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기자들 앞에서 입장 발표를 하는 조국 전 장관의 모습을 보며 절로 든 생각이 있다. 호흡마저 끊기며 살아온 지난날을 이겨내고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 조국 전 장관은 이미 승리했다고.
조국을 위해 조국을 버렸던 시간을 지나, 정치의 길로 첫발을 내딛는 그의 결의와 포효 가득한 발언들. 이때 기자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자 자신의 질문에 먼저 답하라며 되려 역공을 펼친 것이다. 이날 조국 전 장관의 송곳 질문은 전체 언론에서 앞다투어 보도되며 속 시원한 화제의 영상으로 많은 국민에게 회자되었다.
–24쪽, ‘법학자 조국, 고향 부산에서 정치인 조국의 첫발을 내딛다’ 중에서
제1묘역 참배를 마치고 제2묘역으로 향한 조국 전 장관은 정동년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묘비 앞에 섰다. 고 정동년 선생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다시 한번 정성스러운 손길로 묘비를 닦았다. 그때 정 선생의 부인 이명자 씨가 세상을 떠난 남편을 향해 “힘든 시기를 보낸 조국 전 장관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눈시울이 붉어진 조 전 장관이 이명자 씨를 말없이 안아주며 위로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보며 참아보려 애썼던 내 두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빗물을 닦는 척하며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32쪽, ‘스러지지 않는 5·18 정신으로 검찰독재에 맞서겠다’ 중에서
정치인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이 조국 전 장관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안들을 다시 불러내고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요즘 말로 뼈를 때리고 있었던 것은 그가 돌려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선비가 붓을 놓고 칼을 들었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대단한 결의가 느껴졌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발언 수위에 영상 제목을 ‘역대급 발언’이라고 정했다.
–63쪽,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국민에게 고한다’ 중에서
예고됐던 11시, 조국 인재영입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지난 열흘간의 경과를 보고했다. “검찰개혁에 앞장서고 복지의 토대 위에 행복국가를 지향하는 정당의 목표에 부합하는 인재를 모시기 위해 뛰고 있다”며 “드디어 오늘 첫 번째 영입인재를 모시게 되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여러분들도 워낙 잘 아시는 분이라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1호 영입인재로 ‘신장식 변호사’를 호명했다. 취재진과 지지자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놀라움과 반가움이 떠올랐고, 탄성과 환호도 흘러나왔다.
–71~72쪽, ‘조국신당이라는 강력한 함대를 구축하다’ 중에서
2부
이제 영입위원장 대신 ‘당 대표’ 이름표를 단 조국 대표를 축하하기 위해 장내의 모든 당원들이 휴대폰 조명을 켰다. 2019년 검찰개혁 촛불집회의 재연이었다. 그 촛불들 사이로 조국 당 대표가 무대의 중앙에 올랐다. 자신을 응원하던 5년 전 촛불집회에는 나설 수 없었던 조국 대표가 이제 스스로 길을 나서려 한다.
연단에 오른 당 대표 조국은 더 이상 ‘학자 조국’이 아니었다.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행동하는 ‘정치인 조국’이자, 검찰정권과 맞싸울 투지에 불타는 ‘투사 조국’이었다.
–94쪽, ‘맨 앞에서 서고 맨 마지막까지 싸우겠다’ 중에서
이날 조국 대표가 며칠 전에 마련해 둔 당사 기자실이 아닌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동훈 특검법’을 발표한 것도 강한 경고의 성격을 보여준다. 한동훈의 면전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에서 ‘너는 수사 대상이다’라고 공식화한 것이다. 이날 조국 대표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입당식 행사로 인해 급히 당사로 이동해야 했음에도 시간을 쪼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국이라는 사람은, ‘조국 사태’ 같은 지옥 같은 상황에 내몰려서도 그 자신의 품격을 잃지 않고 절차와 예의, 절도를 철저히 지키는 인물이다. 그 태도가 몸에 완전히 배어 있어 떼려야 뗄 수도 없다. 그런 조국이, 곧 국회에서 ‘동료 정치인’이 될 상대 당 대표의 이마에 ‘수사 대상자’라고 단단히 써 붙였다. 조국 대표의 서슬 퍼런 결기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132~133쪽, ‘검찰독재정권을 심판할 정의의 칼을 뽑아들다’ 중에서
조국 대표의 정치 진출 가능성이 점쳐지던 동안, 또 창당 선언 이후 한동안, ‘조국은 천생 학자라 정치는 못할 것’이라 쉽게 말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충장로 연설은 조국에 대한 그런 안이한 평가를 싹 씻어냈다. 청중의 가슴을 울리고 호응하게 만드는, 살아서 펄펄 뛰는 거리의 대중연설이었다. 2024년 22대 총선의 명장면 중 하나로 역사에 남을 것이 분명했다. 이후로도 조국 대표의 연설은 회를 거듭할수록 무르익어 갔다.
