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도 하며,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헤스터가 평생 가슴에 새겨야 하는 ‘A’라는 글씨는 다름 아닌 인간 존재로서의 나약함과 불완전성의 증거다. -p37
이처럼 상상을 통해 만들어 낸 가상의 이미지에 스스로를 투영하여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ENFP의 주기능 외향직관(Ne)의 왜곡된 작용에 기인한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창의성의 발현이 도를 지나친 나머지 상상과 현실을 혼돈하는 이상증세로 나타난 것이다. 주변인들에게 각각의 내러티브를 부여하여 이름을 붙이고 스스로를 영웅으로 떠받들어 주인공 서사를 써나가려는 움직임은 주기능 외향직관과 3차 기능인 외향사고(Te)의 합작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외향사고가 미숙한 관계로, 목적 지향적 사고와 행위는 타인의 처지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이며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 p48
그는 체제를 정당화하고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탄탄한 논리 체계를 내부에 구축하고 있다. 부기능인 내향직관(Ni)에서 비롯된 깊은 통찰력으로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고 자신만의 대응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바로 ENTJ의 특징이다. 무스타파 몬드는 체제의 흠결을 가리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와 설득 수단을 언제나 준비해 두고 있기에 그 어떤 누구와 논쟁이 붙더라도 조근조근 논박하여 상대를 꺾어 버린다. - p82
물질적이고 유한한 목표에는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 많은 양을 원하며 갈증을 느끼게 하지만, 이를 끝없이 충족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내적인 좌절감을 증폭시킨다. 허영과 허세의 끝은 허무일 뿐이다. 그보다는 내면적 성장과 자기 발전, 그리고 진정한 사랑과 같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고귀하며 영속적인 가치를 성취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는 것을 『위대한 유산』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 p125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책임과 의무에 사로잡혀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아간다.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조르바의 모습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저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우려와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이곳저곳을 부유하며 살다 간 조르바의 생애는 성과와 효율에 집착하는 산업사회의 관점에서는 분명 실패한 삶이 맞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주체적으로 완성한 삶이라는 측면에서는 나름 의미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p153
이반 일리치는 자신을 냉랭하게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또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확인한다. 경험과 성찰을 통해 자아를 찾은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차디찬 시선 속에서 비로소 자기 모습을 본 것이다. 그는 열등기능인 내향감정(Fe)의 결여로 인해 스스로의 감정과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러한 빈자리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외향사고 작용이 거의 전적으로 지배해 왔다. 그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그의 정체성은 철저히 타인의 시선에 갇힌 채 주조된 것이었다. - p186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리타』가 ‘노벨 연구소 선정 최고의 책’을 비롯해 세계 유수 언론과 대학의 추천도서로 꼽히고 있는 건 작품의 뛰어난 문학적 가치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윤리적인 주제를 다루어도 상관없는가? 정치적, 사회적, 인륜적인 고민 없이 단지 예술을 위해서라면 비도덕적인 주제가 용인되는가? 금기를 다루는 예술의 딜레마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 p201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죄를 짓고, 죄의식을 느끼고, 벌을 받으며 살아간다. 라스콜니코프의 허황된 상념과 충동성은 사실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인간 존재로서의 보편적인 치부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인생 전체가 타는 듯한 상처처럼 느껴질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라고 이야기한 건 바로 이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 p223
결국 이렇게 키팅은 떠났지만, ‘카르페 디엠’, 즉 ‘오늘을 즐겨라’라는 가르침은 학생들뿐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에 강한 울림과 함께 남아 있다. 내 삶의 주인은 오로지 나이며, 내 삶의 무대는 지금 현재라는 사실은 그가 떠나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주체 또한 나뿐이며,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또한 나임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좀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궁극적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키팅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 p260
개츠비는 변질된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뉴잉글랜드에 도착하여 위대한 국가 건설을 꿈꾸었던 청교도들의 정신은 본디 근면과 성실로 무장한 건전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눈부신 발전과 지속적인 성공 신화 이면에 ‘아메리칸 드림’은 세속적, 물질적인 방향으로 치달아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사회상을 낳으며 타락하는 어두운 결과를 야기하기도 했다. 개츠비를 형용하는 ‘위대한’이라는 단어에는 얼마간의 반어법과 비판의식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p283
이처럼 분노에 찬 격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며 폭주하는 햄릿의 모습은 열등기능인 외향감정(Fe)의 결여에 기인한다. INTP는 보통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것이 바깥으로 나올 때에는 미성숙한 어린아이처럼 분출하듯 폭발하는 경향이 있다. 즉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감정의 선을 넘게 되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 논리에 사로 잡혀 이성을 잃고 감정에 온전히 지배당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 p293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아무리 파수꾼이 호밀밭에서 열일 해도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나이 먹으며 어른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린 아이들이 순수성을 잃고 어른으로 타락하는 걸 막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라는 홀든의 독백이 쓸쓸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p305
전반적인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은 주인공 마르셀의 기억력이다. 과거의 경험과 상황의 디테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곱씹는 경향은 ISFJ의 주기능인 내향감각(Si)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가 언급했듯 강한 내향감각은 ‘고도로 예민한 사진건판(寫眞乾板)’과 같아서 사람이나 풍경의 세밀한 빛깔과 형태의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히 지각하고 기억하게 한다. -p325
싱클레어는 전쟁터에서 데미안의 가르침을 곱씹게 된다. 이 세계라는 거대한 알이 깨어진 뒤 새로운 탄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비정한 전쟁터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상황들을 통해 싱클레어는 자신의 통찰을 완성해 나간다. 내적인 판단과 성찰을 외부 발산적으로 확립해 나가는 ISFP의 부기능 외향감각(Se)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p344
한때 수레바퀴 아래에 짓눌려 힘겨워했던 헤세의 실제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일까. 한스의 이야기는 가슴 저밀 정도로 생생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억압적인 체제와 규제를 의미하는 ‘수레바퀴’,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중력을 견뎌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숙명이라면, 우리는 좀 더 강하고 단단해져야 한다. 실패를 딛고 위대한 작가로 거듭난 헤세처럼 말이다. -p357
오늘은 반드시 커다란 고기를 낚을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그는 고기의 입질을 기다린다. ISTP의 경우 내향직관(Ni)이 3차 기능으로 약한 편이기에 미래 지향적인 사유보다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유형이다. 쓸 데 없는 상념이 적다. 바로 이것이 산티아고가 좌절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p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