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단절은 정당방위다”
여성학자 정희진, 영국 공인심리치료사 안젤라 센 추천!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에 맞서는 심리학
모든 이들이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가족과의 관계가 불편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2015년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응답자의 40퍼센트 이상이 일생 중 어느 시점에 가족과 관계가 소원해진 적이 있다고 답했다(35쪽). 또한 가정은 보이지 않는 학대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아동학대의 81.3%는 가정에서 발생하며(〈2022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9가지 항목의 부정적 가족생활 사건 중 적어도 한 번의 경험을 했던 아동이 전체의 8.8%, 청년이 14.2%였다(〈생애주기별 학대 및 폭력 연구〉, 2019.). 이처럼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신체적·정서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이들이 많지만, ‘화목한 가족’을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래도 가족인데 참고 넘어가라’, ‘네가 예민해서 그렇다’라고 하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원제: Adult Survivors of Toxic Family Members, 심심刊)》는 해로운 가족 때문에 관계 단절을 고민하는 사람부터 단절 후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알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까지, 가족의 학대로부터 살아남은 모든 생존자가 아픈 마음을 돌보고 자신의 삶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 셰리 캠벨은 가족과 단절한 심리학자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에게 끊임없이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당했다. 그는 가족의 괴롭힘을 견디며 살아오다, 40대가 되어서야 완전히 관계를 끊고 자신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학대하는 가족과 관계를 유지하라는 건 겁에 질려서 마음을 닫고 학대를 꾹 참으며 계속 살라는 소리”(14쪽)라고 강조하며, 학대 생존자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족과 경계선을 명확히 긋고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치유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해로운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법을 총 3부에 걸쳐 안내한다. 1부에서는 해로운 가족이 지닌 특성과 생존자가 해로운 가족과 단절해야 하는 이유,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지지하기 위한 방법들을 안내한다. 2부에서는 가족의 학대가 발달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설명하면서, 해로운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단계별로 소개한다. 3부에서는 관계 단절 후 생존자가 가족의 보복과 2차 가해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해롭지 않은 다른 가족은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등 사회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언을 담뿍 담는다.
가족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나 그들의 조언을 담은 책은 많이 있지만, 대다수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가족으로서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자는 중립적인 조언을 하는 데에 그친다. 이와 달리 저자는 가족에게 학대를 당한 생존자이자 단절 후 찾아오는 아픔과 수치심을 모두 겪어온 경험자로서 가해자를 단호하게 비판하고, 생존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희망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관계를 끊겠다는 결심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보고 챙기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25쪽) 수많은 생존자의 마음을 치유했고, 미국 아마존과 굿리즈에는 “이 책 덕에 처음으로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와 같은 찬사가 500건 넘게 쏟아졌다. 해로운 가족과의 문제로 생긴 마음의 상처를 남몰래 감추고 있다면, 이 책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해로운 가족과는 관계를 끊어도 된다.
여러분의 행복에 계속해서 해가 되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관계를 정리해도 된다.
화가 나면 화내도 된다. 자신을 챙기고 필요한 것들을 얻어라. 상대가 용서해달라고 해도 순진하게 다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돌봐도 된다. 나를 지키려면 그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고 일일이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19쪽)
“가족이 무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가?
해로우면서 무고한 사람은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건강한 가족과 해로운 가족은 명백히 다르다고 말한다. 해로운 가족과 건강한 가족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건강한 가족이라면 상대에게 “상처를 줬을 때 속상해하는 것”(32쪽)이 정상이다. 건강한 가족은 상대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다시는 그런 일을 일으키지 말아야겠다고 반성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해로운 가족은 자신이 잘못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더 착하거나 덜 보채는 아이였다면 자신도 부모 노릇을 더 잘했을 거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돌리거나 온갖 언어적·비언어적 수단으로 가족을 위협한다. 결국 해로운 가족에게 비난의 화살을 맞아온 아이는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믿게 된다(32쪽). 학대 생존자는 해로운 가족이 자신에게 가한 학대 행위가 보통 가정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인지, 아니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학대당하고도 ‘이만하면 학대가 맞다’고 스스로 확신할 수 없어서 오랫동안 그 일을 합리화”하기도 한다(208쪽).
