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주말 오전, 평범한 가죽복원소에
가족을 복원해달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가족복원소』는 『이달의 장르소설』 창간호에 수록된 이필원 작가의 단편소설 「가족복원소」를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가족복원소』는 가죽복원소 간판에 새똥 얼룩이 묻어 가족복원소로 보였는데, 이걸 잘못 읽은 꼬마 손님이 찾아오는 데서 시작된다. 이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이상하게 가죽복원소에 가죽과 함께 가족을 맡기는 사람들이 줄이어 방문한다.
사이가 소원해진 언니, 먼저 세상을 떠난 약혼자, 홀로 살아가는 이국의 땅에서 가족처럼 위로가 되었던 반려견,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한 노파, 그리고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 아빠 등 다양한 사연이 가죽과 함께 복원소에 맡겨진다.
『가족복원소』에는 틀어진 가족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고찰이 담겨 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관계를 고민한 흔적이 부드러운 가죽처럼 느껴진다. 사람들 사이에는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관계도 있고. 이제는 정리해야 하는 관계도 있다. 가족복원소는 그런 마음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마음이 담긴 가죽 물건을 세심하게 씻어내고, 예전처럼 색을 입히고, 다시 꿰매면서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도 회복시켜준다.
마음을 소비하며 계속 만들어가고 파괴하는
관계에 대하여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관계란 어떤 의미일까? 영화 「어느 가족」에는 각자 사연을 가진, 피 한 방울 안 섞인 가족이 모여 산다. 넉넉지 않고 떳떳하지 못한 삶이지만 그들 가족은 버려진 아이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관계가 망가지리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말이다. 관계는 인간을 괴롭게 한다. 다른 무엇보다 마음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고 상처를 받고 결국 끊어진다. 우리는 모든 관계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좋은 관계든 물리적, 심리적으로 끝이 있기 마련인 탓이다. 누군가는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계를 만들고 파괴하는 걸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관계가 주는 기쁨과 충만함을 인간의 유전자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받은 기억, 행복했던 순간, 마음을 움직였던 모습들이 다시 위험천만한 관계라는 고속도로로 뛰어들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복원소는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재정비할 수 있도록 돕는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다. 가족복원소를 방문하는 이들은 관계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복원을 맡긴 건 가죽제품이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관계를 이어나갈 용기나 관계를 정리해야 할 시간, 혹은 위로다. 가족복원소는 묵묵히 그들에게 필요한 걸 복원해준다.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세련된 말이 아닌 가죽에 얽힌 사연을 묵묵히 듣고, 그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새것처럼 복원된 가죽제품을 보여주며 당신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세상에 이런 복원소가 있을까? 있다면 기억이 담긴 물건을 들고 가 복원을 맡겨보고 싶다.
관계에서 상처받은 어린아이
상처 입은 가죽을 무두질하며 마음을 꿰매다
『가족복원소』는 주인공 진구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란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다. 애정과 정열 같은 감정과는 담을 쌓고 자랐다. 그래서 가족을 복원해달라는 둘이의 요청에도 냉소적인 말을 던진다.
“벌어진 틈을 메우면 그 틈이 다시는 안 벌어질 거 같냐?
그때 가서는 뭘 해도 소용없을 거라고, 알아?”
-본문 중에서
하지만 조용한 복원소에서 사연이 담긴 가죽을 무두질하며 진구의 마음에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긴다. 가죽에 담긴 관계를 생각하며 자신이 겪을 일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이혼의 원흉이라 생각해 그저 미웠던 아빠와 마주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진구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해 나간다. 진구는 아마 엄마의 바람처럼 ‘슈가보이’가 될 것이다. 복원소에서 가죽과 가족을 맡기러 오는 손님을 맞아 친절하게 차 한 잔 건네며,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고 웃어줄 테다. 가죽에 담긴 넋두리를 들으며 그들에게 공감해주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이다. 이제 스물이 된 그는 얕은 혹은 깊은 관계를 겪으며 무수한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다시 새로운 사람을 꿈꾸는, 여기저기 꿰맨 자국 많은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