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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따뜻해지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내 안에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 양이 점점 많아지면서 몸에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갈 곳을 찾던 그것이 왼손을 통해 긴짱에게 흘러 들어간다. 그렇게 식사로 채워진 체중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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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신발이었다. 신발 밑창이 문을 향하고 있다. 그 신발은 누군가 신고 있었고 다리가 보였다.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눈에 들어왔고, 새빨갛게 물든 흰색 가운과 그 위로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연구실 안에 기츠타카 씨가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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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드러운 눈이 바로 앞에 있었다. 긴짱 눈을 본 순간 머릿속 회로가 연결되었다. 그리고 원래 받았어야 했던 충격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긴짱의 가슴에 파고들며 울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노이즈뿐이었다. 방송 시간이 끝난 TV 화면처럼 나의 뇌는 어떤 정보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긴짱이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긴짱의 오른손이 내 목덜미에 살며시 닿았다. 닿은 부분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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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캠핑장. 키 큰 참가시나무의 가지에 테츠로 씨가 목을 매고 있었다. 거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 하나에 씨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하나에 씨는 가슴에서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둘 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 처참한 광경을 전등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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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젊은 남자였다. 나 같은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약간 의외였다. 성추행범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인지, 중년 남자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을 다녀서 그런지, 마른 체형에 머리카락 숫도 약간 적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성추행 짓을 할 것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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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얼어붙어 버렸다. 쿠니모토가 죽다니. 그 사실을 뇌의 일부는 인식했지만 다른 부분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친구의 시체를 보게 되어 혼란에 빠진 것이다. 뇌 신경의 연락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