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서는 꿈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삶의 전형을 담은 스포츠 영화를 토대로 합니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독자에게 스포츠만의 감동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때로는 필자 본인의 경험을 녹여내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경기의 승리가 아닌 삶의 승리를, 강자의 승리가 아닌 모두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이 집필 작업의 주 원동력이었습니다.
-5쪽, 들어가며
과거 우리의 교육은 오랫동안 체벌과 어느 정도 가까운 관계를 맺어 왔다.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전장에 나가는 군인처럼 죽을 힘을 다해 뛰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시상식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3등, 4등 어떤 등수든 정신적 혹은 신체적 폭력의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제는 ‘인권’이 강조되면서 우리의 체육 현장에서도 체벌은 허용되지 않는다.
-13쪽, 〈4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목표가 생겼을 때, 이것을 곧바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목표로 삼은 것이 좋은 선택인지,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과 노력이 필요한지, 그 과정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감당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디는 주저 없이 곧장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18쪽, 〈독수리 에디〉
자세히 얘기해볼까? 일대일 대결 구도가 자연스러운 네트 경기의 대표 종목인 테니스 영화에서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네트 운동이라 할 수 있는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같은 경기들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찰나의 순간에 상당히 많은 수 싸움이 진행된다. 선수들 간의 실력 차이는 수 싸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중요하다. 서브를 넣는 것에서부터 엄청난 심리전이 시작되는데, 위에서 말했듯 이 영화의 초점은 그런 대결 구도에 있지 않다.
-47쪽, 〈보리 VS 매켄로〉
여성 스포츠(영화)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차별과 고정 관념을 뛰어넘으려는 꿈, 그것을 향한 용기와 결단, 그리고 절대 주저앉지 않는 부단한 노력이다. 그렇게 그녀들은 ‘최초’로 길을 열고,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65쪽, 〈라라걸〉
“누가 그의 아버지냐, 돈이 얼마나 있냐가 사람을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신사라고 자부하신다면 승자에 대한 존경을 보여주세요!” 또한 꼬마 캐디라는 이유로 놀림당하는 에디는 남들이 놀리거나 말거나 캐디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스포츠 경기에 있어서는 그 어떤 성장 배경도, 나이도, 경력도 결과를 흔들 수 없고, 오로지 노력만이 뒷받침된 ‘실력’으로 승부를 보게 된다. 스포츠만의 공정함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였다.
-71쪽, 〈내 생애 최고의 경기〉
지금은 농구에서 흑인 선수가 뛰는 일은 당연해졌지만, 보다시피 처음은 그렇지 않았다. 스포츠에조차 뻗어있는 부당한 대우와 망가진 스포츠맨십을 보면 경기장은 마치 우리네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한다. 해스킨스는 인종차별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오로지 경기력으로만 선수를 영입하고, 코칭하고, NCAA 역사상 최고의 경기를 이끌어 냈다.
-80쪽, 〈글로리 로드〉
격렬한 스포츠인 미식축구는 다양한 전략과 강인한 체력, 민첩성을 요구한다. 경기는 상대방 진영의 끝에 공을 놓거나 킥을 하여 성공시키면 득점을 한다. 공격과 수비가 따로 정해져 있고, 수비 시에는 상대편 선수들이 자기 진영에 침투하는 것을 막고, 공격 시에는 4번의 기회 동안 상대 영역의 10야드(9.144m) 이상을 전진해야만 다시 공격권을 갖게 된다. 신체 조건부터 가난한 배경 모두가 ‘공격’이 되는 그때, 루디가 제시한 ‘수비’는 무엇일까?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91쪽, 〈루디 이야기〉
다양한 선수들이 모일 때 민감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종교 문제이다. 클롭은 기독교인이다. 북유럽의 선수들은 개신교인이 많고, 남부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은 가톨릭 신자가 많다. 또한 북아프리카 선수의 경우, 교리를 철저히 지키는 이슬람교도가 많다.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와 비교해서 이슬람교도는 준수할 규칙이 많아 보인다. 예를 들어 몸을 자주 씻거나 특정 음식을 먹지 않고 특정 시간에 예배 의식을 하는 것들이 있다. 이슬람교도는 신앙 행위에 지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이런 것들이 팀의 공식 일정과 겹칠 때는 종종 난처한 상황이 생긴다.
-174쪽, 〈리버풀 FC: 엔드 오브 스톰〉
축구는 필자에게 단순히 발과 공을 다루는 게임이 아닌, 우리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 이러한 철학은 어린 시절 축구 선수로 활약한 알베르 카뮈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결핵으로 인해 선수 생활이 조기에 종료되었음에도,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축구장에서 진행할 정도로 축구를 사랑했다. 카뮈는 생전에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그 깊은 교훈은 축구로부터 배웠다.”라는 말을 남겼다.
-179쪽, 〈어쩌다 아스널〉
그러나 부딪히는 것을 겁내지 마세요. 좋은 패배자는 곧 좋은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얼른 다시 일어나 목표에 집중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멋진 결말, 새로운 역사가 찾아오리라 약속합니다. 물론 ‘다시 일어남’의 정의는 자기만이 내릴 수 있겠지요. 그럼, 건투를 빕니다.
-185쪽, 나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