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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다이어리

세종 33년 간의 기록


  • ISBN-13
    979-11-7080-049-1 (0391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새움출판사 / (주)새움출판사
  • 정가
    23,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5-1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김경묵
  • 번역
    -
  • 메인주제어
    역사
  • 추가주제어
    역사: 특정사건 및 주제
  • 키워드
    #한국역사 #조선사 #세종실록 #세종이도 #성군세종대왕 #풀어쓴세종실록 #세종실록33년 #역사 #역사: 특정사건 및 주제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00 mm, 424 Page

책소개

“1418년 8월 11일, 아버지(태종)가 22살 아들에게 왕의 권력을 넘겼다. 
그 아들이 나다” 


시대의 멘토, 세종 이도의 내밀하고 진실한 33년 간의 기록



스물두 살 청년 이도가 아버지 태종으로부터 왕권을 물려받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더구나 큰형인 ‘양녕대군’을 제친 셋째 아들로서 말이다. 

뜻하지 않게 왕이 된 벅참과 부담감, 큰형에 대한 의리, 공부벌레 모범생으로서 나라를 잘 만들어가고 싶은 포부, 튼튼한 국방 등은 이도의 통치 33년 간을 꿰뚫는 큰 줄기이다.

"신하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서 큰형을 비방할 때 “너희들이 아무리 거부해도, 나는 형제 사이의 우 애를 지킬 것이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


세종실록 33년을 33편의 글로 재탄생시킨 이 책은 세종 이도의 마음과 눈을 따라 쓰여졌다. 

실록에 쓰여진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과 ‘사람의 감정’ 두 축을 균형있게 다뤘다. 

어떤 주제는 33년 전체를 관통해서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지방의 수령에게 ‘애민, 백성을 사랑할 것을 평생 당부하는 것’,

 ‘관직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가까이 불러서 대화하는 것’, 양녕을 벌주라는 신하들의 끈질긴 탄원에도 아버지 태종의 유지를 지키며

 ‘양녕대군’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 등이 그렇다. 그의 성품을, 인간인 이도를 온 마음으로 느끼게 해준다. 


‘숨쉬는 세종 이도’가 말하는 가족과 신하, 국가경영과 인간존중철학

또한 위대한 업적들이 어떤 배경을 갖고, 어떠한 노력으로 탄생했는지 이도의 말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그 가치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머니가 노비였던 장영실과 신하 정초, 변방의 김종서, 인간적인 허물도 또한 많았던 황희 등, 사람을 중용해서 만들고 다듬어낸 수많은 문물과 제도는 

그가 무엇보다도 ‘사람’을 중심에 둔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이도는 오늘날 ‘성군 세종 대왕’으로 우리에게 추앙받는다. 그렇게 누구도 따라할 수도, 넘을 수도 없는 한국사람이 되었고,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 만나는 위인으로 남겨졌다. 과연 이도가 원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이도가 왕으로 살았던 전체 삶을 바탕으로 이도와 당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도와 같은 DNA를 가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려고 했다. 

이도의 인간적인 면을 들춰내고 그의 온전한 삶을 담아, 이도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 이 책이 추구하는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IDO DIARY’는 ‘I DO DIARY’로, 지금의 나에게 접목할 수 있다. 나아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까지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현대적인 다이어리 형식과 문체, IDODIARY

세종실록은 사실에 기반한 기록이지만, 현장에 있어야만 알 수 있는 ‘대화’를 곳곳에 심어놓았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느낀 감정과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데, ‘다이어리’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을 만나며 그 역사들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나도 초보 왕이고 정인지도 신입일 때, 중요한 행사에서 정인지가 의장을 준비하지 못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집에 가라”고 
심한 말을 했었다. 당시 정인지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매년 중요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의 관직명은 현재의 적절한 명칭으로 바꾸고, 꼭 필요한 한자는 쉽게 풀어 썼으며, 현대식 용어와 문체, 도량형을 도입했다. 

22세 청년 이도의 떨리는 즉위식부터 ‘소민과 함께한 왕’으로 남기를 바란 54세 마지막에 여정에 이르기까지, 세종 이도의 내밀하고 진실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삼성전자에서 20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하며, 수석디자이너 시절에 ‘이건희 회장의 디자인경영철학’을 연구하고 확산하는 일을 전담했고 

지금은 ‘인문학공장 공장장’으로 할동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_ 이도의 대화법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내가 조선의 왕이 되었다(1418년, 22세, 즉위년) /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1419년, 23세, 재위 1년) /

 먼저 사람에게 묻고 제도를 갖추겠다 / 아버지의 가르침, 국방이 최우선 / 하늘 아래 고아, 이도 / 하늘이 나를 버린 것인가(1423년, 27세, 재위 5년) / 

