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 강의를 위한 준비운동
내 강의의 첫 화면은 공산성으로 시작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 난공불락의 성이라도 성문을 제대로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쉬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착한 조례 만들기’라는 어려운 과제도 제대로 된 열쇠만 있다면 충분히 해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 공산성에는 몇 가지 역사적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부여에서 공산성으로 몸을 피했지만 성주 예식진의 배신으로 당나라로 끌려가고 만다. 그리고 인조는 이괄의 난으로 인해 공산성까지 피난을 오게 되고 임씨 집안이 대대로 먹던 떡을 먹고선 “그것 참 절미로구나”라고 하여 인절미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공산성을 그냥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공간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지방분권의 가치 중 하나는 바로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지역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조례는 그런 이야기를 담아 지역의 존재감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착한 조례로 가는 길이다.
※ 참고 - 공산성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문주왕 1) 한산성(漢山城)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였다가, 538년(성왕 16)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중심 산성이었다. 해발 110m인 공산(公山)의 정상에서 서쪽의 봉우리까지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며 성의 둘레는 2450m이다. 평면으로는 동서 약 800m, 남북이 약 400m이며 사방에 석벽이 남아 있다. 원래 토성이었는데 조선 중기에 석성으로 개축된 것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공주 공산성(두산백과)
공산성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분들이여!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공산성에 직접 가보라! 그곳에서 인절미를 입 안에 넣고 금강을 내려다보며 의자왕을 생각해 보라! 시대를 초월하여 공산성을 느껴보라! 착한 조례가 성큼 다가올지니!
여기서 한 가지 개인적 견해를 추가로 언급하고자 한다. 백제의 성(예;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은 대체로 토성이지 석성이 아니다. 백제인들은 돌보다 흙의 견고함을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들이 다 하는 방식을 벗어난 백제만의 고유성 그리고 백제만의 차별성이 백제 문화의 존재감이 아닐까. 착한 조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공산성을 통해 알 수 있다.
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내가 쓴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 책을 홍보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여러분들이 글을 쓰는 의원이나 관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찾아온 사람, 찾아간 사람 등), 들었던 이야기(웃었던 이야기, 울었던 이야기 등), 시행착오(아차 싶었던 이야기 등) 등등 수많은 일들을 기록한 책을 남긴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업적이 될 것이다.
글을 쓰면 반성하게 되고, 계획하게 된다. 스트레스도 풀린다. 나는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쓰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는 일본말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은 일기를 통해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셨으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푸실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들이 글을 남기면 후배들은 그 글을 읽고 여러분들보다 더 나은 의원 또는 관료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글을 남기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최고의 특권이자, 최상의 책무다. 너무 나갔다. 조례 이야기로 돌아오자. 글을 쓰면 무엇보다 마음이 착해진다. 다들 동의하시겠지만 착한 조례는 착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착한 조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한다.
다 맞는 말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글재주가 없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글을 쓰라는 말인가? 나의 답은 그날그날의 일들을 일기로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하루하루 모이면 자연스레 책이 되는 것이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가장 여러분다운 책이 가장 세계적인 책이다. 가장 여러분다운 역사가 가장 세계적인 역사다. 이 문장의 올바름 여부는 지방분권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면서 곧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다.
■선보 생각 -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마침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나의 생각이 《늦은 불혹의 다릿돌》에 정리된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1.읽어라.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읽어야 한다. 글은 주로 책을 의미하지만 그 외에 신문, 잡지 등도 포함한다. 많이 그리고 깊게 읽도록 한다.
2.봐라. 많이 돌아 다녀야 한다. 밖의 세상과 부딪쳐야 글이 나온다. 낯설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3.사색해라.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라. 걸어 다니는 것은 사색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4.들어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라. 경험보다 좋은 글 소재는 없다.
5.써라. 일단 써라. 써야 쓸 수 있다. 부담 없이 일기를 써본다. 일기가 역사가 되는 순간. 그 자체로 누구도 쓸 수 없는 나를 넘은 우리의 책 한 권이 된다.
착한 조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글과 친해져야 한다. 어차피 착한 조례도 글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5가지 권유대로 해보라. 점점 조례가 착해지는 기적을 느끼게 될 것이다. 확신한다.
강의 목적은 ‘착한 조례로 착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과 그 길을 같이 궁리해보는 것’이다. 말과 글, 즉 강의와 책으로 착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내 꿈이다. 오늘이 그 꿈을 실현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사전의 힘을 빌려 보면 ‘착하다’의 의미는 ‘마음이나 행동이 바르고 어질다’, ‘善하다’, ‘마음씨가 몹시 곱다’의 뜻이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이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면 착하다의 의미가 머릿속에 뚜렷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분명 착했었는데, 지금은 글쎄다.
‘만들다(Make)’의 의미는 보다 나은 세상에 기여하다, 보다 바람직한 상태로 이끌다의 뜻이다. 이것은 사전의 힘을 빌리지 않은 나의 견해다. 영어로 보면 ‘하다(Do)’와는 다르다. Make에는 Do에는 없는 인간의 땀과 의지가 녹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Do에서 느낄 수 없는 전율을 Make에서 맛보곤 한다.
‘착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조례’가 바로 착한 조례다. 하지만 착한 조례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들이 같이 진지하게 궁리해야 그 길을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강의를 듣는 분들에게 주저 없이 질문해 주기를 부탁한다. 질문과 대답으로 간지럼을 피워야 견디다 못한 착한 조례가 그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