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시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나는 압니다. 군림하지 않잖아. 업신여기지 않잖아요. 다 안쓰럽게 여기잖아요.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곁에 오면 나는 살갗이 부들부들 떨려요. 역한 감정이 습자지처럼 배어 나와.”
예쁘지 않아도 예쁜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했다. 높은 곳에서 끼리끼리 놀고 싶어 하는 잘난 사람이 아니라 아래서 뿌리처럼 엉켜 사는 예쁘지 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p.91
‘한밤의 까마귀가 눈에 보이는지, 한밤의 까마귀 소리가 귀에 들리는지…….’ 이어령 선생과 ‘운명의 감촉’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를, 이제 나태주 선생과 하고 있었다.
계절이 왔지만 알지 못하고, 새가 울지만 듣지 못한 채로…… 자연이 끼워주는 시간의 책갈피 같은 것들을 우리는 다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주파수들도 잡지 못하고.
대체 우리는 얼마만큼 모르고 사는 걸까. 이 세계의 전모를 우리가 다 알 수 없다는 것, ‘모른다’는 자각에 신선한 전율이 느껴졌다. 태주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느끼고 가면 돼요. 아는 것도 모른다고 느끼는 게 중요해…… 그게 시인의 능력이지요. 대추 한 알을 앞에 놓고, 장석주 시인이 그 속에 고인 벼락도 보고 초승달도 보고. 허허. 열매 한 알 그저 한입에 털어 넣으면 그만인데…… 느껴보는 거예요, 모르는 이야기를.”
p.101
“습윤이라는 게 있어요. 좋은 시에는 습기가 있고 반짝임이 있답니다.”
“모이스처네요. 물광 같은 건가요?”
“네. 모이스처예요.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에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도 습기가 있고 물기가 있어요.”
“습기와 물기는 언제 생기나요?”
“솔직할 때 생깁니다.”
지수는 태주를 보면서 늘 솔직의 경지가 어디까지인지 감탄하곤 했다.
“저도 솔직하고 싶지만, 나의 솔직을 감당할 수 있는 너가 있을까, 늘 염려스러워요.”
“솔직은, 그런 것조차 다 포기하는 데서 와요.”
p.102
어쩌면 인생의 코너마다 극기가 아닌 포기를 택했기에, 태주는 스님도 교수도 ‘루저’도 아닌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예쁘게 보고, 예쁘게 말하는 시인. 고개를 떨군 풀포기 하나 업신여기지 않는 시인.
p.105
“……수많은 포기로 얻은 여든의 사랑은 어떤 모습입니까?”
동심원처럼 큰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여든의 사랑은…… 부지런한 사랑이에요.”
“부지런한 사랑이라…….”
“아내가 앉아서 오줌 누라고 하면 앉아서 얌전히 오줌 누고. 목욕하라고 하면 목욕하고 옷도 깨끗이 입고.”
“순한 아이의 사랑이군요!”
“그럼요. 포기의 정점이죠, 여든의 사랑은. 양말도 뒤집어서 벗지 않고. 이불 속에 식탁 아래 벗어 던지지 않고. 그게 사랑의 시작이에요. 시인의 바른 자세죠.”
p.109~110
함께 석양을 음미하거나 별을 보진 못했지만, 멀리 뜬 낮달이나 강물에 반짝이는 물별을 향유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태주는 아침의 남자였기에 저녁 무렵이면 성예가 기다리는 집으로 갔다.
그러나 낮 동안 태주의 우정에는 늘 설렘이 동행했고, 태주 자신이 먼저 수줍어 얼굴을 붉히거나 긴장이 배어 나오는 웃음으로 사랑의 채도를 맑게 유지했다.
태주는 공주의 자랑이었고, 공주는 태주의 자랑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공손한 공주 품에 태주라는 ‘예쁜 씨앗’이 날아들었기에, 도시는 더 울창해지고 환해지고 가까워졌다.
p.126
“우리는 누구나 진심을 들키고 싶어 해요. 진짜 마음은 순전하게 발굴되길 원하죠. 외로운 마음도, 멜랑콜리한 마음도 다. 우리의 과제는 이거예요. 자기 마음을 변형시키지 않고 일그러뜨리지 않고 그대로 꺼내는 것. 그런데 그냥 꺼낼 수는 없어요. 언어로 옷을 입혀 꺼내야 해요. 마음은 아메바처럼 계속 움직여요. 그 마음을 가만히 고정시켜서 느껴야 합니다. 냄새도 맡아보고 소리도 들어보고 촉감도 느껴보고…… 그런 다음 언어의 옷을 입혀서 사악 빼내야죠.”
p.155~156
태주와 함께 ‘이어령길’을 걸으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상념에 사로잡혔다.
지수에게 이어령은 크고 명료한 생각의 스승이었고, 나태주는 웃기고 다정한 느낌의 아버지였다. 이어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동작이 컸고 나태주는 희극 배우처럼 표정이 변화무쌍했다. 이어령의 눈은 예지로 번뜩였고 나태주의 눈은 물기로 촉촉했다.
이어령은 평생토록 죽음과 나와 우주를 탐구한 넉넉한 에고이스트였고, 나태주는 평생 너와 꽃과 사랑에 몰두한 로맨티스트였다. 이어령은 진선미의 높은 언어를, 나태주는 의식주의 생활 언어를 사용했으나, 둘 다 영성을 통과하는 은유의 달인이었다.
어휘의 총량이 무한대인 지식인과 기억의 총량이 무한대인 시인 사이에서 지수는 전극이 다른 경이를 느꼈다. 두 사람 다 충청도 사람이었고 유머가 풍부했고 키가 작았다. 무엇보다 남겨질 후대를 지극히 사랑했다.
p.201~202
“회복의 시작은 약해지는 걸 인정하는 것이거든. 약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죠. 시름시름 앓다 죽을 먹고 기운 차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플 때도 도울 수 있습니다. 이치가 그래요. 죽이 있어서 나는 앓는 걸 피하지 않아요. 약해져도 괜찮고 저자세로 살아도 나쁘지 않더라고.”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