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뜨거운 지구’를 마주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시대가 끝났다고 한다. 이제 지구열탕화의 시대라고 한다. 지구가, 아주 많이 뜨겁다. 여기저기에서 경고 시그널이 울리고 있다. 정말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이런 식으로 계속 탄소를 배출하면서 산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한다. 자연재해가 아닌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인 폭염, 동물의 멸종, 아마존 산림의 파괴, 먹거리 비상, 미세 플라스틱의 습격···. 2019년, 호주에서는 6개월 동안 숲이 불탔다. 약 5억 마리의 동물이 불에 타 죽었다. 숲 자체가 메말랐고, 비는 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 산불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거라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산불, 한쪽에서는 폭설, 우리나라에서는 재활용 쓰레기 대란 때문에 곳곳이 몸살을 앓고, 남극에서는 빙하가 녹아 북극곰은 수영을 해서 먹이를 구한다. 심지어 굶어 죽는 일까지 벌어진다. ‘인류세’라는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시간은 많은 동물들을 멸종으로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류 또한 생존을 위협받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구는 뜨겁고, 어떤 나라는 물에 잠겨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우리는 마치 내 일은 아니라는 식으로 이 문제를 대한다. 심지어 별 관심도 없다. 정말로··· 이렇게 무관심해도 되는 걸까. 나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후 위기라면, 이대로 모른 척 살아도 괜찮은 걸까.
기후 위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지구와 환경 관련 다큐를 찍었던 피디들은 말한다. 그들 역시 처음부터 기후 위기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라고 말이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우연히 접하게 된 하나의 사진, 어떤 소문, 그저 궁금해서 만나게 된 한 사람으로 인해서 그들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연출한 김가람 피디는 수많은 옷들이 쌓여 있는 옷의 산에서, 섬유를 뜯어 먹는 염소 사진을 보고 다큐멘터리 기획을 시작했다. 제로웨이스트 숍을 만들고,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환경 운동을 고민하던 조민조 피디는 〈착해家지구〉 숍을 울산에 열고 촬영과 가게 운영을 겸하게 되었다. 예능을 찍으러 간 정글에서 멸종되어 가는 동물들을 보면서 김진호 피디는 카메라로 지구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피디가 할 수 있는 일은 카메라를 들고 지구 곳곳을 촬영하는 것이니, 그렇게 마주한 기후 위기의 모습을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명료하게 독자들에게 전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동료 피디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메라를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한 기후 위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할 방법을 같이 고민해보자고 말이다.
인간의 벌목으로 인해서 서식지를 잃은 코끼리. 인간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와 비닐을 먹고 장폐색으로 죽어가는 미얀마의 코끼리들, 선진국들이 그들 나라의 깨끗한 강을 위해, 수출해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그 플라스틱을 수입해 연료로 대신 사용하는 인도네시아, 살해 위협을 받는 환경운동가들, 북극을 탐험하러 갔지만 얼음이 없어 수영을 해야만 했던 탐험가들의 모습, 2050년의 ‘사계’를 연주하러 모인 연주자들이 우리에게 들려줄 음악은 ‘침묵’이었다는 슬프고도 절망스러운 음악회, 매일 기후 위기에 관한 아이템을 라디오에서 들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스태프들···. ‘기후 위기’가 아이템이 될까 고민했던 피디들이 마주한 현실은 비참하고 끔찍한 것들이었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파괴된 지구 곳곳의 모습, 기후 난민이 되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해야 잘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피디들은 자신이 격은 일들을 하나씩 모았다. 부디 이 이야기가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이 이야기가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기후 위기는 과학자들이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또한 나와 상관없는 북극곰의 일도 아니다. 바로 내일, 그리고 다음 달, 내 앞에서 벌어질 문제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기를 바라며 책을 만들었다. 사과 생산지가 대구에서 강원도까지 올라간 것도, 벌들이 실종되어 과일 농사를 망치는 것도, 여름날이 점점 길어지며, 매해 감당할 수 없는 폭우가 내리는 것도 모두 기후 위기와 관련된 일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지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 작은 일은 이 책을 쓴 피디들이 만든 다큐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대신 개인 물통을 들고 다니고, 대나무 칫솔을 쓰는 건 어떨지···. 이 책 역시 - 콩기름 인쇄, 무염소 재생펄프를 사용해 환경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한 노력을 시도했다. 그렇게 작은 것 하나하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거라 생각하며 말이다. 부디 여기에 담긴 이야기가 당신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