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이고 왜 교토인가?
지금의 문화 트렌드에 부합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인문 트렌드를 선도하다
코로나가 풀리면서 해외여행객들의 수가 크게 늘었다. 특히 각광받는 여행지는 일본이다. 2023년 가장 인기 있었던 해외 항공 노선은 1위부터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순으로, 일본 여행객의 수가 실로 압도적이다. 이제 목전인 올해 휴가철에도 일본은 한국인 관광객들의 최상단 옵션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일본으로의 여행이 반복되고 익숙해질수록, 초행자를 위한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백화점식의 가이드북으로는 부족해진다. 일본의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그들의 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해상도를 높이는’ 기행서의 등장은 필연에 가깝다. 더 다양한 관점. 그리고 더 깊이 있는 지식과 체험.
그것들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는 일본기행이라는 테마에 있어 이제 당연하다. 심지어 직접 대한해협을 건너지 못하고 아쉬움을 삼키는 서재 안 여행객들에게도 그 욕망은 정확히 동일할 것이다.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는 이런 여행객들과, 교양 독자들의 요청에 대한 치밀한 응답이다.
서재에 앉아서 교토의 역사문화는 물론
‘일본인의 내면’까지 심도 깊게 접하다
이 책은 전직 기자이자 현재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인 이인우 작가의 교토 탐방기다. ‘일본 문화의 정수’,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교토. 이곳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학문과 예술이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일본 문화의 보고다. 일본을, 그리고 일본인을 이해하기 최적의 장소로 평가받는다.
교토는 서기 794년 간무덴노(천황, 또는 일왕)가 한반도 도래인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천도를 단행(본문 262페이지)한 이래,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천이백 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근세에는 상공업이 아주 발달한 세계적인 대도시였다(기온, 본문 159페이지). 정치적, 경제적 파워를 다른 도시들에게 넘겨준 현재에도, 학술에서만큼은 여전히 도쿄 못지않은 일급이다. 다른 한편으로 교토는 근세에 자이니치(재일교포)들이 많이 정착한 곳(본문 355페이지)이다. 그에 발맞추어 양심적인 여러 일본인들, 일본의 여러 손꼽히는 지성들과 사회운동가들과 자이니치들의 협력이 지속된 증거가 도시 이곳저곳에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 도시 각지를 기행해온 저자는 교토의 역사, 문화, 예술, 그리고 철학을 이야기하며 독자를 “일본인의 내면”으로 안내한다.
깊이 있는 글과 풍부한 사진,
남들과 다른 교토, 일본, 인문 경험을 하고 싶은 여행객과 독자들의 필독서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일본적 미학을 구성하는 교토의 볼거리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게도 관광지로 유명한 금각사(긴가쿠지)나 각양각색의 일본의 사찰들, 또는 교토인들이 애정하는 산책로 등이 그 안에 들어 있다. 2부에서는 교토의 예술문화를 있게 한 물적 기반들을 다룬다. 장사꾼들의 거리와 신사들, 막노동꾼과 거리의 예인들이 활보하던 강변이 그 무대다. 3부는 교토의 아름다운 정원들을 돌아보는 파트다. 4부에서는 교토 건설과 교토 초기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한반도 도래인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5부에서는 교토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일 우호의 기록이다.
매 파트마다 대부분 작가가 찍어 온 고품질 사진들, 미려한 문장들, 그리고 풍부한 역사 지식들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교토에 들렀다면 당연히 가봐야 할 명소들이 소개되는 것은 기본이다. 그에 더해 역사·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들로도 저자는 독자를 충실히 안내하며, 그에 대한 인문학적 해설을 곁들인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친, 또는 같은 장소를 지나쳐도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최근 시장에 나온 책 중 가장 수준 높은 인문 여행기,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교토 예술·문화·역사 기행’의 결정판
교토나 다른 여행지를 불문하고, 상기한 대로 여행서는 간단하고 다종다양한 정보전달에 치중하고 있거나, 여행지를 유람하는 주관적 감상을 담은, 에세이적 성격이 강한 경우가 대다수다. 교토에 대해서도 다른 많은 양서들이 나와 있지만, 앞서와 같은 점은 동일하다.