건전한 조직문화는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 / 외교는 큰 것을 얻기 위해 쌓는 정성 / 
밥은 사람의 하늘이다 / 중국 새 황제의 무리한 요구 / 사람이 꼭 지키며 살아야 하는, 도리(1428년, 32살, 재위 10년)

경험이 쌓이면서 해결되는 문제들 / 조직을 공평하고 바르게 성장시키는 왕의 기술 / 태평한 날에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두 왕이다 
/ 금수저인 양반과 흙수저인 국민으로 나뉜 세상 / 비로소 왕의 생각을 읽어가는 신하들(1433년, 37살, 재위 15년)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 탄생한 위대한 발명품 / 혼란의 끝은 시스템이 작동하는 세상 
국가 비상사태에 이르게 한 최악의 가뭄 / 국경의 평화를 위한 강경한 정책 / 고맙고 또 고마운 신하들(1438, 42살, 재위 20년) 

절대적인 믿음이란 무엇인가? / 익숙하고 편한 것을 따라 사는 사람들 / 나라와 국민, 가족은 무엇인가? /

 새 시대로 들어서는 조선 / 왕이 나서서 해야 하는 일(1443년, 47살, 재위 25년) 


이제 한 걸음 남은 마지막 고비 / 왕으로서 마지막 할 일과 미안한 마음 / 한(恨)을 정(情)으로 살려내는 목소리들

 / 이제는 나날이 힘에 부친다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내 인생 (1448년, 52살, 재위 30년)

마지막까지 아름답고 싶은 왕의 이별 준비 / 소민(小)과 더불었던(與) 소여왕으로 남고 싶다(1450년, 54살, 재위 32년)

본문인용

8월 11일, 52살 아버지(태종)가 22살 아들(이도)에게 왕의 권력을 넘겼다. 그 아들이 나다.

 이날은 이 땅에서 웃으며 왕권을 넘겨주고 넘겨받은 첫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_13쪽

오늘 취임사에 “시인발정(施仁發政)” 네 글자를 도드라지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제도를 만들고 정치를 하겠다”라고, 내 의지를 세상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_14쪽

혼자서도 어디든 잘 다니던 아버지(태종)였는데, 최근에는 나 없이는 낙천정이든 어디든 가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볕이 좋은 날이면 아버지와 동대문 밖으로 나가서 매사냥도 한다. 

가끔은 한강에 배를 띄우고 술자리를 갖기도 하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낙천정에서 가까운 저자도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씨름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한다._23쪽

1419년 9월 26일, 큰아버지(정종)가 하늘로 돌아갔다. 지난 1월 초에 아버지와 내가 큰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술을 대접했었다. 

그날 밤 아버지와 내가 큰아버지를 양 옆에서 부축하고 궁궐을 걸었는데, 

큰아버지가 걷다가 멈춰서 “젊은 두 왕이 뒷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허울뿐인 늙은 왕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이런 일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라며 춤을 추기도 했었다._25쪽


중국 황제의 요구는 1만 마리나 되는 말을 중국 요동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10월 2일, 먼저 얼룩말 300마리를 중국에 보냈고, 말 값 지불을 보장받는 외교문서를 받아왔다. 

11월 28일까지 총 18번으로 나눠서 말을 보냈다. 부족한 말 241마리는 다음 해 1월 4일에 보충해서 1만 마리를 모두 채웠다. 이렇게 중국과의 첫 외교를 무사히 마무리했다._ 44쪽

경연을 재개한다고 하니  변계량이 신이 났다. 내가 중국의 역사책인 『자치통감강목』을 공부하자고 하는데도, 변계량은 유학 책인 사서를 소리내서 읽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_ 45쪽

재작년에는 홍수로 작년에는 가뭄으로 두 해 연속 농사를 망쳤다. 그 결과 국민의 살림살이가 엉망이 됐다. 배급으로 어른에게는 쌀 4홉, 콩 3홉, 장 1홉을 준다. 

11세부터 15세까지는 쌀 2홉, 콩 2홉, 장 반 홉을 준다. 그리고 10세부터 5세까지는 쌀 2홉, 장 반 홉을 준다. _56쪽

올해는 왕이 국가고시(과거시험) 시험을 직접 주관했다. 경복궁 근정전에 나가서 문과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경회루로 자리를 옮겨서 무과시험을 참관했다. 

