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달리기 좀 했다고 인생이 바뀔 순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응급실을 나와 터벅터벅 걷는 동안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겼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을 것이다. 내년 연말에도, 5년 후 연말에도 똑같은 걱정만 안고 살아가겠지. 이대로는 안 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달리기? 그건 얼마든지 내 힘으로 해볼 수 있는 거잖아? 매일 직장에서 침대에서 쿵쾅대는 심장 소리에 가슴 조이며 살아갈 바에는 내가 스스로 심장을 뛰어보게 해보자.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_19쪽 〈프롤로그: 나를 움직인 경이로운 힘, 마라닉 페이스〉 중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끌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몸에 병이 오면 마음을 움직이기 쉽지 않다. 몸과 함께 마음도 굳어가기 마련이다.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땐 체력이라도 길러두자. 몸에 근력이 붙으면 마음 근력도 붙는다. 나도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커진다. 아주 작은 기회라도 찾아왔을 때 거침없이 부딪쳐보는 용기가 생긴다. 까짓것 잘 안돼도 다시 하면 된다는 여유도 생겨난다. 결정적으로 남들은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일을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 모든 게 그동안 쌓아온 체력 덕분이다.
_47쪽 〈Chapter 1. 변화가 필요한 당신에게〉 중
당장에 담뱃갑을 구겨 휴지통에 집어 던졌고, 달리기로 마음먹곤 ‘식스 팩’까지는 아니어도 출렁이는 뱃살은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 거울 속 생기 잃은 내 얼굴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다니다 불식간 생을 마감할지 모를 끔찍한 상황은 만들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야근을 밥 먹듯 한 그 거대한 닭장 같던 건물에서 빠져나오겠다는 결심도 그 무렵에 했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된 지금, 그 모든 결심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는 결심들이 10년 후의 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_58쪽 〈Chapter 1. 변화가 필요한 당신에게〉 중
근골격계 강화, 면역력 강화, 수면의 질 개선, 지구력 향상, 사회적 연결감 증대까지 이 모든 효능이 30분 이상의 달리기면 충분하다고 하니, 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30분은 누구나 부담 없이 도전 가능한 시간이다. 처음부터 달리기가 힘들다면 빨리 걷기로 시작해도 좋다. 이제 나는 10km 달리기를 즐기는 러너가 되었다. 그렇지만 5km 달리기만으로도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음을 알기에, 가끔 정말 달리고 싶지 않은 날엔 ‘그래도 30분만 가볍게 뛰자’며 운동화 끈을 조인다. 다 뛰고 나면 ‘역시 하길 잘했구나!’ 소중한 선물을 안고 돌아오는 기분이다.
_78쪽 〈Chapter 2. 당신은 시작하게 됩니다〉 중
지금은 안다. 아주 천천히 원하는 것을 이루는 법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원하는 걸 빠르게 이룰 수 있는 왕도는 없다. 모든 일엔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작게, 자주 반복하면 이룰 수 있다. 최초의 시도를 앞두고 벽이 거대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빠르게, 단번에 목표를 이루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100바퀴쯤 달려야 살이 빨리 빠지지’, ‘영어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워야 실력이 빨리 늘지’. 그러나 이렇게 거창한 목표를 무리해서 잡으면 벽을 넘어서려다 반드시 떨어지고 만다. 또한 떨어졌을 때 다시 정복할 생각을 하면 막막함부터 들기 때문에 다시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_89쪽 〈Chapter 2. 당신은 시작하게 됩니다〉 중
내게 마라닉 페이스란, 몸이 나아가는 속도에 맞춰 달리는 것이다. 초반엔 거의 걷는 듯한 속도로 시작하기도 하고, 몸이 서서히 풀리면 풀리는 만큼 속도를 내보기도 한다. 달리는 도중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 속도를 낮추고 다시 느림보 달리기로 전환한다. 언제든 그만하고 싶어지면 멈추고 돌아온다. 달리는 속도를 늦추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 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리의 감각에만 의지하지 않고 오감이 모두 작동하는 것을 느끼며 달릴 수 있었다. 시냇물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고개를 들어 날아가는 철새 떼를 감상했다. 손을 뻗어 아카시아 꽃잎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 꽃나무들은 그런 나를 응원하듯 향기를 뿜어댔다. 갈증을 느끼면 잠시 멈춰 서서 물 한 모금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동안 이런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모른 채 앞만 보며 헉헉대고 달렸다는 사실에 민망해졌다. 힘들었던 달리기가 할 만해지다니. 인생도 이런 마음이면 좀 더 살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_138쪽 〈Chapter 3. 즐기는 사람의 페이스〉 중
천천히 달리기는 우리가 달리기를 시작한 ‘진짜 이유’를 잊지 않게 해준다. 우리는 날씬한 몸매로 돌아가고 싶어서 혹은 건강을 되찾고 싶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로 돌아가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시작했을 것이다. 살이 쪄서 불행하다는 생각, 건강하지 않으니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한 것 아닌가. 그런데 행복은 단순히 살이 빠진다고 찾아오는 건 아니다. 건강만 되찾는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종합 예술과도 같다. 여러 가지 삶의 요소들이 균형 있게 맞춰질 때라야 행복이라는 감정이 우리에게 깃든다. 그러므로 달리는 동안 늘 새겨둬야 한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달리는 것’임을.
_161쪽 〈Chapter 3. 즐기는 사람의 페이스〉 중
결국 자신감이란 단순히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넘어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법과 지식을 내재화하는 과정이다. 처음 마라톤 출발선 앞에 섰을 때의 두려움은 그와 같은 상황과 관련한 정보와 지식이 내게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달리기 대회에 출전하는 상황이든, 여러 사람 앞에서 내 의사를 밝혀야 하는 상황이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지금은 대부분의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다. 직접 부딪쳐 얻은 경험. 바로 이것이 진정한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본다.
_223쪽 〈Chapter 4. 달리면 비로소 이루는 것들〉 중
그즈음부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Finisher’라는 글자가 박힌 완주 기념 티셔츠를 입은 러너를 보면 티셔츠를 강제로 벗겨 들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탐이 났고,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찍은 누군가의 사진을 보면 내 얼굴로 바꿔치기하고 싶은 욕심이 들끓었다. 그때 깨달았던 건, 그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사람이라면 타고난 강철 체력의 소유자들이거나 슈퍼 멘탈을 지닌,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완주한 사람들 중 자신이 러너로서의 재능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각자의 사연을 자세히 들어보면 육체적으로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정신적으로는 나만큼이나 위태롭던 시기를 지나온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_248쪽 〈Chapter 4. 달리면 비로소 이루는 것들〉 중
명확한 가치관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할 때 ‘내가 바라는 일을 해나가고 있구나’ 하는 진짜 성공의 감각을 맛볼 수 있다. 물론 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야 할 지점을 잘 알고 있기에 손목의 알람이 울리면 그저 원래 가기로 했던 길로 되돌아오면 그만이다. 또 잠깐 헤매다가 뜻밖 의 멋진 경험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게 1km, 5km를 통과할 때마다 그 작은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더 큰 성공의 확신을 쌓아가면 된다.
_273쪽 〈에필로그: ‘진짜 성공’을 위한 단 한 가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