유일한 예외라면 유홍준 선생의 교토답사기(전 3권, 요약본 1권, 창비 펴냄) 정도다. 유홍준 선생의 탁월한 저서는 마찬가지로 교토 스폿들을 하나하나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와 비교하면 문화유산 답사와 큐레이팅에 집중한, 예술사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다.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역시 역사적이다. 하지만 문화유산과 명소들을 돌아보면서는 예술사적 접근보다 미적 대상의 ‘일본적’ 감상(1부 내용)에 더 치중하며, 따라서 현장감과 함께 예의 ‘일본인의 내면의 세계’를 바라보는 데 중점을 둔다. 교토의 역사는 오히려 경제사와 생활사 쪽에 더 많은 포인트가 놓여 있다. 가령 교토의 인기 관광로 ‘철학의 길’을 낳은 것은 그 옆의 비와코 수력발전소와 발전용 송수로(소스이. 본문 202페이지)로, 그 두 곳을 아울러 감상해야 마침내 교토, 그리고 일본의 총체적인 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요지다.
추천사에서도 지적하다시피, 일본인들은 대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재능이 있는 장인의 민족이다. 가령 일본 가레산스이(돌이나 이끼로 만든, 산과 물이 없는 산수 풍경) 정원의 정밀한 구도와 상징성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일본 정원은 관객과는 소통할지언정, 바깥과는 무대 가림막으로 분리된 장소다(본문 42페이지). 무대 안팎을 모두 살피는 것으로 비로소 일본인들의 물신주의적 성격은 받아들여지는 동시에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일본적 아름다움의 비판적 이해 또는 이해적 비판, 혹은 변증법적 지양이라고나 할까.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에서 출발, 미학을 거쳐 우정의 연대로 향하는 기행기,
한일관계사와 한일우호에 관심이 있는 한·일 양국인들을 위한 편지
책은 한일관계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일본 초기의 신화적 요소들은 도래인들의 일본 정착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암시하고 있다. 가령 고대 일본의 신화적 건국자 가운데 하나인 스사노오노미코토(320페이지)는 신라계 신이다. 실제로 교토에는 ‘신라계’는 물론 ‘백제계’, ‘고구려계’로 분류할 수 있는 신사들이 그야말로 ‘깔려 있다’. 4부에서 저자는 이제는 한국 지성계에도 제법 알려진 여러 도래계 신사(가령 미나모토노 요시미쓰의 신라선신당, 310페이지)를 돌아보는 한편, 사라져 가는 여러 한반도 이주인들의 흔적을 세심하게 살핀다.
5부는 한일 연대의 기록이다. 일본의 ‘국민 작가’ 시바 료타로와 ‘고려미술관’의 건립자 정조문 형제의 우정, ‘박정희도 머물렀다’는 조선계 사찰 만주지와 ‘자이니치 철거민’의 투쟁과 승리를 다룬 우토로기념관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교토 2차, 3차 방문을 계획하는 한국인이라면,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꼭 가봐야 할 장소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 책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점이다. 다들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한국인의 대일관은 분노와 무시를 격하게 오가는 중이다. NO 재팬과 일본여행 붐, 인기 있는 반일과 인기 없는 한일동맹 선언 속에서 한국 국민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저자는 독자들에게 일단 교토 정원부터 걸어보자고 권유하며, 은근슬쩍 이런 부분을 넘겨버리는 척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직접 독자들이 갈증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저자는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일본 여행을 꿈꾸는 이들은 물론, 일본 문화를 알고 싶은 독자, ‘일본’을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은 독자들을 위한 책
책 5부에서 등장하다시피, 일본에는 한일문제에 대해 연대와 우정을 표한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일본의 공식적인 미학은 반역사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물신주의적 성격이 강하지만, 일본의 여러 예술작품들을 보면 한국인들 못지 않게, 아니 그것을 능가할 수준의 역사성에 대한 통찰과 반성적 사고를 체험할 수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무슨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정치적 입장을 초월한 정치적 입장이 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실은 한국인들 역시 비슷하게 체감하고 있지 않을까. 분명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일본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이해가 없이는 우리에게 친일본이건 반일본이건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왜 일본 인문기행인가, 왜 꼭 교토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본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먹은 정치인들, 기업가들, 교양 지식인들, 특히 학생들에게 더없이 추천하는 책이다. 물론 그저 글을 읽고 사진을 구경하는, 관람객의 심정으로 페이지를 넘겨도 즐거움이 덜하지는 않다. 교토 트레킹을 꿈꾸는 여행자들의 가이드로도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