문과시험은 거듭된 흉년으로 인한 굶주림과 버려진 시체, 그리고 국방과 같은 현안 이슈에 대한 수험생의 생각을 풀어내라는 문제를 출제했다._59쪽


하루는 인사행정부장관(이조판서) 허조가 노비신분을 결정하는 법을 ‘종부법’에서 ‘종모법’으로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허조를 비롯한 다수의 신하가 여종을 첩으로 들여서 아이를 낳고, 재산(노비)을 늘리려는 것이다. 종부법은 태종이 오랜 고민 끝에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만들고 유지해왔다. 

지금의 종부법이 유지돼야, 어머니가 노비인 장영실과 같은 사람이 재주를 펼치며 즐겁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_74쪽

작년에도 사고를 쳐서 청주의 비좁은 초가집에 가둬둔 큰형을 이천의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역시나 신하의 반대가 극심했다. 

신하들은 기회만 생기면 큰형의 잘못을 들춰내어 멀리 쫓아보내라고 성화다. 그래도 나는 몇 년째 꿋꿋하게 “나의 형일 뿐이다”라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_77쪽

중국의 사신 창성이 신하 앞에서 “조선의 왕은 어찌하여 내 말을 듣지 않는가”라고 지껄이며, 왕인 나조차도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신을 접대하는 부서(영접도감) 직원을 매질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한 창성은 선물을 담아가려고 나무로 만든 가방(궤)을 100여 개나 가지고 왔다.

황제가 조선에 보낸 선물을 담은 궤가 6개뿐이었으니, 100개가 넘는 가방은 실로 엄청난 양이다.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갈 때 보니 윤 가방을 옮기는 국민의 행렬이 남대문 부근의 태평관에서 서대문구 현저동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사신 세 명은 이렇게 많은 물건을 먼저 보내고 5일 더 머물다가 1429년 7월 21일 서울을 떠났다._129쪽


1436년 8월 25일, 함경도 회령에 여진족 홀라온과 우디캐 무리가 침입해서 농민을 납치해갔다. 

다행히 이징옥 장군과 회령에 살고 있는 여진족 오도리들이 함께 추격해서 모두 되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_224쪽

1438년 8월 26일, 경상도 경주를 다스릴 수령으로 우승범을 임명했다. 그랬더니 우승범이 궁궐로 찾아와서, 자신은 병이 있어서 큰 병원이 있는 도시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른 신하를 추천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내가 말없이 바라보니 한참 동안 울다가 돌아갔다. 

그날 나는 “고위급 관리가 따뜻한 아랫목만 찾고 있구나”라고 괘씸히 여겼다. 

런데 10월 9일 우승범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무실 밖으로 나와서 그냥 한참을 걸었다. 여러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_267쪽

“새 문자를 만들겠다”라는 결심은 오래전에 했다. 그리고 수년 동안 계속된 여진족과의 혼란에서 장교급 군인들이 글자를 읽지 못해서 드러난 어이없는 작전 실수들을 지켜보면서, 

어려운 한자를 대체할 쉬운 글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일반 국민만 글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군대 조직 안에는 한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장교가 부지기수였다.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군대를 직접 통솔하는 중대장급 장교 중에도 있었다. 

그 결과 장교 본인도 제대로 전술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작전 수행 능력이 형편없는 오합지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_336쪽

오늘 훈민정음 사용설명서를 펼쳐보다가, 정을 써놓은 대목에 이르러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아내가 평소에 아랫사람을 겸손하게 대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새 문자를 만든 것에 비견되는 행동이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아내는 아랫사람을 믿는 마음(信 신)에서 정을 시작했고, 

정인지는 학문을 존중하는 마음(業 업)에서 시작했고, 나는 지배당하는 소민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마음(恤 휼)에서 정을 시작했다._376쪽

지난겨울부터 신하의 집을 옮겨다니며 지내다가, 2월 2일, 경복궁으로 돌아왔다. 3년 만에 궁궐로 돌아오니 감회가 새롭고 낯설기까지 하다. 

바로 일하는 방(사정전)으로 갔다. 그리고 전라도지사(감사) 이사임에게 화포는 계속 만들되, 화약(염초)을 만드는 일은 당분간 중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_388쪽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모든 업무는 세자가 결재하니, 모든 신하는 세자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지침을 굽히지 않았다. 

이제는 왕권이양 문제를 매듭짓고 싶다. 신하들은 “왕권을 이양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떼로 몰려와서, 해가 질 때까지 시끄럽게 떠들다 돌아가기도 한다. _399쪽

서평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 만나는 위인 ‘세종’, 
과연 세종 이도가 원하는 것일까


태종의 뒤를 이은 조선의 왕 ‘이도’가 세상을 떠난 뒤에, 조선은 그를 세종이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성군 세종 대왕’이라고까지 더욱 높여졌다. 

