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1. 불을 켜고, 2. 선풍기를 김 부장에게 고정하고, 3. 방문을 닫고, 4. 눈에 불을 켜고 박수 쳐가며 방 안 모기를 다 잡아 죽인 뒤, 5.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더위에 쪄 죽더라도 모기는 질색이다. 김 부장 취향은 모르지만 그는 바람을 얻었고 모기에겐 노출됐다. 무릇 인생이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나는 공평한 내 처사에 스스로에게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뒤이어 밀린 잠이 스멀스멀 올라와 더위도 잊을 즈음, 마루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젠장, 김 부장의 코골이가 시작됐다. 모기가 코의 알람이라도 건드렸나보다. 그렇게 코골이 대마왕 김 부장의 공습으로 인해 나는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역시 삶은 공평하지 않다.
_17쪽
“안녕하셨어요?”
“자네 아직 일자리 못 구했는감?”
펀치 한 방.
“예, 알아보고는 있는데…….”
“망원시장 청과상에 배달 일 알아봐줄까? 싫지? 대학교 나왔다고, 그치?”
펀치 두 방.
“그래도 제 전공은 살려보려고요.”
“전공. 암, 전공 좋지. 근데 저 족발은 뭐여?”
펀치 세 방.
곧 곰 한 마리가 굴에서 나오듯 김 부장의 두툼한 몸집이 텐트에서 빠져나온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저는 이 친구 선배 김창경이라고 합니다.”
슈퍼할아버지 표적이 금세 김 부장으로 바뀌는 게 느껴진다. 나로선 다행. 김 부장은 덩치가 커서 표적도 넓다. 슈퍼할아버지는 자기 앞에 와 선, 자기보다 20센티미터는 더 큰 김 부장 안면을 꼼꼼히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본다. 안 돼! 표적을 바꾸지 마세요.
“선배라고 하기엔 너무 늙은 거 아녀?”
펀치 네 방.
“하하, 제가 좀 들어 보이긴 해도…….”
“됐고, 내가 며칠 여길 눈여겨봤어. 보아하니 길 잃은 곰 한 마리가 미루나무 위 참새 둥지에 누운 꼴이더만. 어이 자네, 저 친구도 불편해하는 거 같던데 그만 떠나시지.”
펀치 다섯 방.
“어르신, 말씀 참 명쾌하십니다.”
“이보게. 난 정확한 사람일세. 나는 세입자 한 명만 받는 걸로 이 친구 들였으니까, 더 있을 거면 자네 분 월세를 더 내든가 아님 빨리 이거 철거혀!”
펀치 여섯 방.
“그게, 제가 지금 갈 데가 없어서…… 당분간은…….”
그러자 슈퍼할아버지가 번개같이 몸을 숙여 텐트 폴대를 움켜쥐었다.
김 부장과 나는 다급히 텐트를 붙잡았다.
“텐트 확 뒤집어버릴까? 월세 낼겨, 안 낼겨?”
펀치 일곱 방.
“할아버지, 그럼 제 월세에서 10만 원만 더 내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5백에 40으로…….”
_36~37쪽
“많이 맵냐?”
“캡사이신 범벅이에요. 오뎅 국물은 뜨거운 건 둘째 치고 간장국이고요.”
“망하려고 작정했구먼. 행사 재밌게 한다고 일부러 맛없게 만들면 쓰나?”
“괜찮아요, 형님. 어차피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돌아보자 김 부장이 순간 손에서 무언가 꺼내 입 안에 뿌려넣는다. 레모나? 가그린? 순간 싸부가 큭큭 웃음을 참고, 김 부장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곤 전장에 나가듯 행사대로 향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김 부장은 엄청난 속도로 떡볶이부터 끝장을 낸다. 사회자는 LTE급 속도라며 ‘빠름, 빠름’ 추임새와 함께 김 부장을 칭찬한다. 싸부는 경마장에서 배팅한 말을 응원하듯 주먹을 쥐고 광분한다. 내가 아까 그거 뭐냐고 묻자 싸부는 히죽이고는 칙칙이란다. 칙칙이, 그게 뭐지? 갸우뚱하는 나를 보고 싸부가 피식 웃고는 감각 둔해지라고 거기에 뿌리는 거란다. 윽, 듣고 보니 알겠다. 지금 김 부장이 맵고 뜨거운 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쑤셔넣는 건 감각을 둔화시키는 칙칙이를 입안에 뿌렸기 때문이다. 우워어, 저 몹쓸 승부욕.
_146~147쪽
누군가의 집을 구경한다는 건 그 사람의 내장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내시경으로도 볼 수 없는 몸속 어떤 상태 말이다. ‘방학 옥탑남’에게선 소화불량이 엿보였고, 그에 비해 ‘수유 반지하녀’는 리드미컬한 연동운동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 옥탑방은 어떤가? 아마도 만성변비일 것이다. 빠져야 할 똥차가 너무 많은.
_273~274쪽
밖으로 나오자 동해 바다에서 나고 자란 듯한 탐스러운 불덩이가 어두침침한 새벽하늘로 떠오른다. 세상이 밝아오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 명의 남자는 나란히 해변에 서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연고도 나이도 다른 네 명의 남자가 서울 한구석 옥탑방에서 만나 여기까지 동행해와 해를 바라본다. 옥탑방에서 보던 그 해와 별다를 바도 없다. 근데 뭉클하다. 지난 몇 개월, 함께 먹고 자다시피 한 이 빈대 기생충 바퀴벌레들…… 같지만, 사실은 ‘입구멍’이라는 식구. 그동안 이들을 미워하고 꽁했던 내 소갈머리는 뜨거운 태양에 소독되고 시원한 파도에 세탁되고 있다.
_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