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뜻하고 쌉싸름한 맛은 뭐지?
잠든 정신을 일깨우는 카페인 같은 문장들이 찰랑인다.”
- 《해방의 밤》 은유 작가 추천!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 저자의 두 번째 에세이
엄마 되기의 극한을 경험한 사람이
오늘의 커피를 떠올리며 숨 쉴 구멍을 찾는 이야기
“엄마, 커피, 인생은 닮았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다. 어떨 땐 내 입에 딱 맞지만, 당황스럽거나 화가 날 정도로 맛이 없을 때도 있다. 여러 맛들이 서로 충돌하고 어울리며 “한 가지 맛으로 정리되지 않는 복잡함의 풍미”가 특징이다. 커피는 엄마, 인생과 닮았다.
첫 책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에서 중증 장애아 엄마로서 솔직한 고백을 놀라운 필력으로 펼쳐낸 이명희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를 선보인다. 《커피는 내게 숨이었다》는 엄마 되기의 극한을 경험한 사람이 오늘의 커피를 떠올리며 숨 쉴 구멍을 찾는 이야기이다. 바꿀 수도, 버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자신의 상황을 ‘커피’라는 일상적이고도 감각적인 음료와 연결해내는 시도가 독특하고 새롭다. 엄마 되기와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커피 한 모금에 담긴 단맛, 쓴맛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홀짝홀짝 넘어간다. 읽다 보면 단맛과 쓴맛은 모순되고 상충되는 맛이 아니라, 함께 있어 각각의 매력을 돋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쌉쌀한 “카페인 같은 문장”과 특유의 유머가 시종 나란한 저자의 글이 그렇듯이.
“일단 커피 한잔해”
숨 고를 시간이자 숨구멍이 되어 주었던
작은 음료에 관하여
“저는 지금 한 번 사는 인생 잘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는 게 아니에요. 더 활기차게 살려고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숨 한번 들이마시고 내려가려는 거예요. 다시 가라앉을 걸 알고도 잠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위해 열심히 발길질하는 거라고요.”
_〈프롤로그〉에서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곧장 중환자실로 옮겨져 이삼 주에 한 번씩 수술을 반복하며 7개월 반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 후 네 살 때 원인 불명의 뇌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되고 시력이 상실됐다. “아이를 위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와 병원비 결제뿐”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될 때마다 저자를 구한 건 커피였다. 커피는 “삶에 허락된 단 하나의 자유”였다. “일단 커피부터 한잔해” 속삭이며, 코드 블루가 울려 퍼지는 대학 병원에서 숨 고를 시간을,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한 마음에 숨구멍을 내주었다. 느닷없이 삶을 덮친 혼돈과 슬픔을 커피 한 모금에 깃든 환상과 배합하여 독자를 끌어당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는 내가 직전까지 어디서 무얼 하던 사람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그 산뜻한 장면 전환이 좋다. 내 앞에 놓인 고작 커피 한 잔이 나의 호흡을 한 템포 느리게 만들어 주는 것도, 뜨거운 김이 조금 식는 동안 숨 고를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좋다. 내가 있는 곳의 안과 밖 그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어도, 안과 밖 그 너머에서 내 삶을 잠시 관조할 수 있게 시간을 멈춰 주는 커피가, 나를 살렸다.”
_본문에서
“모든 간절함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언제까지고 아플 아이의 엄마”가 어떻게든 커피 한 잔의 시간을 확보하려는 분투가 생생하고도 긴장감 있게 펼쳐지는 이 에세이는 비단 저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망망대해 조난자처럼 가라앉지 않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시간을 겪어본(혹은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만히 고개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 여럿이다. “결국엔 무언가를 끌어안았고 끝내 흘려보냈거나 넘어선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 어떤 시간이 한 사람을, 혹은 한 사람이 어떤 시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이야기”들이 주는 감동을 모르지 않지만, 저자는 “기록되거나 증명될 수 없는” 이야기, “전달할 언어를 알지 못해 아직 입속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우는 사람이다.
“누군가 온몸으로 견뎌 낸 시절을 두고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잖아’라고 간단히 정리해 버리는 건 무례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모조리 써서 겨우 살아 있다. 남들이 보기엔 숨만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가라앉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로터리 킥을 하고 있다.”
_본문에서
그것이 아름답든 끔찍하든, 허무맹랑하든 가치 있든 그 덕에 누군가가 어느 시절을 살아냈다면, 그것은 사람 목숨을 살린 무엇이 된다. “고작 커피 한 잔”이 어떤 이에게는 문자 그대로 “목숨”이자 “구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볼 수 있었을 미래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재를 교차시키며 “모든 간절함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음을 뭉클하면서도 산뜻하게 납득시킨다. 에세이 읽기가 만들어내는 작은 경이가 저자의 날숨이 독자의 들숨이 되는 공명이라고 한다면, 이 한 사람의 간절한 이야기가 독자들 저마다 지닌 간절함을 애틋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