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휠체어 탄 언니들 이야기만 왕창 듣고 싶다!”
- 20대 장애여성이 인터뷰한 10대~60대 장애여성
- 휠체어와 말들의 경쾌한 이어달리기
산문집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로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유튜버 구르님이 2년 만에 인터뷰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는 그가 본명 김지우로서 “휠체어 탄 언니들 이야기만 왕창 듣고 싶다!”는 사심을 품고 기획한 메일링 서비스에서 출발했다.
‘언니들 이야기가 궁금해서’라는 레터에 다양한 세대의 장애여성 이야기를 담았다는 소개에 수많은 구독자가 화답했다. 유지민, 주성희, 홍서윤, 박다온의 이야기에 이어 책에는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전윤선, 김효선의 이야기를 더했다. 10대에서 60대까지, 소녀에서 할머니에 이르는 멋진 여자들의 용기와 유머, 지혜와 활력이 가득하다.
이 책에는 휠체어를 타는 여성이 잔뜩 등장한다. 물음표와 느낌표를 오가며 경쾌한 리듬으로 대화를 이끄는 인터뷰어도, 호흡과 호흡 사이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 내는 인터뷰이도 장애여성이다. 그러니 책 자체가 휠체어와 말들의 이어달리기다.
작가 김지우는 엄마도 여동생도 있지만 장애인이 아니기에 삶의 경로에서 그와 ‘같은’ 고민을 공유하기 힘든 지점을 만날 때마다 아쉬워하곤 했다. 장애가 있으면서 여성인, 여성이면서 장애가 있는 사람의 몸. 둘 중 하나로 혹은 둘 다의 상황을 1+1로 이해하려 하면 자꾸만 비는 곳이 생기는 몸이었다.
그래서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언니들에게 집착한다”고 말하는 그는 자칭 ‘언니 수집가’로서 여섯 명의 언니를 만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는 장애여성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재를 비추는 기록인 동시에, 세상이 롤 모델을 보여 주지 않기에 스스로 찾아 나선 20대 여성의 성장 서사다.
2. 바퀴로 열어젖힌 멋진 여자들의 세계
- 거창한 이름표 없이도 세상을 바꾸는 잔근육
- 몸을 던져 수많은 가능성에 가닿고 서로의 삶을 넓히다
청소년・비건・장애여성으로서 교차하는 정체성을 성찰하는 유지민, 짜릿한 스피드를 즐기는 운동과 세상을 바꾸는 운동 모두 하는 주성희, 취미 생활에서 정치까지 장애여성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홍서윤, 내 일만큼은 제대로 해내는 사업가이자 꿀릴 게 없는 엄마 박다온, 더 많은 장애인을 세상 밖으로 안내하는 여행 작가 전윤선,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아 학문의 세계를 유영하는 교수 김효선.
노는 걸 좋아하는 언니, 제대로 싸우는 언니, 유머의 중요성을 아는 언니. 삶의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언니, 사회의 벽 앞에 좌절해 본 언니, 그럼에도 다시 나아가는 언니. 이것은 인생이라는 모험을 이어 가는 자매들의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장애여성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면 직접 나서 보여 주는 박력이 있고, 거창한 이름표 없이도 세상을 바꾸는 일을 지속하는 잔근육이 있다.
산부인과 검진 의자에 어떻게 올라갈 수 있는지,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살아갈 용기를 어떤 계기로 획득했는지, 즐겁고 안전한 성적 경험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기합을 주고받으며 운동하는 재미가 얼마나 큰지…. 마이크 앞에 앉은 여자들은 장애여성이기에 요긴한 꿀팁과 지혜를,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고민과 기쁨을 나누며 연결의 순간을 빚어낸다.
