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컴컴한 밤, 누군가의 삶과 영혼을 구하는 영웅이라 나 스스로를 묘사하고 있었지만 그건 허상이었다. 진실은 인간성의 가장자리를 따라 기어 다니다가 고통을 마주할 때 눈을 감아버린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유일하고 비겁한 방법이었다. 나는 고통을 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살아남거나 살아지거나.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믿는 것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157쪽
제트는 베일에 싸인 사람이었다. 이름이나 그가 가구를 만든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의 배경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폭력성이라든가 닐라에 숨어 사는 이유, 또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몰랐다. 만약 제트가 살인마고 이브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다면… 그래, 마지막 게임이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163쪽
차를 몰고 앞으로 나아가는 플로라의 얼굴에 조명이 비췄다. 축축이 젖은 뺨에 내려앉은 수많은 반짝임이 산산이 부서졌다. 두려움의 산물이었다. 그녀를 공포심에 떨게 만든 대상은 누구였을까?
-170쪽
이곳 닐라에서 나는 편집증에 걸린 걸까? 살인은 그냥 우연일 뿐이고 빨간 집은 미워했던 딸을 위한 작은 선물이며, 관리인을 둔 것도 처음 3년 동안 집을 잘 관리하려던 순수한 의도였을까?
-203쪽
“그럼 그동안 전 어떻게 해야 하죠?”
“문단속 잘하시고요.”
그는 고개를 돌려 고속도로와 그 너머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에요.”
그는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친절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가 덧붙였다.
“이곳에서 떠나는 게 최선입니다.”
-215쪽
“사람들을 체포하긴 했었죠. 1997년 후반에 남자 두 명을요. 경찰은 그들이 여자애들 몇 명을 살해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난 그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걸 알아요.”
그가 시계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만 가야겠어요. 옛날이야기고 이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제가 신경을 쓰잖아요.”
-224쪽
밖에서 또 한번 ‘쾅’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숨을 헐떡이며 긴긴밤의 첫 번째 악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 빨간 작은 집은 버몬트 저택의 지하에 묻힌 방이 되었고, 리사와 나는 지하실에 갇혀 버렸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우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핏빛 손자국이 벽을 따라 줄줄이 이어졌다. 숨도 쉴 수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산 채로 묻혀 있었다.
-339쪽
“켈시가 여기 있긴 한 거예요?”
“여기 있어요. 내 딸들하고 같이.”
이브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두려움을 버리고 분노를 활용해야 할 때였다. 리암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이브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해 준 유용한 조언 한 가지는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먹고 산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지 말아라. 괴물에게 먹이를 주면 안 돼.’ 결코 카일에게 두려움이라는 먹이를 주지 않을 것이었다.
-499쪽
“그걸로 날 쏘진 않을 거야. 날 사랑하잖아."
-5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