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근본 종교, 무교: 미신이 아닌 문화적 근원으로서의 재해석
한국인의 무교에 대한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한편으로는 미신으로 취급하며 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수시로 무교(무속, 점)에 의존한다. 때로는 ‘재미 삼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그런 경우에도 요행을 바라는 마음만은 거짓이 없다. 일반인의 이러한 태도는 특히 학계에서 더욱 두드러져서, 무교는 종교적 현상의 일부로 다뤄지거나 대체로는 민속학의 대상으로서만 진지하게 취급될 뿐, 그것의 종교적 맥락과 구조를 천착하면서 일상 속에서 시민들의 삶과 더불어 논의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무교에 대한 인식과 실제 생활의 괴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이른바 고등종교(高等宗敎)로서 불교와 유교가 도입된 고대(삼국시대)로부터 누천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랜 탄압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무교가 사라지기는커녕 이른바 고등하다는 종교에 비하여 훨씬 더 다양하게 변주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은 무교를 둘러싼 이러한 이율배반, 그리고 불가사의함의 연원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근본신앙을 홀대하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무교가 한국 문화와 사회에 미치는 깊이 있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우선 ‘무교’라는 명칭부터가 논쟁적이다. 대체로 ‘무속’으로 호명되는 이 종교 현상을 정식 종교로 인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무교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이를 통해 무교가 한국의 사회문화나 예술 등이 형성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천자(天子)만이 천제(天祭)를 주관할 수 있었던 반면 고대 한국 사회의 제천(祭天)의례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였고, 특히 며칠 낮밤 동안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는 스토리와 함께 전해 온다. 이것은 오늘날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예컨대 노래방 문화와 현대 한국인의 세계적인 음주 문화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에게 무교적 속성을 제거하면 곧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무교는 한국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무교를 일상적인 생활 세계 수준에서 긍정적으로 다룬 최초의 단행본으로서, 한국 무교의 숨은 가치와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강한 내적 동기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무교가 단순히 무교인(巫敎人)의 샤머니즘적 실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근원 신앙으로서 깊은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무교를 한국 문화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로 제시한다. 또 이런 식의 접근을 통해 우리는 무교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새삼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무교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무교가 한국 문화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한국의 무교를 통해 본다면, 우리는 종교가 단지 신앙의 차원을 넘어 문화와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무교적 인간’으로서의 한국인인 나의 이해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점’이나 ‘굿’ 등 피상적이고 무교의 일각에 불과한 내용을 소거하고 보면, 한국인은 누구나 무교(巫敎)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초판이 발행된 이후로부터 15년 만에 새롭게 펴낸 개정판이다. 그사이 쇄를 거듭하며 이 책은 지속적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지난 15년 동안의 한국 사회의 변화는 상전벽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천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돌아가지 못할 문명적 심연을 건넜다고 평가되고, 더욱이 생성형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출하며 그 생명력을 이어오던 무교(무속)의 일부 흐름도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책(개정판)이 이러한 최근의 인류 사회 동향까지를 모두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무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한국 사회에서 무교가 여전히 근본 신앙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 무교에 대한 연구와 일반적인 접근 방식을 넘어서, 무교의 본질을 좀더 폭넓게 해석하려는 시도를 강조하며, 무교가 한국인의 심성과 일상생활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무교의 기본 구조와 실천(굿), 무당의 역할과 굿의 의미, 무교와 한국인의 종교적 내면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 등을 다룬다. 특히, ‘한국인의 근본 신앙인 무교’와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가’ 같은 장에서는 무교가 어떻게 한국의 고유 종교로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 한국인의 종교적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색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급속한 ‘탈(脫)종교화’ 현상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탈종교화는 무교(巫敎)적 시각에서 볼 때, 종교 자체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물들어 있던 외래 종교 혹은 교단(제도) 종교로부터 이탈하여, 좀더 근원적인 종교로 회귀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종점에 무교 혹은 ‘무교적인 원형 종교’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