“장애가 있는 사람 중에 잘사는 사람만 잘 살면 안 되는 거잖아.” - 유지민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 특별한 사람이 돼야 하나?’ 이 생각 말고, ‘평범하게 살아가야지.’ 할 수 있게.” - 주성희
“하고 힘들면 포기할 거잖아? 포기할 때 하더라도 일단 해 보면 되지. 그러다 재밌으면 더 하면 되고.” - 홍서윤
“내 삶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거든요. 그래서 애한테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 박다온
“늘 말하는 것 중 하나가 ‘배워서 남 주자.’거든요. 배워서 장애인 주자, 배워서 장애여성 후배 주자.” - 전윤선
“남 신경 쓴다고 더 잘 살고 이런 거 아니야. 그냥 내 멋대로 사세요.” - 김효선
3. “다음에 올 휠체어 탄 사람들에게”
- 장애여성이 장애여성에게 보내는 사랑과 존경
다른 정체성이 그러하듯,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친밀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김지우를 통과한 말들 사이에서 개성 강한 인물들이 곁을 내어 준 유쾌하고 사려 깊은 풍경을 포착할 수 있다. 여기에는 말과 말 사이를 어떻게 이을지, 얼마나 가깝게 다가서고 물러날지 거리를 조절하며 독자를 타인의 삶으로 안내하는 인터뷰어 김지우의 역량이 분명히 존재한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휠체어를 타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을 나누며 맞장구치다가도, 서로 다른 세대와 나라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며 삶의 확장 가능성을 살핀다. 오랜 시간 마주해 온 관계가 빚어내는 유대도, 잘 모르는 사이였지만 장애라는 교집합을 공유하며 성큼 가까워지는 순간도 존재한다. 다른 존재를 보며 나의 궤도를 가늠하는 마음은 곧 ‘너를 통해 나를 보는’ 사랑이요, 우정이다.
이들의 대화에는 자기 삶을 소중히 일궈 나가는 사람의 긍지가 반짝인다. 휠체어 타는 사람을 출퇴근길 대중교통의 시민으로, 옆자리에서 일하는 팀원으로, 헬스장에서 땀 흘리는 회원으로 마주하는 일이 드문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에 대한 존경과 응원의 마음이 흐른다.
4. “언니들의 유산으로 나는 나아간다”
- 멋진 언니들이 길을 내니, 휠체어여 따르라!
아픈, 땀 흘리는, 월경하는, 나이 드는 몸은 한계를 마주한다. 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반 시설과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사회에서 지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다시 집 밖으로 바퀴를 굴릴 수 있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있고, 거기에 네가 있음을 아는’ 감각은 중요하다. 그 자각이 새로운 시도를 위한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한 사람을 성장시킨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의 길은 넓고 다양해진다.
이 책에 참여한 인터뷰이 중 최연장자, 1957년생 김효선은 말한다.
“장애인이 저게 미쳤나, 그러겠지만 미치면 어때? 미친다고 자기가 돈을 줄 거야, 밥을 줄 거야. 그냥 내가 좋아서 살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사회를 깨라. 어떤 면에서 이미 우리는 장애라는 걸로 비장애인들의 사회를 깼어. 그러니 멋있게 더 깨라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사회적인 분위기라는 게 있어서 쉽지 않지만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돼. 누군가는 시작해야 해요. 그렇다면 그게 바로 후배 당신이면 좋겠는 거야.”
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김지우 작가는 말한다.
“언니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어.”
이것은 극복의 서사가 아니다. 다양한 인생 경로에서 장애여성들이 저마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분투한 고단하고 즐거운 순간들의 기록이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만들어 나가는 에너지를 품은 몸들의 이야기다. 이 경험은 또 다른 우리가 ‘내 모습 그대로’ 삶의 범위를 넓혀 나갈 수 있는 영감이 된다. 세대를 넘는 언니들의 혜안은 연결된 존재로 살아감을 자각하는 모두가 지표로 삼을 만한 공명을 전한다. 그러니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는 모든 장애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은 넓고 장애여성은 어디에나 있다. 아직 우리가 만나지 못한 수많은 장애여성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들의 바퀴가 더 멀리, 넓은 곳을 구를 수 있기를. 우리가 말들의 이어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