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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내게 숨이었다


  • ISBN-13
    979-11-5525-172-0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낮은산 / 낮은산
  • 정가
    16,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3-28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이명희
  • 번역
    -
  • 메인주제어
    인물, 소설이외의 산문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인물, 소설이외의 산문 #커피 #엄마 #장애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5 * 188 mm, 256 Page

책소개

“이 산뜻하고 쌉싸름한 맛은 뭐지?

잠든 정신을 일깨우는 카페인 같은 문장들이 찰랑인다.”

- 《해방의 밤》 은유 작가 추천!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 저자의 두 번째 에세이

엄마 되기의 극한을 경험한 사람이 

오늘의 커피를 떠올리며 숨 쉴 구멍을 찾는 이야기

 

“엄마, 커피, 인생은 닮았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다. 어떨 땐 내 입에 딱 맞지만, 당황스럽거나 화가 날 정도로 맛이 없을 때도 있다. 여러 맛들이 서로 충돌하고 어울리며 “한 가지 맛으로 정리되지 않는 복잡함의 풍미”가 특징이다. 커피는 엄마, 인생과 닮았다. 

첫 책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에서 중증 장애아 엄마로서 솔직한 고백을 놀라운 필력으로 펼쳐낸 이명희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를 선보인다. 《커피는 내게 숨이었다》는 엄마 되기의 극한을 경험한 사람이 오늘의 커피를 떠올리며 숨 쉴 구멍을 찾는 이야기이다. 바꿀 수도, 버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자신의 상황을 ‘커피’라는 일상적이고도 감각적인 음료와 연결해내는 시도가 독특하고 새롭다. 엄마 되기와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커피 한 모금에 담긴 단맛, 쓴맛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홀짝홀짝 넘어간다. 읽다 보면 단맛과 쓴맛은 모순되고 상충되는 맛이 아니라, 함께 있어 각각의 매력을 돋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쌉쌀한 “카페인 같은 문장”과 특유의 유머가 시종 나란한 저자의 글이 그렇듯이.

 

“일단 커피 한잔해”

숨 고를 시간이자 숨구멍이 되어 주었던 

작은 음료에 관하여

 

“저는 지금 한 번 사는 인생 잘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는 게 아니에요. 더 활기차게 살려고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숨 한번 들이마시고 내려가려는 거예요. 다시 가라앉을 걸 알고도 잠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위해 열심히 발길질하는 거라고요.” 

_〈프롤로그〉에서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곧장 중환자실로 옮겨져 이삼 주에 한 번씩 수술을 반복하며 7개월 반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 후 네 살 때 원인 불명의 뇌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되고 시력이 상실됐다. “아이를 위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와 병원비 결제뿐”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될 때마다 저자를 구한 건 커피였다. 커피는 “삶에 허락된 단 하나의 자유”였다. “일단 커피부터 한잔해” 속삭이며, 코드 블루가 울려 퍼지는 대학 병원에서 숨 고를 시간을,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한 마음에 숨구멍을 내주었다. 느닷없이 삶을 덮친 혼돈과 슬픔을 커피 한 모금에 깃든 환상과 배합하여 독자를 끌어당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는 내가 직전까지 어디서 무얼 하던 사람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그 산뜻한 장면 전환이 좋다. 내 앞에 놓인 고작 커피 한 잔이 나의 호흡을 한 템포 느리게 만들어 주는 것도, 뜨거운 김이 조금 식는 동안 숨 고를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좋다. 내가 있는 곳의 안과 밖 그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어도, 안과 밖 그 너머에서 내 삶을 잠시 관조할 수 있게 시간을 멈춰 주는 커피가, 나를 살렸다.” 

_본문에서

 

“모든 간절함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언제까지고 아플 아이의 엄마”가 어떻게든 커피 한 잔의 시간을 확보하려는 분투가 생생하고도 긴장감 있게 펼쳐지는 이 에세이는 비단 저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망망대해 조난자처럼 가라앉지 않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시간을 겪어본(혹은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만히 고개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 여럿이다. “결국엔 무언가를 끌어안았고 끝내 흘려보냈거나 넘어선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 어떤 시간이 한 사람을, 혹은 한 사람이 어떤 시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이야기”들이 주는 감동을 모르지 않지만, 저자는 “기록되거나 증명될 수 없는” 이야기, “전달할 언어를 알지 못해 아직 입속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우는 사람이다.

