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가 가리키는 명징한 현실과 숫자가 담아내지 못한 삶
0%에서 95.8%까지, 국·내외 통계와 50여개의 다양한 그래프 수록
재난, 세대, 주거, 교육, 의료, 젠더, 노동, 환경 등 한국 사회 관통하는 40개 주제 다뤄
한국 사회에서 통계를 마주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OECD 평균 몇 %”, “통계청 발표 몇 %”, “OO정당 지지율 몇 %” 등 통계, 즉 ‘퍼센트’가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퍼센트는 현실을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하지만, 한편으로 금방 휘발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차고 넘치는 퍼센트 중 책은 40개의 주제를 선별하고, 그 통계를 기록했다. 어떤 것은 묵직하고 거시적인 주제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자칫 지나치기 쉬운 미시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각각의 퍼센트 수치는 시간이 흐르면 바뀌어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 안지현은 “책이 담고 있는 40개의 주제와 통계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를, 그리고 퍼센트와 숫자가 채 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0%와 25.3%의 의미
책은 0%에서 시작한다(엄밀히 말하면, 0에 가까운 ≒0%). 2020년 방송인 사유리 씨가 ‘푸른 눈의 아이’를 출산했을 당시 세상은 놀랐다. ‘여성 단독 출산’, ‘비혼 출산’으로는 한국 사회에 처음 등장한 사례였기 때문이었다. 당시까지 ‘한국에서 결혼 없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출산율 최저를 매해 갱신하는 한국에서 이는 불가능한 것일까?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이를 법으로 막고 있지 않다. 다만,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윤리 지침이 문제였다. 여성 단독 출산에 필요한 정자 공여를 “사실혼을 포함한 부부에 한해서”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법률상 금지 규정이 없는데 배우자 없는 여성의 출산을 제한하는 건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있었지만, 학회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면서 이를 거부했다.
사유리 씨의 출산 이후 여성 단독 출산에 대한 요구는 꾸준히 늘고 있는데 2021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비혼 여성 응답자의 26%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책은 해외의 관련 통계를 함께 살펴보고, 최근(2023년 말) 한국에서 동성 부부가 출산한 사례도 소개한다. 그래서 이 주제의 퍼센트는 처음에 ‘0%’였다가 출간을 앞두고 ‘≒0%’로 최종 수정되었다.
한국의 ‘출산(율) 문제’와 관련해 유추해볼 수 있는 통계가 책의 다른 주제에도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는 이렇다. “수도권에서 주택 가격이 20% 상승하면 합계 출산율은 3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조세재정연구원, 2021년). 소득별로 출산율을 살펴보니, 소득 하위층(1분위)의 출산율이 소득 상위층(3분위)의 39.1%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한국경제연구원, 2022년).”
그리고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사는 기혼 여성(15~54세, 453만 6000명) 가운데 25.3%로, 네 명 가운데 한 명꼴(통계청, 2022년)”로 한국의 여성들은 ‘경력 단절’을 겪고 있으며, “출산과 육아가 집중되는 30대 중반 들어 여성의 고용률은 57.5%까지 뚝 떨어진다(기획재정부, 2021년).” 이 통계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가늠해보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따로 또 같이 읽는 통계들
이렇듯 책의 통계들은 각각의 주제(비혼 출산, 경력 단절 여성, 주택가격)를 설명하면서도 하나의 주제(한국의 출산율)와도 연결되어 한국 사회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다른 사례로서 ‘이동할 권리’도 각기 다른 주제를 통해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공통된 문제에 접근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컨대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 이면에는 이런 통계가 있다. 2020년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응답자의 21.7%가 월 3회 이하로만 외출한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의 비율은 30.6%(국토교통부, 2012년)이며, 이마저도 탑승 거부를 당한 경험이 48%(국가인권위원회, 2019년)이다. 이들이 지하철을 막아서는 ‘나쁜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비단 장애인만의 문제일까? 코로나19 이후 전국 버스터미널의 28%(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협회, 2022년)가 사라졌으며 2022년 티머니 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고속·시외버스 배차는 코로나19 이전보다 41% 감소했고, 노선은 27%나 없어졌다.
여기에 더해 책은 흥미로운 통계도 제시한다. ‘늦은 저녁 서울에서는 왜 택시 잡기가 어려운가?’ 2022년 카카오모빌리티의 조사에 답이 있다. 자정이 되면 서울 택시의 47%가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머문다. 왜 그럴까? 평균 연령 63.5세인 서울 택시 기사들은 고령화로 인한 장시간 야간 운행을 기피하며, 저녁 8시부터 서울 외곽으로의 장거리 운행을 시작해 자정 무렵 대부분 서울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이후 서울 법인 택시 운행율은 31.5%(서울시 택시정책팀, 2022년)로 최저를 기록했으며, 코로나19 당시 떠난 3만 여명(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2022년)의 기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탓도 크다.
숫자가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삶
책은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통계도 보여준다. 저자가 책의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이들은 “장애인, 경력 단절 여성, Z세대, 성소수자, 반지하 거주민, 베트남전쟁 피해자, 운전기사, 그리고 자립 준비 청년들. 모두 제가 주목했던 《퍼센트》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고기나 생선을 주 1회도 먹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이들(25.5%, 보건복지부, 2018년)’, ‘학교 폭력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아이들(17.3%, 교육부, 2022년), ‘이미 학대 받고도 또 학대 받는 아이들(14.7%, 보건복지부, 2021년), ‘보육원에서 자립하면서 대학에 진학하는 청소년들(12.9%, 보건복지부, 2021년)’에게 각별히 주목한다. 그리고 숫자가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이들의 삶을 최대한 경청하고 기록한다. ‘결식카드’로는 편의점밖에 갈 수 없는 아이들, ‘신고해봤자…’라는 아이들, 부모의 처벌보다는 사랑을 우선하는 아이들, ‘자립’이라는 말이 무색한 환경의 청소년들…. 이렇듯 책은 통계와 숫자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그 이면의 구체적 삶에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일의 퍼센트는 점점 내려가고, 좋지 않은 일의 퍼센트는 계속 올라가는구나. 읽는 내내 그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있다. 각각의 퍼센트 진행이 거꾸로 되길 바라는 마음. 나는 [저자] 안지현이 그래서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추천한 손석희 전 JTBC 뉴스룸 앵커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