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벨리쿠스
인간의 특성을 라틴어 한마디로 정의하는 말이 꽤 있습니다. 정치적 동물,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 놀이하는 존재 등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인간은 전쟁하는 존재라는 뜻에서 호모 벨리쿠스(Homo Bellicus)라고도 부릅니다. 별로 달갑지 않은 명칭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을 정의하는 수많은 견해 중 전쟁의 주체를 국가로, 전쟁을 정치적 수단의 하나로 규정하는 정의는 19세기 초 독일의 전신 프로이센의 군인이자 전쟁론의 대가 클라우제비츠가 일반화했습니다. 전쟁은 인류 역사의 가장 오래되고 반복되는 현상 중 하나로써,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전쟁이 영화나 게임에서 나오는 ‘히어로 vs. 악당’의 대립이나, 종교 갈등과 같은 1차원적인 구도가 아니라,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치, 경제, 종교, 가치관의 충돌 결과라는 점을 학생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전쟁의 역사, 역사의 전쟁
B.C. 3,000년부터 A.D. 1950년까지 약 5,000년 동안 약 1만 4,500건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희생된 사람의 숫자는 무려 35억 명에 이릅니다. 그 5,000년 동안 약 92%는 전쟁 중이었고 단 8%만 평화 기간이었습니다. (EBS 지식채널 e 다큐멘터리 「크리스마스 휴전」 중) 고대에는 느슨한 부족공동체가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크고 강력한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기병대’의 출현으로 성벽으로 농업경제를 지키는 전쟁에서 싸워 빼앗는 전쟁으로 바뀝니다. 중세 왕국은 ‘기마병’을 중심으로 군대가 만들어집니다. 15세기를 지나면서 무기(석궁, 총, 대포)의 발달로 기사 계급은 몰락합니다. 기사가 되는 데 필요한 기간이 길었던 반면 총이나 대포는 사용법을 배우는 데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군대의 무게추는 보병으로 이동합니다. 신교와 구교의 전쟁이었던 삼십년전쟁과 이를 종결시킨 베스트팔렌조약을 근대국가 탄생의 기점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봉건제의 기초였던 구교(가톨릭)가 쇠락하고, 농업 위주의 장원경제가 상공업 위주의 자본주의로 넘어간 기점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용병이 싸운 구교와 상비군이 싸운 신교의 맞대결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후자의 승리로 상비군이 정착합니다. 나폴레옹 전쟁은 전쟁사에서 중요합니다. 국민군대와 총력전쟁이 등장한 것입니다. 당시 육군 대신이었던 카르노는 이런 담화를 발표합니다.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장정은 전쟁에 나오고, 노약자와 아녀자는 군수물자를 만들고 보급하는 일에 봉사하라.”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 세력 다툼이었습니다. 싸움터가 공중까지 확대된 제2차 세계대전은 무기의 살상능력이 엄청나게 높아집니다. 냉전질서가 유지된 20세기 중반 이후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중동은 ‘세기의 화약고’가 되었고, 전쟁의 양상은 테러리즘으로 바뀌며 무방비의 민간인을 상대로 벌이는 범죄행위가 산발적으로 나타납니다.
평화야말로 문제의 해결
전쟁을 인류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전쟁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전쟁을 피할 수 있는지 고찰해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전쟁을 방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전쟁은 단순한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전쟁의 다양성과 복잡성, 그리고 인간에 내재한 운명적이고 구조적인 특성이라는 점에 일부 동의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필요하다거나 필연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전쟁은 비극이며, 피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존경을 담은 살인도, 온화한 파괴도 없다. 종전 외에는 전쟁에 좋은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