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직선에서 동그라미로에는 시인인 꽃과 같은 식물을 소재로 한 시편들이 많이 들어 있다. 꽃을 노래하지 않는 시인은 별로 없다. 많은 시인들이 꽃을 노래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영임은 목련꽃을 보면서 세월의 허무함과 함께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꿈과, 또한 지나가서 기억에 파묻히게 될 삶의 회한을 떠올린다. “꽃은 잊힐 것을 알아서/ 오늘 뜨겁게 피지만/ 나는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피지도 못하고 잊힐까 몰라/ 그래도 안녕이란 말 않으려네”라 읊조리는 화자의 심사(心思)에는 한철 아름답게 피워올리다 어느새 시들고야 마는 생명의 허무가 가득하다. 아름다울 때 절정의 모습을 보이는 꽃을 보면서, 그러한 꽃과 비교하여 초라한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작품으로 읽어도 좋다. 시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신의 물질적·정신적 풍요로움과 관계없이 생명이 가져다주는 허무를 생각한다. ‘한철’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생명의 진행 과정에서 싹트고, 자라고, 시들고, 마침내 쇠락해지곤 하는 여정을 들여다보면 지금 이곳의 삶이 가장 의미가 있고 가장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생각만 일고 현실은 누추하고, 초라하고, 빈한할 따름이다.
구멍이 난 듯 허허로운 일상에서 시인은 무엇을 꿈꾸는지 시편 군데군데 그 마음을 흩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절로 일어나는 욕심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되, 그 욕심이나 욕망이 질박하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시인은 누추한 현실을 겪으며 자신의 뜻을 조금씩 꺾으며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이는 요즘 세태에 비춰보면 미덕이다. 시 쓰기는 그러한 시인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훌륭한 수단이다. 시인은 시를 씀으로써 세계를 향한 목소리를 낸다. 그 어조에는 원망과 불안이 없지 않다. 그런데 시인의 개성적인 목소리는 보편적인 우리 시대의 외침이기도 하다. 개별자는 보편적인 존재의 특징을 바탕으로 해서 존재한다. 시인이 처한 현실의 궁핍은 곧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궁핍과 이어져 있는 것이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이나 원망은 시적인 형상화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에서 공감의 연대가 만들어진다. 외롭고 고독한, 한 내면의 풍경을 정영임의 시를 읽으며 되짚게 된다. 스산한 가을바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그늘진 곳에 잠시 머물면 녹슨 기억이 한꺼번에 소환되는 듯 그의 시편은 을씨년스러운 기분을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이 남기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정훈(시인, 문학평론가) 작품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