 

“누군가 온몸으로 견뎌 낸 시절을 두고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잖아’라고 간단히 정리해 버리는 건 무례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모조리 써서 겨우 살아 있다. 남들이 보기엔 숨만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가라앉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로터리 킥을 하고 있다.”

_본문에서

 

그것이 아름답든 끔찍하든, 허무맹랑하든 가치 있든 그 덕에 누군가가 어느 시절을 살아냈다면, 그것은 사람 목숨을 살린 무엇이 된다. “고작 커피 한 잔”이 어떤 이에게는 문자 그대로 “목숨”이자 “구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볼 수 있었을 미래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재를 교차시키며 “모든 간절함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음을 뭉클하면서도 산뜻하게 납득시킨다. 에세이 읽기가 만들어내는 작은 경이가 저자의 날숨이 독자의 들숨이 되는 공명이라고 한다면, 이 한 사람의 간절한 이야기가 독자들 저마다 지닌 간절함을 애틋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 그러지 말고 일단 커피부터 한잔해 

 

1부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고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섞이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무표정으로 카페에 들어가는 법

커피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객장의 자판기 밀크커피

저 카페가 나를 위해 문 열었을 리 없다 하여도 

 

2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도 그냥 살아 보는 마음

 

오늘도 환상을 마십니다

따뜻한 라테 한잔 마실 수 있기를

네가 그리울 때 나는 커피가 마시고 싶더라

목욕탕에서 나를 구해 준 삼각커피우유

 

번외: 커피 칸타타를 보고 편지를 띄웁니다

 

3부 나를 알아 가고, 너를 이해하며

 

오늘의 커피를 추천해 드립니다

수술 환자의 커피 레시피 

캔커피에 녹여 삼킨 그 시절의 불안

믹스커피계의 고수 

Turn, baby turn 

 

4부 모든 간절함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커피는 커피고, 녹차는 녹차

그런데 카페인이 문제였던 게 맞기는 맞습니까? 

오늘은 쉽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다만 나를 구하소서

 

번외 | 누구에게나 한 모금의 환상은 필요하다

 

에필로그 | 다음 진료일은

본문인용

그때 그 어른들이 쳐다보고 있던 벽은 어쩌면 하나의 신이었을까? 벽면 앞에 앉은 모두의 기분과 인생을, 그들의 돈과 그들의 욕심과 그들의 희망과 절망 같은 것들을, 그들의 삶과 죽음을 모두 손에 쥔 절대 권력자가 그 벽에 펼쳐져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계속 바뀌는 저 많은 숫자는 도대체 누가 결정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쳐다보고 있어도 나로서는 규칙을 읽어 낼 수 없던 숫자들의 빠른 들고남이 어지럽기만 했다. 너무 차갑고 너무 이상하고 너무도 재미없던 그 벽. 그러나 누군가는 그 벽 앞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두 손 모으고 침을 삼켰으리라.

인생에는 때로 그런 벽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건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나서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구원해 줄 환상의 벽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언제나. 어쩌면 언제까지나. 우리에겐 눈부신 벽 하나가 필요하다는 것을.

- 54쪽

 

의사는 뼈가 원래대로 붙지 않더라도 사는 데 무방할 거라는 소견을 슬쩍 흘렸다. 부러진 뼛조각이 너무 작아 다시 붙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뼛조각이 신경을 건드리거나 목숨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을 거라고도 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살아도 괜찮을 거라는 의사 말이 재밌게 들렸다.

좋은 삶이란 진단코드를 받거나 완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어 보는 것처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에 의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어떤 시간의 필요를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견뎌 내려는 마음만으로도 좋은 삶일지 몰랐다. 끝내 뼈가 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계속 깁스 신발을 신고 다녀 보는 마음. 그것이 진짜 중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_91쪽

 

어떤 말이든 앞에 ‘평범한’을 붙이면 그 말의 중심이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한다. 평범한 월 평균 수입, 평범한 성격이나 가치관,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평범한 방법, 평범한 주말 아침 메뉴를 떠올려 보라. 분명한 의미를 가진 단어 앞에 ‘평범한’을 붙였을 뿐인데 순식간에 하나 마나 한 아무 뜻도 없는 단어들이 된다.(여기서 ‘평범한’을 ‘당신의’로 바꾸면 말의 중심이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 오고 의미가 선명해지며 말이 형체를 띠기 시작한다.)

