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책에는 그동안 영적 진실을 향해 탐구하며 살아온 나의 모든 경험과 수행의 결과물이 들어있다. 심리를 상담하며 썼던 『나를 꽃피우는 치유심리학』이란 책은 대상의식의 단계에서 아상의식의 단계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치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차크라를 통한 치유에서 깨달음까지』라는 책에서는 차크라라는 에너지 센터를 중심으로 인간의 몸과 에너지, 감정과 심리를 함께 통합해 아상의식에서 법상의식으로 넘어가고자 시도했다. 그리고 이 책은 심리를 치유하면서 느낀 점과 명상을 지도하면서 알게 된 인간 의식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모두 통합해서 4가지 상相으로 정리한 것이다.
‘법칙’이란 누구에게나 통해야 한다. 제목에 들어있는 “4가지 상相의 법칙”에서‘법칙’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4가지 상相에 관한 내용이 명상을 공부하는 사람이건, 심리를 탐구하는 사람이건, 일반인이건, 누구에게나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칙의 내용은 인간 생활의 사소한 것에서 크게는 사회와 국가를 보는 관점과 삶의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통용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책 속으로]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불법을 구하러 가는 도중에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쳐 잠에 빠졌다.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옆에 있는 물을 마셨는데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잠을 잔 공간이 무덤 속이었고,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임을 보았다. 그때 그는 갑자기 속이 뒤틀리면서 구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면에서 ‘어제 잠결에 마실 때는 그렇게 달콤했던 물이 지금은 왜 구역질이 나도록 역겨운가?’라는 의문이 솟아났다. 그리고 원효는 외부에 있는 어떤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황이든 그것은 항상 변함없이 있는 그대로인데, 다만 현재의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국이 지옥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천국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깨달음을 “마음이 일어나니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온갖 법이 사라진다.”라고 표현했다. -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 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
원효의 이야기는 현실을 해석하는 개인의 관점과 태도를 다루는 심리학과도 연관된다. 심리 치유의 핵심은 자기 삶의 경험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받아들임이다. 심리 치유에서 상처받은 과거를 치유한다는 것은 상처받은 과거의 경험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과거를 되돌리거나, 이미 있었던 사건을 없앨 수는 없다. 치유는 현재의 순간에 서서 성숙한 의식으로 그때의 상처받은 상황과 사건을 새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연금술’이다.
-p. 26~27, 1부 ‘1. 세상은 의식이 해석한 자기투영이다’ 중에서
인간은 각자의 의식 수준에 따라 삶을 해석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의식 수준이 다르면 같은 것을 보더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낮은 의식에서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높은 의식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높은 의식에서는 낮은 의식이 지닌 패턴과 문제가 너무도 환히 잘 보이지만, 낮은 의식에서는 높은 의식이 지닌 문제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대상의식을 사는 사람에게 아상의 세계는 아직 그들의 의식 내면에 들어오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자 무의식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아상에 사는 사람에게 법상의 세계는 신비롭고 놀라운 이상적인 세계처럼 보인다. 그리고 대상의식에서 보는 공상의식의 세계는 상상조차 안 되는 세계이기도 하다.
〈신의 한 수數〉라는 영화에서 안성기는 “고수에게 세상은 놀이터와 같다. 하지만 하수에게 세상은 생지옥이다.”라는 대사를 했다. 어떤 분야에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하수가 보는 세계와 고수가 보는 세계는 해석의 깊이와 높이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p. 52~53, 2부 ‘3. 4가지 상을 의식의 단계에 따라 수치화하다’ 중에서
선가禪家에서 선사들은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무無’ 또는 ‘공空’을 말한다. 하지만 대답으로 주어지는 무無나 공空은 내가 없다거나 세상이 공空이라는 말이 아니다. 나와 세상은 있지만 단지 무無나 공空의 형식과 이론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의식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존재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식 안에서 해석되고 설명된 것이다. 공空이란 원래 현실 세계에서는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空의 형식 또는 공空의 모양이라는 뜻으로 공상空相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공공空空이라고도 한다.
대상, 아상, 법상, 공상도 사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분별이 만든 형상이다. 그리고 성장과 수준으로 나눈 것도 의식의 분별이며, 체험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의식의 분별이고, 고통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고통 없는 세상까지도 의식의 분별이다. 나라는 의식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모두 빠지고 나면 원래 있던 순수의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하지만 의식이 일으키는 분별을 내리려는 의도를 가지면 그것이 바로 분별이 된다. 그래서 나라는 의식으로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의식을 4가지 상相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고, 높이와 넓이를 나누지만 모든 것은 텅 빈 허공의 의식에서 일어난 허상일 뿐이다. 의식이 멈춰지면 오감의 느낌만이 진동한다. 오감은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에 반응한다. 그것을 분별하고 해석하는 의식이 없으면 반응은 연속되지 않고 오직 순간만이 존재한다.
-p. 102, 3부 ‘4. 공상의식’ 중에서
공상의식의 수준이 물이 가득 찬 바다와 같다면, 법상의식은 바다로 흘러가는 강의 흐름과 같다. 그리고 아상의식은 커다란 저수지에 담겨 조금씩 흐르는 물이며, 대상의식은 작은 웅덩이에 갇혀서 말라가거나 썩어가는 물과 같다. 의식의 차이가 흐름의 차이를 나타낸다.
도덕경 8장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이다. 법은 물처럼 세상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흐름이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도로 위의 차들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누군가가 법규를 어길 때 사고가 일어나서 도로의 흐름은 끊어진다. 인간이 만든 법이든 자연에서 발견된 법이든 법을 따르는 것이 진리에 접근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이다. 법칙에 어긋난 자기중심적인 주장이나 법칙을 위반하는 불법적인 행위들이 행복과 자유를 막는 장애들이다.
인간에게 삶은 의식성장을 위한 기회의 장이다. 의식을 성장시키려면 자신의 의식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개인의 심리적 고통은 의식의 수준이 낮을수록 무겁고 많아진다. 인생의 짐은 누가 얹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인생의 십자가는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고 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수는 없다. 인생의 카르마는 스스로 선택한 결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p. 281, 10부 ‘4. 공상의식에서 다시 현실의 삶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