학대 생존자가 겪는 문제는 각각 다르지만, 생존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해로운 감정이 있다. 바로 ‘죄책감’과 ‘수치심’이다. 가족에게서 벗어난 학대 생존자들이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존자들이 해로운 가족의 조종과 심리적 지배에 오래도록 짓눌려 자기 긍정감이 낮고,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해로운 수치심에서 벗어나야 건강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해로운 가족의 생존자들은 영아기 때부터 성장 과정 내내 해로운 가족의 학대가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노출되어, “자신이 얼마나 나쁜 아이이기에 나를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사랑해주지 않”을까 하는 자기 회의감에 빠진다. 그래서 이들은 ‘나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다’라는 근원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118~119쪽). 저자는 생존자가 이런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를 들여다보고, “그들이 주입한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121쪽). 저자는 생애 발달 단계와 각 단계별로 생존자가 겪은 애착 문제, 생존자의 뇌에 남은 트라우마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생존자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받아 자신을 불신하게 되는지 밝힌다. 이를 통해 생존자는 자신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차분히 돌아보고, 어떻게 부정적인 생각을 자신을 긍정하는 말로 바꿀 수 있을지 파악할 수 있다.
“허락은 자신에게만 구하면 된다”
해로운 가족으로부터 경계선을 긋고 불필요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길로 나아가는 마음가짐
해로운 가족이 주는 영향에서 벗어나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면 가족과 자신의 접촉을 분리하는 경계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한다. 경계선을 긋는 법으로는 선을 넘는 사람에게 그런 행동은 불편하다고 직접 알리는 방법, 대응하지 않고 침묵하는 방법이 있다(62쪽). 가족으로서의 명칭을 굳이 부르지 않는 것(69쪽)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아무리 해로운 가족이라도 이렇게 경계선을 정하고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나온다는 건 자신이 속하던 가장 가까운 사회집단에서 벗어나 온전히 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에 선을 그으려면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완전히 관계를 끊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을 긍정하는 건강한 삶을 찾기 위해서라도 경계선을 정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저자는 가족에게 경계선을 그어도 될지 망설이는 생존자들에게 먼저 관계를 끊은 학대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아낌없이 공유하며 용기를 불어넣는다. 자신감이 있어야만 가족과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나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고 알리는 내면의 느낌이 경계선을 그을 때 필요한 유일한 허락”이라고 하며 생존자들을 격려한다(60쪽). 마음의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이를 충실하게 따라가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행복을 지키기 위한 용기를 낼 수 있다.
