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책을 쓰면서 아이의 사춘기를 겪었고, 그 사춘기가 단지 서로에게 고통만 주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귀한 기회를 제공함을 알았다. 초보 작가가 쓴 첫 책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를 10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사랑해주신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현 시대에 맞게 수정 및 보완한 새로운 사춘기 이야기로 비폭력대화를 풀어보고자 한다. _5쪽
자녀가 원할 때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그들이 원하는 만큼 사랑과 지원을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춘기에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과 화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성숙하게 자신을 돌보며 성장하게 되니까요.
이때 비폭력대화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게 해줍니다. 내가 얼마나 부모로서 힘들고 마음 아픈지, 아이에게 무엇을 원하기에 이렇게 가슴이 아리고 먹먹한지, 그동안 최선을 다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비폭력대화를 통해 나의 이런 느낌과 욕구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폭력으로 자녀에게 다가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의 느낌과 욕구를 헤아리면서 내 아이가 얼마나 건강하고 소중한지 다시 확인하는 귀한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_30-31쪽
비폭력대화의 첫 번째 목적은 질적인 유대 관계입니다. 질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해 유대를 깊게 하려는 것이지요. 서로 연결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폭력적으로 대화할 리가 없겠지요.
두 번째 목적은 상호 만족입니다. 자신의 욕구와 상대의 욕구를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양쪽이 다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비폭력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해 희생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양쪽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_38쪽
우리는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잃지 않기 위해서 따뜻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폭력대화에서는 기린을 평화, 비폭력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비폭력대화 자체를 기린의 언어(giraffe language)라고도 부릅니다.
자칼은 육식동물이지요? 키는 60~70센티미터로 작은 편인데, 사냥을 하지 않고 죽은 시체의 썩은 고기만 찾아다닌다고 해서 청소부라고도 부릅니다. 이집트에서는 죽음의 신을 상징해, 미라를 담은 관 겉면에 자칼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새끼를 낳으면 버려서 단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비폭력대화에서는 폭력 언어를 자칼의 언어(jackal language)라 말하고, 지배 체제를 자칼사회라고 표현합니다. _41-42쪽
어제, 시어른들이 오셔서 냉면을 만들어 먹었어요. 다 먹고 나자 소담이가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옮기더라고요. 그런데 대자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냉면 국물을 다 쏟았지 뭐예요. 고개를 들어 흘끗 제 눈치를 살피는데, 그때 마침 ‘기린’이 기억났어요. 그래서 평가하지 않고 관찰로 이렇게 얘기했지요.
“놀랐어? 어디, 우리 소담이 안 다쳤니? 국물이 쏟아졌네. 소담이가 엄마 도와주려고 그랬구나. 속상하겠다.”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 하며 엉엉 울더라고요. 소담이를 안아주니 괜스레 저도 눈물이 났어요. 연결이라는 것, 소통이라는 것이 뭔지 알 듯해요.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기뻤어요. _85쪽
아이가 엄마와 성적표를 놓고 대화를 나누다가 공부 잘하는 사촌과 비교하는 말에 자극받아 “에이, 씨” 하며 방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고 가정해보세요. 아이의 반응에 기분이 나빠진 엄마가 바로 쫓아가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야?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너, 조금 컸다고 엄마 무시하는 거야?”라며 흥분해서 얘기한다면, 아이가 엄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전두엽이 덜 발달해 상황 판단이 서툴고, 호르몬의 분비로 지극히 감정적인 사춘기 자녀는 오히려 엄마의 반응에 더 거칠게 대항하기 쉽습니다.
그 상황을 비폭력대화의 두 요소인 관찰과 느낌으로 표현한다면, “엄마랑 얘기하다가 화를 내면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니, 엄마는 당황스럽고 슬퍼”가 되겠지요.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문을 쾅 닫은 행동이 엄마를 당황스럽고 슬프게 했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_105-106쪽
비폭력대화의 네 번째 요소는 부탁입니다. 비폭력대화를 만든 마셜 로젠버그는 단순히 ‘부탁’이라 하지 않고 항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부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원하는 바를 부탁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민혁이 엄마는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에 가족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부탁을 하지 않았지요? 알아서 움직여주겠거니, 막연히 바랐어요. 그러다 원하는 만큼 협력하지 않으니까 맨 처음에는 서운하다가 여러 가지 판단과 생각이 더해져서 서글퍼지고 화가 났을 것 같아요.
우리는 함께 산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는 이유로, 또는 친하다는 이유로 상대가 내 맘을 알아서 꿰뚫어보고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면 서로 불행해지기 쉽답니다. _162쪽
비폭력대화에서 힘은 ‘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힘’과 ‘처벌을 위해 사용하는 힘’으로 나뉩니다.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녀를 처벌하기 위한 것인지는 힘을 사용하는 부모의 의도를 살펴보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엄마가 지나가다가 친구 자전거 뒷자리에 선 채로 올라타서 속도감을 즐기는 아이를 보고서 위험을 느껴 내려오게 했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를 위한 힘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이 있니, 없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뇌진탕이라도 오면 어쩔 거냐?”와 같은 비난으로 야단을 치거나 쥐어박는다면, 그것은 처벌을 위한 힘을 사용한 것입니다. _297쪽
마지막 날 수업 주제는 ‘감사’였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아이들을 조종하기 위해 감사와 칭찬의 표현을 사용한 적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컨대 “1등을 하다니 대단한데! 자랑스러워.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하기다”라거나, “넌 정말 예쁜 딸이야. 어쩌면 이렇게 엄마 마음을 잘 헤아려줄까?”와 같은 칭찬은 계속 공부를 잘하고 앞으로도 엄마 편이 되라는 의도를 가진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1등을 하지 못하면 자랑스럽지 않고, 엄마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으면 예쁘지 않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_3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