분간하기 좋게 책 매무새를 가다듬었으며, 갈수록 작아져 가는 인문학 시장에서 독자들이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합리적인 가격으로 진입장벽을 낮추었다. 고통과 불안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쇼펜하우어 주저의 새로운 번역이 독자들로 하여금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이해하며 자신 삶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다잡게 하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저자소개

저자 :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독일의 철학자이다. 그는 전통철학이 제시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피상적인 해석을 거부하면서 맹목적인 살려는 의지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현존재분석에서 출발하는 페시미즘의 철학을 정초하고, 이를 통해 삶의 무상성(Nichtigkeit)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였다. 쇼펜하우어는 괴팅겐대에서 의학, 자연과학, 철학을 공부하고, 이후에는 베를린대에서 철학공부를 계속한다. 1813년 예나대에서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로 박사학위를 받고, 1819년에는 그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다. 1820년부터 베를린대에서 
사강사로 활동하지만 실질적인 강의활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1833년에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하여 저술활동을 하다가 186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사망한다. 쇼펜하우어의 저서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편(1819), 『자연에서의 의지에 대하여』(1836), 『도덕의 두 가지 근본물음』(1840), 『의지와 표상으
로서의 세계』 2편(1844), 『소품과 부록』 1·2권(1851) 등이 있다.
번역 : 이서규
건국대 미생물공학과와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와 튀빙겐대에서 철학, 종교학, 사회학을 연구하였으며, 뷔르츠부르크대에서 하이데거에 대한 논문(Existenz und Ereignis, 1999)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제주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와 역서로 『니체와 전통해체』(서광사, 1999), 『인간과 실존』(이문출판사, 2000), 『어느 한 인간의 죽음』(오감도, 2002), 『삶과 실존철학』(서광사, 2002), 『현대철학의 이해』(건국대출판부, 
2003), 『쇼펜하우어의 철학』(이문출판사, 2004),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번역, 지만지, 2008), 『하이데거 철학』(서광사, 2011), 『철학의 시대』(공저, 해냄출판사, 2013), 『쇼펜하우어 철학이야기』(서
광사, 2014), 『쇼펜하우어 vs 니체』(세창출판사,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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