한번은 인터뷰 중에, 해로운 가족과 관계를 끊을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가족과 관계를 끊을 때 내게 특별한 방법이나 자신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대답했다. 다른 수많은 생존자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족과 연을 끊은 건 내 가족이 내게 지속적으로 가한 심리적인 피해가 너무나 커서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것 외에 유익한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남은 마지막 선택은 불길에 휩싸인 건물에 그냥 머무르거나 뛰어내리는 것, 둘 중 하나였다. 나는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고 싶어서 뛰어내리는 쪽을 택했다. (49쪽)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온몸으로 슬퍼하는 것도 치유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4장). 해로운 가족의 학대를 지속적으로 받은 이들은 슬픈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해로운 가족 안에서는 슬픔·분노·상심을 표현하면 그만하라는 소리를 듣거나, 비난당하거나 무관심한 반응을 겪기 때문에 생존자는 건강하게 슬퍼하는 법 대신 슬픔을 밀어내는 법을 먼저 배운다(78쪽). 저자는 비록 아프더라도 느껴지는 감정을 온전히 느껴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가족이 나를 학대하고 무시하면서 내 인격을 잘못된 방법으로 다루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슬퍼”하고, “내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관계가 깨졌다는 생각”을 곱씹는 대신 “나를 내 아이처럼 사랑”하라고 조언한다(79~84쪽). 이렇게 마음을 돌보는 과정을 꾸준히 이어나가면 자신을 아끼고 긍정할 수 있게 되고, 가족의 빈자리를 채울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다(5장). 나를 보듬어줄 가족이 없다는 상실감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두려움을 조금씩 마주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일은 가능하다. 이런 깨달음을 거치면 건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나에게 유해한 사람들을 밀어내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로운 가족의 보복과 지속적인 괴롭힘,
주변 사람들의 2차 가해에 대응하는 실용적인 가이드
이 책의 특장점은 해로운 가족과 관계를 끊은 이후 생존자가 겪을 수 있는 위협적인 상황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준다는 것이다. 해로운 가족은 단절 이후에도 제삼자를 이용해 접근하거나, 사회적 상황을 빌미로 괴롭힘을 시도하며 생존자의 인생에 계속해서 끼어든다. 생존자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2차 가해는 “생존자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가족과의 불화에 끼어들고, 생존자가 끔찍한 인간이라는 해로운 가족의 주장에 물들어 그 가족과 함께 생존자를 비난하는 형태로도 발생”할 수 있다. 비난의 화살을 생존자에게 돌리려는 가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심코 학대에 동참하는 것이다(286쪽). 2차 가해의 형태로는 선물과 카드 보내기, 경제적으로 위협하기, 질병과 사망 소식을 이용해 접근하기 등이 있다.
이외에도 해로운 가족은 자세한 사정을 굳이 알 필요 없는 남이나 생존자와 친밀한 사람 을 끌어들여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거나(312쪽), 생존자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험담을 늘어놓거나(317쪽), 연휴와 가족 행사를 통해 접근하는 등(319쪽) 다양한 방법으로 생존자의 삶을 위협한다. 또한 관계를 끊은 가족과 생존자 사이에 낀, 생존자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는 다른 가족을 대해야 할 일도 생긴다(16장).
저자는 그럴 때일수록 생존자가 스스로 정한 경계선을 더욱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대에게 어떤 사정이 있어도 ‘이것만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기준을 정해놓으면, 생존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해로운 가족에게 이용당하는 제삼자까지 모두 지킬 수 있다. 만약 제삼자가 해로운 가족 편이라 생존자에게 적극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경우, 정면으로 맞서거나 해명하는 대신 알아서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317쪽). 생존자는 자신의 사정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본인이 처한 상황을 지나치게 세세히 설명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그렇게까지 설명해줄 필요는 없으며 그냥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답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해롭지 않은 가족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단절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이는 타협할 수 없는 경계선임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332쪽).
공감 능력이 높은 생존자들은 혹시 이렇게 선을 긋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생존자가 지켜야 할 것은 생존자 자신의 마음과 삶이며, 다른 사람들의 기분은 다른 사람들 몫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해로운 가족에게 당한 것을 되갚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찾고 멋지게 잘 살아가는 것”(347쪽)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우리가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관계는 자기 정신건강과의 관계밖에 없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챙기는 게 중요하며, 남들은 각자 알아서 자신을 챙기면 된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족에게서 겪은 잔인함과 조종을 똑같이 되갚아줄 수도 있지만,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익숙한 방식을 버리기로 마음먹는 건 공감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경계선을 확립하는 건 바로 그 결론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342~343쪽)
이처럼 이 책은 생존자들이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확신이 없어질 때 되돌아보면 좋은 조언과, 내적·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안내하는 실용적인 팁을 수록해 생존자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주변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내 마음을 망가뜨리는 가족과 선을 긋고 싶다면, 혹은 선을 그은 후에도 내 삶을 존중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면, 이 책이 여러분의 삶을 지키고 불필요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열쇠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