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사회적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야기하였다.”
“기후정의가 위기 해결을 위한 가장 빠른 길 여는 열쇠”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변화!”
“인류가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애를 써야겠지만,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아니 다 망할 것 같다. 미래가 없어 보인다.”
저자는 어느 강연에서 기후위기의 절박함을 이야기하다 이렇게 말했다. 말을 뱉고 난 후에야 청중들이 다시 저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한 청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혼자 절망감에 빠져 그를, 그리고 청중들을 잊고 있었다. 당황스러웠고, 부끄러웠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겁을 줘서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끙끙대던 ‘기후 우울증’을 배설하고 있었던 것인지. 무슨 권리로 그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저자가 기후위기의 절박함 앞에서 느낀 절망감, 강연장에서 느낀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을 고백한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반성은 그를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조직하는 현장으로 이끈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 즉 연구와 실천의 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토론하고 논쟁하며 씌어진 것이다.
“우리 앞의 가장 강력한 적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리라는 비관과 무기력”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 책은 저자 스스로 그런 비관과 무기력과 싸우면서, 우리 모두가 어떻게 이 절망감을 딛고 희망을 만들 수 있을지를 치열한 언어로 제시하고 있다.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저자가
‘기후위기 비상행동’ 실천 현장에서 보내는 메시지
이 책은 기후위기(Climate Crisis)를 다룬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날로 심화하며 또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이를 실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회가 ‘비상선언’을 하고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 부르자는 제안이 나온 지도 한참 되었다. 그 영향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주로 기후변화의 실상과 원인 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기술, 경제, 제도 등 관련 해결책에 대해 정책적으로 논하는 책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 책은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강조한다. 기후위기는 모든 인류 공동의 문제라고 선언되지만, 그 피해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또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가마다, 그리고 계층마다 상이하다는 점도 주의 깊게 살핀다. 부유한 국가와 부자들이 대부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가난한 나라와 빈자들이 대부분의 피해를 감당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논의에서 이 진실은 종종 생략되지만,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기후정의를 빼고 기후위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이 책은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변화(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반대로 사회적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기술과 탐욕스런 시장에 의존하여 온실가스 배출만을 줄이려는 시도는 무모하다고 경고하며,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재난 자본주의’ 혹은 ‘녹색 자본주의’가 해결책으로 호도될 것에 우려를 표한다. 기후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기후정의 동맹’을 만들어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환한 ‘탈성장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저자 소개
한재각
현대 과학기술의 파괴적 속성을 비판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에서 유전자조작식품(GMO) 반대 운동, 생명윤리법 제정 운동 등에 참여했다. 진보정당 운동에 공감하여 민주노동당에 합류하고 과학기술 및 환경 정책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때 ‘황우석 사태’에 맞서다 겨우 살아남았다. 이후 에너지 및 기후 분야의 진보적 싱크탱크를 표방한 ‘사단법인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참, 이름 길다) 설립에 참여하고, 부소장과 소장으로 12년을 일했다. 동료들과 재밌는 공부도 많이 했고 가끔 도전적인 글도 썼지만, 먹고살려고 용역 보고서를 쓰면서 영혼을 괴롭혔다. 그 와중에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맡았고(슬프게도 이제는 탈당하여 무당적자다), 2019년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결성하는 데 참여하고 공동운영위원장으로도 일했다. 이제 곧 연구소를 떠나,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방식으로 연구하고 활동하려 고민 중이다. 함께 사는 아내 그리고 두 고양이를 위로 삼고 핑계 삼아, 절망감을 떨치고 뭔가 해볼 용기를 내고 있다.
■ 본문 중에서
기후위기는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우리 모두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그 책임이 모두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다. 누가 얼마나 기후위기에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여행에 나섰다가 한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돈 좀 버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한 상 가득한 수만 원짜리 정식을 시켜 먹고, 또 다른 무리는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6~7천 원 가격의 찌개백반을 하나씩 먹었다. 그만 한 여력도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김밥 몇 줄을 시켜서 나눠 먹었다. 떠나야 할 때가 되어 일어서는데, 별실에서 따로 배불리 정식을 먹고 나선 이들이 외쳤다. “함께 먹었으니, N분의 일로 합시다!” 김밥을 나눠 먹은 이들은 기가 막힐 일이다. 당장 멱살을 잡지 않으면 다행이고, 이 여행은 결코 제대로 끝낼 수가 없을 것이다.
기후위기에 직면해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일이 이와 비슷하다. 비싼 음식 시켜 먹은 사람이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처럼,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한 나라와 사람들이 감축의 책임을 더 크게 져야 한다.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원칙을 상기하라. 따라서 기후변화가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지기 위해서는, 누가 온실가스를 지금 더 많이 배출하고 있는지, 혹은 과거부터 더 많이 배출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