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앵무새의 벌거벗은 날개,
거울처럼 당신을 비추는 이야기
오늘의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뭉클한 인사를 만나다
‘말’에 벌거벗긴 새
나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새입니다. 몸에 남아 있는 깃털이라곤 한 오라기도 없는, 벌거벗은 새입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정신을 놓고 하나하나 부리로 깃털을 뽑아 없애다 보면, 어느새 주변은 새하얀 깃털로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냐고요?
시작은 아이들의 말을 따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앵무새거든요.
‘꺼져, 바보, 멍청이, 못생겼어.’
나를 향해 쏟아내는 아이들의 말을 따라 내가 ‘바보’라고 하면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웃는 것이 좋았고 그래서 더 자주 그들에게서 배운 말을 해 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방에 갇혀 혼자가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벌거벗은 새였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그런가요?
혼자 남겨졌을 때, 문밖에서 사람들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면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어._본문 8쪽
사랑과 돌봄이 이루는 몸
그런 나는 동물병원에 버려졌습니다. 버려진 나에게 ‘할미’가 천사처럼 날아들 때까지는요. ‘할미’는 아끼던 강아지 치치를 떠나보내고 텅 빈 가슴에, 꽉 찬 온기를 두 손에 쥐고서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곤 두 손을 활짝 펼쳐 잊혀졌던 내 이름을 부르며 환하게 웃어 줬지요.
“구름아.”
한동안 불리지 않았던 이름이었습니다. 할미는 벌거벗은 나에게 옷을 지어 만들어 입혀 주고,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나와 함께 산책을 했습니다. ‘함께’ 같은 것, ‘돌봄’ 같은 것, ‘사랑’ 같은 것··· 그와 같은 단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나는 할미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그와 같은 단어에선 어떤 냄새가 나는지, 어떤 모양인지, 어떤 온기를 지녔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냄새와 모양과 온기를 피부로 느끼는 몸은 더 이상, 벌거벗은 몸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몸은 천천히, 나의 이름답게 다시 구름처럼 풍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미는 나에게 늘 말하곤 했습니다.
“안녕, 내 사랑. 아름다운 나의 천사.”
할머니는 곧장 내게로 다가왔고, 내 이름을 부르며 환히 웃었어._본문 24쪽
나는 당신을 거울처럼 비춥니다
앵무새 구름이는 사람들의 말을 그림자처럼 따라 말합니다. 나쁜 말, 좋은 말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모든 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비단 앵무새만이 그럴까요?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란 존재는 서로가 서로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존재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여과 없이 투명한 존재가 있다면, 바로 아이들과 동물들이겠지요. 투명한 호수 같은 존재인 아이들은 말과 단어들을, 그 표면의 생김과 너머의 함의를 그대로 학습해 냅니다. ‘말’이 담겨 이루는 세상, ‘말’이 담아 이루는 세상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구름이가 주변으로부터 거울처럼 반영하고 제 몸처럼 여기는 말의 조각들을 통해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 안에는 무시무시한 파괴력도, 또 그를 넘어설 만큼 강력한 생명력도 있다는 것을요. 한번 뱉어내기엔 너무도 쉬운 것이 ‘말’이지만, 뱉어낸 말이 상대에게 끼친 영향력은 결코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 앞에 마주 선 이에게 어떤 말을 전했나요? 당신의 입술로부터, 상대방의 가슴에 가 닿은 그 말은 그이의 하루에 어떤 모양의 지문을 남겼을까요?
“안녕, 내 사랑. 아름다운 나의 천사.”
