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야스퍼스는 1969년 2월 26일에, 한나 아렌트는 1975년 12월 4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렌트는 서거하기 직전인 1975년 5월 독일 마르바흐문서관소를 방문하여 자신의 편지 꾸러미를 이곳에 보관하기로 약속하고, 이를 분류하고 정리하였다. 도서관 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아렌트-야스퍼스 왕래 서신은 아렌트의 오랜 친구인 로테 쾰러와 야스퍼스 만년의 제자인 한스 자너의 세심한 편집을 거쳐 1985년 피페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독일어 원본의 분량은 860쪽(본문 720쪽, 역주 110쪽)에 이른다. 영역본은 킴버 부부의 번역으로 미국 해코트출판사에서 1992년 출간됐다.
엮은이 서문에도 밝혔듯이, “이 서간집은 양성의 두 철학자가 광범위하게 주고받은 첫 번째 서간집이다.” 이후 아렌트와 야스퍼스의 다른 서간집이 각기 몇 편 출간되었다. 이 서간집은 아렌트와 야스퍼스가 생전에 출간한 저작 및 유고집을 포함하여 두 ‘거목’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초자료다. 우선 서간집에 드러난 몇 가지 외형적 특징을 살펴본다. ⑴ 1938〜1945년 아렌트의 이주와 야스퍼스의 ‘내적 망명’으로 8년이란 공백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왕래 서신은 43년 동안 이루어졌다. ⑵ 아렌트와 야스퍼스의 왕래 서신은 433통에 이른다. 방대한 분량이다. ⑶ 왕래 서신에는 두 거목의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 대한 학자다운 고뇌가 잘 드러난다. 그러니 오든 시구로 언급하자면, “공적인 장소에서 사적인 얼굴은 사적인 장소에서 공적인 얼굴보다 더 현명하고 훌륭하다.”
쾰러와 자너는 편지 433통을 아무런 구분 없이 시기별로 구성했다. 그래서 서간집 전체가 마치 하나의 틀 속에 있는 것 같다. 즉 중간에 삽입된 여러 장의 사진을 제외하면, 이 서간집 자체는 ‘통글’과 같이 보인다. 물론 대부분의 다른 서간집들도 일반적으로 시기별 또는 주제별 ‘구분’이나 ‘구획’ 없이 ‘연속성’이란 편집 원칙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이 원칙을 부분적으로 ‘어기고’ 43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몇 개의 부로 나누었다. 독자들이 각 부의 편지를 읽기에 앞서 전반적인 윤곽을 최소한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각 부에 관련 사항들을 제시하였다. 즉 각각의 편지에서 두 거목이 나눈 ‘대화 주제와 내용’을 개략적으로 드러내려고 했고, 이를 토대로 서간집을 5부로 구성하였다.
「제1부 편지 1-29: 1926〜1938년」은 ‘한나 아렌트의 하이델베르크 시절〜프랑스 망명 시절’의 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승과 제자의 운명적 만남과 박사학위 진행 상황뿐만 아니라 『현대의 정신적 상황』 및 『막스 베버』 출간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막스 베버에 관한 입장, 독일인성과 유대인성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가 초기 편지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2부 편지 30-139: 1945〜1952년」은 ‘종전 이후 서신 재개〜 아렌트의 시민권 획득 직후’의 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야스퍼스는 독일 패배 직후 점령군과 함께 독일을 방문한 라스키의 도움으로 아렌트와 서신 왕래를 재개했다. 이후 야스퍼스의 바젤 이주에 관한 사항, 그리고 아렌트의 유럽 방문과 스승과의 재회, 『전체주의의 기원』 집필과 미국 시민권 획득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책임 문제』 ‧ 『철학적 논리학』 ‧ 『철학적 신앙』 출간과 관련 의견뿐만 아니라 한국전쟁과 미래 전쟁에 대한 견해가 잘 드러나고 있다.
「제3부 편지 140-219: 1953〜1957년」은 ‘야스퍼스의 칠순 〜 인공위성 최초 발사 시기’의 서신으로 구성된다. 칠순을 맞이해 야스퍼스의 학문적 성과를 기리는 저작인 『야스퍼스의 철학』이 출간되었다. 여기에는 야스퍼스의 「자서전」이 수록되어 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에 관한 성찰은 이후 논문으로 출간되고 『혁명론』 연구로 이어진다. 이때 야스퍼스와 아렌트는 각기 『원자폭탄과 인류의 미래』와 『인간의 조건』을 집필하였다.
「제4부 편지 220-319: 1958〜1962년」은 ‘야스퍼스의 평화상 수상 〜 스승-제자의 참된 우정’을 드러내는 서신으로 구성된다. 『인간의 조건』 ‧ 『원자폭탄과 인류의 미래』 ‧ 『세계와 철학』 출간, 야스퍼스의 평화상 수상과 아렌트의 레싱상 수상 등에 관한 내용이 편지에 담겨 있다. 주목할 사건은 1961년 아렌트와 블뤼허 부부와 야스퍼스 부부의 첫 만남이다. 때늦게 이루어진 이 ‘방문’은 네 사람의 인간관계에서 전환점이었다. 즉 이들은 이후 편지에서 상대방을 ‘당신Sie’이 아닌 ‘자네Du’라는 호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5부 편지 320-433: 1963〜1969년」은 ‘아이히만 논쟁〜야스퍼스의 서거’ 직전까지 주고받은 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혁명론』 및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출간 및 논쟁, 『연방공화국은 어디로 나아가는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과 관련한 두 사람의 견해가 편지에 잘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 글을 아렌트의 추도사이다. 여기서 아렌트는 야스퍼스의 학문적 궤적을 “자유 ‧ 이성 ‧ 소통의 융합”으로 응축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 서간집은 두 ‘거목’의 삶 ‧ 사유 ‧ 연구 궤적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첫째, 사신에 드러난 삶의 단면, 즉 정신세계와 공적인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편 현실 세계에 맞서 그 난관을 극복하려는 정신적 ‧ 정치적 사유가 잘 드러난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두 거목이 공동으로 직면한 시대 상황에 맞서 무엇을 집필 과정에 반영하려고 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철학에 각기 다르게 접근하면서 비슷한 시각을 발전시켰다. …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서로에게 현대 철학이었다.”
둘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서 평생 쌓은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우정의 양상은 좀 달랐다. 야스퍼스는 좁은 의미의 소통에 역점을 두었지만, 아렌트는 스승과 달리 수많은 친구와 교제했다. 무엇보다도 야스퍼스와 아렌트의 인간관계가 모범적인 우정의 징표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두 사람은 서신을 통해 친근감 ‧ 부드러움 ‧ 온정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지만, 특정 문제에 대해 논쟁하면서도 “독립적인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야스퍼스는 편지에서 아렌트의 독립적인 사유와 삶을 조명하는 저작을 집필하려고 했지만, 실현하지 못한 아쉬움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넷째, 아렌트와 야스퍼스는 자신들의 저작에서 한국에 관해 언급한 적이 거의 없지만, 서신에서 한국전쟁과 핵 문제 등 냉전 시대를 반영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왕래 서신을 통해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유럽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섯째, 책임 문제 및 악의 평범성과 관련하여 주고받은 내용은 관련 저작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자료이다.
편지에도 드러나듯이, 아렌트와 야스퍼스는 서로 상대의 저작을 충실히 읽은 첫 번째 독자였다. 따라서 서간집은 야스퍼스와 아렌트의 철학과 정치이론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렌트의 ‘세계사랑’과 야스퍼스의 ‘세계시민’ 정신이 편지에 잘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