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들, 황진이가 백 번 쓰다 버린 개짐 같은 년이 왔네.
암소집에 웬 똥물에 튀긴 꽈배기 같은 년이 들어앉았어.”
만렙 욕쟁이 할머니부터 주정뱅이 망나니에 보이스피싱 범죄단까지,
더 이상 연예인이 웃고 떠들며 힐링하고 먹방하는 시골은 없다!
자연인의 인기가 드높다. 타락한 도시를 벗어나 공기 좋고, 물 좋고, 조용한 자연 속 공간에서 매일 같이 아침을 맞는 그들의 모습을 동경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자연인까지는 아니라도 좋다. 한적하고 인심 좋은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길 수만 있다면……. 그러나 여기 그런 도시인의 환상을 산산이 깨부수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종광. 벌써 7권의 소설집과 10권이 넘는 장편소설을 펴낸 베테랑 소설가다.
김종광 소설의 세계관은 충청도에 위치한 작은 동네 ‘안녕시’이다. 한때 광산업의 열풍을 타고 수많은 외지인이 몰렸던 안녕시는, 현재 정부에서 지원하는 농사직불금과 화력발전소 일자리에 의존해 겨우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그 빈자리를 늙어서도 늙을 수 없는 노인과 외국인들로 채운 안녕시는…… 시끄럽다. 시끄러워도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다.
육탄전을 서슴지 않는 욕쟁이 할머니는 기본이다.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동네 잔치에 모인 노인들을 보고 “고려장 파티구나야!” 하는 망나니는 옵션이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다수가 된 지는 오래고, 그 조그만 동네에서도 머시기 당과 보시기 당으로 나뉘어 서로 못 잡아먹는 건 예삿일이다. 거기에 도시에서 배운 젊은것들이 들어와 뿌리 깊은 유교 관습을 뒤흔든다.
그렇게 작가는 말한다. 늙었지만 도시보다 다이나믹하고, 느리지만 그만큼 오래 물고 늘어지는 게 진짜 시골이라고.
“농촌엔 챗지피티가 뽑아준 답처럼 뻔한 게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 모든 게 펄펄 살아 숨 쉬는 역동의 현장이더라고요.”
충청도식 완곡어법의 재미와 묘미를 온전히 담아낸 클래식 문학의 힘
챗지피티도 정답을 알 수 없는 톡톡 튀는 ‘힙’한 사투리 입담
충청도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상대가 말의 의중을 알아채면 다행이고, 못 알아들으면 그런대로 무시하면 된다. 그래서 김종광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 같이 겉과 속이 다르다.
이문구 작가의 소설 「암소」의 후사격인 「암소가 술 마신 집」에는 주인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세경을 떼였던 박선출과 그의 부인 신실 이야기가 나온다. 훗날 신실은 남편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와 옛 주인집을 매입하게 되는데, 귀향하자마자부터 욕쟁이 동네 할머니와 각을 세우며 온갖 비속어를 내뱉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동네 대소사를 모두 챙기며 결국 안녕시민의 일부가 되는데, 이는 ‘말’이라는 껍데기보다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시골 권력 지도와 행정 집행의 진수를 보여주는 「알아야 면장을 하지」는 첨예한 갈등 앞에서도 결코 격식을 잃지 않는 안녕시 어른들의 면모를 보여준다. 듣기 싫은 상대방의 의견엔 점잖게 “멧돼지 고라니 운우지정 나누는 소리”라며 무시하고, 그 치열하던 정쟁도 밥때가 되면 칼같이 그만두는 대화합의 면모를 보인다. 「토론 배우는 시간」, 「뭐라도 배우는 시간」 역시 충청도 사투리의 ‘힙’함을 잘 드러내는 소설이다. 책 많이 읽는 분이라며 소개를 받자 주인공 기분은 “도서관이 웃다가 사레들릴 소리”라며 손을 휘젓고, 목에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에겐 “근력들 좋으시네”라며 칭찬을 던진다. 피 터지게 싸우는 와중에도 해학과 유머를 포기할 수 없는 원조 충청도인들의 본능이 여기저기 묻어 나는 소설집, 『안녕의 발견』이다.
“우리는 모두 치고받고 싸우며 웃고 울리는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부당하고 불편한 현실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독하게 살아내온
무명씨들의 저마다 파란만장한 이야기
그런데 묘하다. 분명 도시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억세고 드센 충청도 안녕시민의 삶을 기록했는데,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따뜻하다. 평생 드잡이해온 친구 사이에 표준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우정이 오가고, 술만 마시면 동네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망나니에게서 눈물처럼 뜨거운 회한이 느껴진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오히려 불편한 관계로 얽힌 세 여자가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과정은 ‘진짜 가족’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여준다.
김종광 소설의 주인공은 ‘변방의 사람’들이다. 안녕시에서 콧방귀 좀 낀다는 71년생들은 끝내 도시에 정착하지 못한 토박이들이고, 경제 주도권을 거머쥐고 새롭게 부상하는 젊은 세대는 머나먼 땅에서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외지인과 그의 자녀들이다. 지식인의 삶을 살다 귀농해 토박이보다도 더 거칠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감 죽고서야 한글 떼고 졸업 가운 입는 할머니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다. 이 소설은 도시보다 모든 게 부족한 시골에서, 오히려 도시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하게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척박한 그들의 삶은 결국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지’가 아니라 ‘그래도 사람은 살아야지’로 귀결된다. 「우리 소풍을 위하여」는 하는 짓은 밉지만 누구보다도 가슴은 뜨거운 국제결혼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더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많은 것을 잃고 사는 도시인들의 사고를 반성하게끔 한다. 「어린애를 지켜라」는 작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팔십 넘은 노인들의 결기를 통해 진짜 어른의 자세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하고, 「농사는 처음이지?」는 역동적인 시골 농사 풍경과 대학생들의 콜라보를 시연하며 도시와 농촌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충청도 문학의 맥을 잇는 김종광 소설가의 일곱 번째 소설집이다. 그 긴 시간과 꾸준한 집필 속에서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은 더욱 강화되었고, 사투리는 더욱 맛깔스럽게 진화했다. 시쳇말로 ‘힙’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진 우리네 감수성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가장 핫한 MZ템으로 변화했듯,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그대로의 시골을 긴 시간 끈질기게 직시한 김종광의 소설에서 우리는 새로운 ‘힙’함을 느끼게 된다.
그 ‘힙’한 소설집의 제목은 「안녕의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