이 말을 들을 때면 마음속 깊은 곳이 따뜻해져. 꼬맹이들한테 배운 말을 다 까먹을 정도로 말이야._본문 32쪽
사랑, 자유를 향한 날갯짓의 다른 이름
또 하나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사랑을 향하여 스스로를 해방시킨 구름이의 날갯짓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닥친 일련의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날개를 펼치긴커녕 그 날갯죽지를 이루는 깃털 하나하나까지 모두 뽑아버릴 만큼 커다란 고통과 외로움을 감내해야 했던 구름이가, 사랑으로 자신을 돌봐 주었던 할미를 향해 날개를 펼칠 때 우리는 자유에 그 뿌리를 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임을 기억하게 됩니다. 구름이를 마치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휘두르고 내팽개쳤던 가족과는 달리, 할미는 구름이의 주체성을 이해하고 그를 있는 그대로 보아 주는 사람, 벌거벗은 속을 애틋한 시선으로 보아 주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 없는 자유는 자유일 수 없고, 자유 없는 사랑은 사랑일 수 없습니다. 사랑과 자유가 한 몸으로 결합된 인연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를 향하여 힘껏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설사 그 날개가 깃털 한 오라기 남아 있지 않은 벌거벗은 날개라 하여도 말이지요. 그토록 사랑스러운 자유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깃털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날개라 하여도 그런 우리의 등을 밀어줄 축복 같은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할미는 나를 반가워할까? 나를 다시 받아 줄까?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두렵기도 했지만 난 할미를 찾아가야 했어._본문 44쪽
마주한 눈동자 안에 피어나는 햇살
『안녕, 내 사랑!』은 학대받고 버려진 앵무새 ‘구름이’가 ‘할미’의 사랑으로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를 사랑으로 호명하는 일, 사랑으로 호명되는 일이 이룰 수 있는 기적에 대한 뭉클한 서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가슴에 품게 되는 가장 커다란 선물은, 바로 내 앞의 당신을, 내 앞의 세상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시선입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어쩌면 바로 그와 같은 눈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는 누군가의 눈동자 안에서 우리는 환한 햇살처럼 거듭 태어납니다. 그리고 반대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먼저 사랑스럽게 보아 줄 수 있다면, 그 역시도 내 눈에 비친 그 자신의 모습을 전에 없던 새로운 감각으로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통하여, 서로를 통하여 언제고 거듭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눈길은, 그 눈길 닿는 자리마다 새로운 이름의 꽃을 피워낼 만큼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은 상실의 아픔까지 다 받아낼 만큼 품이 큰 것이어서, 살아가다 몇 번쯤 얼마나 깊고 어둔 동굴에 내팽개쳐지더라도 우리는 언제고 다시 저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의 눈길, 그 바다보다 깊고 너른 품 안에서라면 말이지요.
“구름이. 참 예쁜 이름이네.”
할머니가 환히 웃었어. 순간 내 마음이 몽글해졌지._본문 21쪽
안녕! 오늘도, 내일도 안녕!
“안녕”이라는 말에는 중의적인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함’, 둘째는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말’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안녕을 이야기합니다. 나를 상처입히고 무너뜨렸던 관계에는 작별의 ‘안녕’을, 나로 하여금 언제고 새로운 숨이 깃드는 자리로 이끌었던 인연에는 만남의 ‘안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이 두 번의 안녕 모두에 필요한 커다란 용기와 사랑에 대하여, 윤성은 작가는 깃털만치 나풀거리는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속삭임은 전작 『아들의 여름』을 통해 색채의 마술을 보여 준 김근아 작가의 그림을 만나, 쉬이 가시지 않는 짙은 농도로 우리의 마음 안에 지문을 남깁니다. 사랑으로 부르고 불리우는 목소리가 이만큼이나 선연하다는 것을, 우리는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래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일, 모레, 그리고 기약할 수 없는 언젠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새로 또 다시 만나게 될 숱한 얼굴들··· 그 얼굴이 거울처럼 반영하게 될 ‘사랑스러운’ 눈길 속에서, 우리는 언제고 다시 사랑이라는 호명이 어떤 색과 온기를 지녔었는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 앞의 당신에게, 몇 번이고 다시, 만남의 인사를 전할 수 있겠지요.
“안녕, 내 사랑!”
나는 할미에게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어.
“안녕, 내 사랑! 아름다운 나의 천사!”_본문 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