–145~146쪽, ‘광주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전하는 민주주의 정신’ 중에서
“느그들 쫄았제?”, “느그들 내가 끝을 본다!”
조국 대표의 이런 공개적인 ‘부산 사투리 도발’에는 몇 가지 의의가 있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 관점에서는 조 대표가 자신의 ‘제2의 인격’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조 대표는 그간의 공개 발언에서 부산 말투를 쓰지 않았지만, 지역적으로 늘 ‘부산 사람’이라 자부해 왔다. 점잖고 품격 있는 언어로 말하는 조국 외에도 거친 부산말을 구사하는 ‘부산 사나이’ 조국이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162~163쪽, ‘강렬한 부산 사투리로 시작된 조국의 도발’ 중에서
시민들의 환호 속에 등장한 조국 대표는 플라스틱 팔레트 받침대로 만든 낮은 임시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을 향해 쩌렁쩌렁 외쳤다. “이제! 고마! 치아라 마!” 3월 15일 YTN 인터뷰에서 “느그들 쫄았제”와 “느그들 내가 끝을 본다”로 카리스마 있는 경고를 날린 것에 이어 또 하나의 부산말 구호를 선보인 것이다.
-179쪽, ‘무도한 정권을 향해 외치는 강렬한 경고’ 중에서
3부
조국혁신당 일행은 곧바로 인근에 있는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으로 향했다. 중악로역 내에 마련된 ‘2·18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조국 대표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지하철로 내려가는 겨우 몇 걸음 사이에 주변으로 금세 인파가 모여들었고 “조국! 조국!” 하고 연호하는 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시민들이 먼저 나서서 “3년은 너무 길다!”와 “치아라!”, “치아뿌라!”, “3개월도 괴롭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여기가 과연 ‘보수의 심장’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정권 심판 투사 조국의 등판에 대구 민심도 들썩이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215쪽, ‘조국혁신당이 불러일으킨 동남풍이 전국으로 확산되다’ 중에서
‘조 대표에게 다가오는 시민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밝게 웃고 있었고 조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키가 작은 시민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면 매번 키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구부려 몸을 낮추었고, 조 대표의 저서를 가져와 사인을 요청하는 시민들에게도 마다하거나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히 사인을 해주었다.
-261쪽, ‘온몸을 던질 각오로 끝까지 간다’ 중에서
마지막 유세 심경이 어떤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국 대표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라고 서두를 꺼내다 울컥한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서 조국 대표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나서 국정농단을 벌인 박근혜 정권을 조기종식시켰던 그 자리입니다. 또 다른 국정농단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떤 조기종식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난 2년은 지긋지긋하고 3년은 너무 깁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기로 조국혁신당이 결정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325~326쪽, ‘부산에서 시작해 광화문에서 마무리한 대장정’ 중에서
조국혁신당이 등장한 후로 일어난 총선판의 편화는 단순히 지지율을 그만큼 확보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국혁신당은 ‘한동훈 바람’을 순식간에 잠재워 버렸다. 조국 대표는 2월 16일 전주 방문 기자 간담회에서부터 한동훈을 정면 겨냥했는데, 이에 화답한 기자들이 한동훈에 관한 질문을 연달아 던지고 조 대표가 선명한 답변들을 내놓으면서 그동안 과대포장되어 있었던 한동훈의 ‘질소가스’가 구멍 난 풍선처럼 빠지기 시작했다.
-334쪽, ‘조국혁신당 22대 총선 결과 분석’ 중에서
개인과 가족의 진실, 권리를 찾아가던 그가 어느 날 우리 사회 전반의 검찰 통치를 종식시키자고 했을 때 개인의 수난 서사는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윤석열 검찰 통치에 맞서자는 그의 말에 함께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파란 불꽃이 되어 있었다. 그가 든 횃불을 중심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우리의 두려움은 서서히 사라졌다.
-338쪽,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