그렇게 세종은 넘을 수 없는 한국사람이 됐고,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 만나는 위인으로 남겨졌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과연 세종 이도가 원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전 삼성전자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저자는 ‘공감한 것을 상품으로 바꾸는 일에 훈련된 사람’으로서, 세종 이도가 왕으로 살았던 삶 전체를 온전히 담아 

그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하고자 하는 바램을 갖는다. 나아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세종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성찰하게 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래서 저자가 선택한 것이 ‘다이어리’ 식으로 이도의 내면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을 위해 현대식 용어와 관직, 도량형, 풀어쓰는 한자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세종 33 간의 정치경제, 사회문화를 모두 담은 〈이도 다이어리〉 

세종실록은 총 163권이다. 이도가 조선의 왕으로 살았던 33년(1418년~1450년) 동안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기술, 기후 등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총망라되어 있다. 

어떤 주제는 33년 전체를 관통해서 이어지기도 하는데, 역사의 사실과 사람의 감정, 두 개를 연결하지 못하면 이해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기록들을 이도 한 사람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저자는 33편의 글로 엮어냈다.

저자가 만난 세종 이도는 ‘소민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는 휼恤의 정치’를 했다. 그렇지만 신하에게는 요구하는 것이 분명했고,

 대를 이을 자식에게는 냉정했던 두 얼굴의 왕이었다. 그는 들판에서 굶주린 채로 일하는 농부에게 따스운 밥을 지어 먹였고, 

처지가 불쌍한 사람이 저지른 사건을 판결할 때면 형벌을 깎아주려고 고민을 거듭했다. 

이도가 소민을 사랑하는 왕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아버지 태종이 일러준 것들이 큰 몫을 차지했다. 

세종실록에는 태종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의 과정과 그때의 감정이 쓰여 있다.하루는 왕에서 물러난 아버지와 왕이 된 아들이 한강 강변에서 씨름을 구경했다. 

그날 아버지는 해질녘의 붉게 물든 강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나는 왕으로 사는 동안 유련流連을 경계하며 살았다”라고 한 마디를 던진다. 

이 말은 아들 이도의 가슴에 유훈처럼 새겨졌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삶을 바꾸는, ‘숨쉬는 세종 이도의 말과 삶’ 

또한 이도는 마음이 바른 사람을 중용했다. 신하가 다른 의견을 말하면, 자신이 다르게 여기는 이유를 꼭 말해주고 대화를 이어갔다. 

반대 의견이 타당하면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사람 사이의 ‘다름’을 차별하지 않는 말이 통하는 왕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세종 이도의 ‘대화법’은 저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까지 말한다. 사람들은 세종의 리더십에 집중하지만, 저자가 만난 그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리더’였다. 

대화 상대의 신분과 격을 문제삼지 않고 늘 가까이 불러서 대화했다.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해서 큰 문제를 해결하고, 대화를 확장할 때는 선문답 같은 직관적인 대화를 했다. 

또한 대안을 수립할 때는 근거를 제시하는 분석적인 대화를 했다. 

이것은 디자이너의 창의적 사고법을 통칭해서 부르는 ‘디자인씽킹’의 원리와 다르지 않은데, 디자이너인 저자가 이도의 대화법에 착안하게 된 이유라고 저자는 밝힌다. 

그리하여 저자는 세종 이도의 대화법을 넘어, 이도의 온전한 삶이 담긴 이 책을 통하여 같은 한국인의 DNA를 가진 우리들이 그의 삶을 누구나 따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경묵
김경묵

“창의성은 서사를 기능으로 바꿔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따라 “디자이너가 가지 않은 길을 갈 것이다”라고 삶의 방향을 정했다.

삼성전자에서 20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하며, 수석디자이너 시절에 ‘이건희 회장의 디자인경영철학’을 연구하고 확산하는 일을 전담했다.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했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논문을 게재한, 유일한 한국 디자이너가 됐다.

사무실 창 너머, 햇살 가득한 한낮의 풍경을 바라보던 오랜 회사생활을 자발적으로 마감하고,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철학 자문위원’을 거쳐서
기업과 개인의 창의성을 성장시키는 디크리에이션 훈련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인문학공장 공장장’이 됐다.

공장장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신기해 한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인문학의 시작이고, 이름을 상품으로 바꿔내고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곳이 공장이다.
지금은 국민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서 ‘디자인씽킹’과 ‘창의적 사고법’을 강의하고 있다.
📍오늘도 읽고 싶은 책을 만듭니다.
📍책을 통해 만나는 ‘뜻밖’의 순간.
📕원전으로 읽는 Ü(움라우트) 세계문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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