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의 역작 〈몽유도원도〉, 그 뒤에 가려진 존재 ‘안평대군’
조선의 많은 화가들 중 안견의 이름이 21세기까지 진하게 남는 것은 단순히 그의 실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종부터 세조 집권기까지 활동하며 네 명의 왕조를 살아낸 안견. 그의 짧지 않았으리라 짐작되는 생애와 명성에 비해, 그의 공식적인 이름을 달고 지금까지 현존하는 작품은 두세 점뿐이다. 〈몽유도원도〉는 그 중 가장 압도적인 작품이자, 그의 역작이다. 비단 바탕에 일 미터가 넘는 크기, 꿈속의 장면을 완벽히 구현해냈다는 평을 받는 〈몽유도원도〉는 현재 한반도가 아닌 바다 건너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몹시도 환상적이라 눈을 떠도, 다시 감아도 선명히 떠오를 정도로 완벽했다던 그 도원의 꿈. 그 꿈을 그려낸 안견과 〈몽유도원도〉 뒤로는 가려진 이름, 안평대군이 있다.
세종의 아들, 단종의 숙부, 세조의 동생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된 꿈의 주인, 안평대군. 우리에게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의 모티프를 제공한 존재이자 세종의 셋째 아들, 단종의 숙부, 세조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학문과 예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예술가이자 그들의 후원자였고, 세조의 야심에 의해 희생된 불운한 왕자로 알려진 안평대군. 어느 날 그가 몹시도 선명한 도원의 꿈을 꾸었고, 이를 새겨내기 위해 평소 가까이 지내며 후원했던 안견에게 그 정취를 그리게 했다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몽유도원도〉의 탄생비화이다. 그렇게 탄생한 〈몽유도원도〉를 아끼고 아꼈다는 안평대군의 남겨진 행적은 서예 작품 몇 개와 세조에 의해 사사(賜死)당했다는 문장이 전부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 그 너머의 지점을 상상하다
어째서 〈몽유도원도〉는 한반도가 아닌 일본에 있는가? 소설의 문을 여는 질문이다. 안견이 그리고 안평대군이 사랑한 그림이 역사의 풍랑에 휩쓸리다가 일본의 바다에 닿은 것인가? 안견이 그렇게 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이 땅에 안견의 작품 하나 남지 않았다는 것에 의문을 품은 ‘상재’는 〈몽유도원도〉의 행적을 좇고, 그 과정에서 그의 시선은 그림 뒤에 있었던 안평대군에게 머물게 된다.
성군이라 칭송받는 아버지 세종의 셋째 대군. 하나여도 좋을 왕자가 대군으로만 여덟이었다. 그 중 셋째의 운명을 타고난 안평대군은 날 때부터 왕좌 근처로는 시선을 돌릴 수 없음을 알았다. 그 운명을 깨닫고 지은 그의 당호, 안평. 평안하게 사는 것만을 바라기엔 그에게는 재주도, 능력도, 따르는 사람도 너무나 많았다.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사는 안평대군의 눈과 입을 통해 바라보는 조선 초기는 가벼운 평화 속 쉴 새 없는 암투와 풍랑의 연속이었다. 그 소용돌이로부터 한 발짝, 한 발짝 더 멀어지기 위해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당호같은 삶에 몰두한다. 그렇게 가진 〈몽유도원도〉. 비록 이를 그려준 안견과는 멀어졌지만, 그에게는 그의 어떤 것보다 소중했던 그림이 남았다. 그 그림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다 안평대군은 한 가지 결심을 한다. 그림 안에만 있던 자신의 도원을 현실에 완성하기로.
꿈같은 비극, 꿈보다 큰 환상, ‘꿈’에 대하여
모든 것이 안평대군의 꿈만 같으면 좋으련만, 그가 꿈속의 도원을 좇고 있는 동안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자들은 다른 꿈을 좇기 시작했다. 어린 왕 단종과 김종서,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꿈을 품었던 수양대군과 그를 알아챈 한명회 등 역사 속의 인물들이 가벼운 행복 같은 〈몽유도원도〉 막하에서 누군가는 방향을 돌려 다른 쪽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향한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몽유도원도〉가 덮어준 하늘 아래에서 선택을 마친 모두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안평대군은 그의 ‘몽유도원’을 향해 그저 날아오를 뿐이었다.
〈몽유도원도〉를 가지게 된 안평대군과 그의 주변, 그리고 그를 좇는 현대의 ‘상재’. 각자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배경으로 자리하는 꿈속의 꿈 〈몽유도원도〉. 그 중심에서 흩어지지 않는 가장 단단한 ‘꿈’. 눈을 감고 꾸는 꿈조차 꿀 여유가 없는 21세기에 『몽유도원』이 보여줄 세계는 꿈같은 비극, 꿈보다 더 큰 환상, ‘꿈’과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