잘해야 얻게 되는 건 누군가의 허락, 어딘가로의 통과가 전부다. 즐거움이나 몰입과는 거리가 멀고 닿을 수 있는 최고 지점에 ‘안도감 확보’ 정도가 있을 뿐인 애처로운 단어. 그러니 평범함이란 얼마나 닿기 불가능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란 말인가. _109쪽

 

어떤 물은 아주 차갑고 어떤 물은 너무 뜨겁다는 사실은 어찌나 우리의 삶과 닮았는지. 이보다 더 느긋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릿느릿 얼굴에 뭔가를 찍어 바르고 있는 사람들과 옷의 일부만 걸친 채 평상에 앉아 TV 속 노래 자랑 무대를 보거나 갑자기 일어서서 귀지를 파는 사람들이 있던 곳. 웃고 싶어 온 사람들과 울고 싶지 않아 온 사람들이 맨살로 스쳐 가고 있다. 나는 커피우유를 두 손에 꼭 쥐고 포장 용기를 살살 눌러 가며 엄마를 기다린다. _116쪽

 

아이 곁에 빠르게 다가온 의료진들이 이런저런 장치들을 아이 몸에 서둘러 연결하고 아이의 인큐베이터는 제가 있던 자리에 다시 놓인다. 그 장면을 멀찍이 복도에서 보고 있으면 아이의 집은 저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저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럴 때 실감했다. 

그런 날엔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 연세대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시고 나면 가슴 한쪽에 이십 분씩, 양쪽 가슴을 번갈아 손에 쥐고 유축한 모유를 두세 번쯤 버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바닐라라테를 기어이 한 잔 사 마셨다. 그러면 조금 전 아이 주치의에게 들었던 이야기 같은 것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_135쪽

 

실로 많은 날들 나를 지켜 주었던 커피였다. 내 안에서 폭발하고 있는 ‘미충족된 인생 통제 욕구’를 어딘가에 풀려고 할 때마다 커피가 나를 설득했다. 가까이 있는 누군가 혹은 멀리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들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면서 나의 존재를, 나의 가치를, 나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는 그 지독한 자기애와 유아적 전능감 모두를 그 작은 커피 한 잔이 끌어안아 주곤 했다. _204쪽

 

단 하루 만에 내게 일어날 수 있을 일들의 스케일이 나를 겁준다. 아주 작고 사소해 보였던 선택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틀었음을 깨닫게 될 순간이 두렵다. 단 몇 분만의 발작으로도 사람은 사지가 마비되고 눈이 멀 수 있다는 사실이, 한순간에 사람이 죽거나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커피 한 잔 손에 쥐고 있으려던 나의 집요함은 ‘그럼에도 살기로 선택한 이가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_234쪽

 

서평

책장을 열기 전, 아주 뜨거운 커피를 한 잔 앞에 둔 기분이었다. 원인 불명의 뇌손상으로 사지마비와 시력 상실 진단을 받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커피에서 숨 쉴 구멍을 찾는 이야기다. 선뜻 마시지 못하는 내게 프롤로그는 얼음 한 알 같았다. 입천장을 데지 않고 첫 모금을 넘기는 데 성공. 이 산뜻하고 쌉싸름한 맛은 뭐지? 본문은 홀짝홀짝 잘도 넘어간다. 잠든 정신을 일깨우는 카페인 같은 문장들이 찰랑인다. ‘언제까지고 아플 아이의 엄마’라는 엄마 되기의 극한을 견뎌 낸 경험의 무게가 실린 언어는 묵직하고, 오늘의 커피를 떠올리며 살아 있기로 결심한 사람의 순정은 향기롭다. 심리학 전공자의 예리함은 끝맛의 여운을 끌어올린다. 에필로그를 덮고 나니 바닥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잘 마셨구나 싶어 흡족하다.

나는 이 책에서 좋은 커피가 주는 여러 맛의 충돌과 조화를 경험했다. 엄마, 커피, 인생은 닮았다. 한 가지 맛으로 정리되지 않는 복잡함의 풍미를 살려 낸 글이 나를 어루만졌듯이 당신의 숨 가쁜 하루도 ‘잠시 머물 수 있는 괜찮은 세계’로 데려갈 것이다.

_ 은유 • 르포 작가, 《해방의 밤》 저자

 

저자소개

저자 : 이명희
매일을 커피, 수영, 머리숱 진짜 많은 뇌성마비 열두 살 아들과 함께한다.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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