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오프라인을 망라한 여러 방법으로 글을 쓴다. 좋은 문장이 있으면 종이 위에 손수 사하면서 마음을 정화하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하소연하거나 유용한 정보를 나눈다. 독서에서 이어지는 사유를 적어 올리고, 주 양육자로 살아가며 겪는 일상적인 에피소드에 메시지를 담아 글로 남긴다. 이토록 다양한 글쓰기를 가능케 한 건 소통을 향한 나의 집념이다. 나는 맑은 날에도 쓰고 궂은 날에도 썼다. 슬플 때 쓰고 기쁠 때 썼다. 화가 날 때 쓰고 자책하며 썼다.
내 입에서 곰팡내가 났는데, 꼭 말이 아니더라도 손가락으로 눌러 쓴 문장만으로 입안에 있던 포자들이 밖으로 날아갔다. 그래서 쓰고 또 쓰면서 내 몸 구석구석 박혀있던 묵은 곰팡이를 긁어내고 입과 귀와 눈을 가로막았던 거미줄을 걷어냈다. 그러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진짜 이야기, ‘나의 글’이 시작됐다.
- 내 입에서 곰팡내가 났어_조미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라는 큰 질문의 힌트를 얻기 위해서, 매일 글을 써 보려 애썼다. 그런데 뭘 어떻게 써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해 검색했고 사람들의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알게 되었다. 자기 전 일기, 감사 일기, 새벽 일기, 확언 쓰기, 오늘 좋았던 일 세 줄 쓰기 등 검색된 내용을 참고해 하나씩 써 보았다. 인생을 건 결심을 했기에 어떻게든 노력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처음의 열정이 무색해질 정도로 실패한 글쓰기가 이어졌다.
책으로 에너지를 채웠다고 해도, 여전히 온전하지 못한 마음으로 글을 쓰니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감사 일기의 임무인 ‘감사한 것 다섯 개 쓰기’를 하려고 앉아 노트를 폈다. 막상 쓰려고 하니 감사함보다 불평하는 마음만 튀어나와, 다섯 개는커녕 한 개도 억지로 생각해 내는 나에게 화가 났다. 이렇게나 감사한 일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써야 했다. 쓰고 싶었다. 간절하게 나 자신을 알고 싶었고 글쓰기가 그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 단지 나를 알고 싶어서였다_우혜진
나는 ‘프로’ 정열가가 아니라 ‘끓어 넘치는’ 정열가였다. 글솜씨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며 자신감만 더 떨어졌다. 투자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결과에 분노가 치밀었고, 이윽고 자괴감이 나를 덮쳤다. 글쓰기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는 한편, 내가 정확히 무엇에 화가 났으며 왜 자괴감을 느끼는지 알아내고자 천천히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이 길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내가 책을 쓰는 일을 쉽게 여기고 들어온 길이었다. … 그러다 어느 순간, 좋아하는 일은 가늘고 길게 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내적인 성장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도,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단숨에 얻고자 한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빨리 끓어올라 넘쳐버리는 냄비 같은 마음은 이제 떨치고 싶었다.
- 은은한 뚝배기처럼 오래도록_강하나
글과 책을 쓰는 과정은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글쓰기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마주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공표하는 일이다. 바뀌는 것은 거의 없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입고 있는 역할의 옷은 거의 비슷했다. 계절 따라 세월 따라 약간의 차이가 생길 뿐, 무대가 조금 더 커지고, 관객이 더 많아졌을 뿐, 내 삶은 그대로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할까 봐 막막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초조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 나는 책을 쓰며 욕구를 충족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 안의 작고 소중한 것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먼 미래를 그리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꿈꾸기보다는 하루하루의 나를 실컷 어루만지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오늘의 내 모습이 온전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순간순간의 나를 사랑하고 싶다.
-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나를 어루만지며_이현정
간혹 혼자만의 시간에 고립되어, 실력이 발전하기는커녕 한 줄 쓰는 것도 버거워질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과 함께 쓰고, 나눠 읽는 일이다. 요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 책으로 만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느낌은, 나에게 있어서 미래를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 언젠가는 모임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에 관해서 쓰고 싶다. 비록 전문가처럼 능수능란하지 못하더라도,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배우고 타인과 함께 즐기면서 사는 기쁨이야말로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도록_김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