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에 탈북해 연고가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기까지 참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요즘처럼 취업난으로 힘든 시기에 취업해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게 힘든 건 사실이에요. 출근길에 오른 많은 인파에 떠밀려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진이 빠져요. 그래도 다행인 건 회사가 서울에 있다는 것이에요. 출퇴근 시간이 기본 편도로 1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저는 행운이죠. 그럼에도 퇴근 후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면 기운이 쏙 빠져 씻을 힘마저 없어요.
저는 집에 오면 가장 먼저 TV부터 켜는 습관이 있어요. 아마도 임대주택을 받은 날부터였던 같아요. 꼭 TV를 보진 않아도 집안에 정적이 흐르는 게 싫어 일부러 켜놓게 되었거든요. 가끔 집에 놀러 오는 지인들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도 안 벗고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TV부터 켜냐고요.
이 집을 신청해서 받기 전까지 단체 생활했던 저에게 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하지만, 가끔 불청객처럼 외로움과 쓸쓸함이 찾아오기도 해요. 이 또한, 혼자 살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죠. 특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온기 하나 없이 캄캄한 방을 보면 누군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현실은 적막한 공기와 가전제품들에서 나는 소음뿐이죠. 그렇게 집안의 적막한 기운을 느끼기 싫어서 시작한 TV 켜기는 이제는 집에 와서 안 하면 안 되는 일과 중 하나가 되었어요.
가끔, 힘든 날은 TV를 보며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셔요. 열심히 하루를 보낸 보상으로요. 그리고 건강하기 위해 스트레칭과 홈트레이닝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해요. 그중에서도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일기 쓰는 거예요. 그리곤 포근한 이불 속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봐요. 오늘 하루 내가 실수한 건 없는지,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 하고요. 그리고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미리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잠이 들어요. 지친 하루의 피로를 포근히 안아 주는 저만의 아지트. 때로는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집이지만, 그 고요함이 저에겐 얼마나 포근하고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적어도 때로는 외로울지언정 더 이상의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진 않으니까요.
(‘외롭지만 불행하진 않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