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에 널리 퍼진 잘못된 학습관을 바로잡기 위해
인지과학의 눈으로 살펴본 교육과 학습의 실태
학습에는 의식보다 무의식적 메커니즘이 훨씬 강하게 작동한다.
‘능력’은 허구이며, 인식과 사고력은 불안정한 대상이다.
실패를 포함한 경험 없이는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학습과정에서 나타나는 흔들림은 변화의 과정이다.
지식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창발’하는 것이다.
제약과 편견이 번뜩임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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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인지과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40년 가까이 사고·학습과 관련해 ‘창발’과정의 연구에 주력하면서 편견, 편향, 착각, 오해, 선입관, 고정관념, 무의식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스즈키 히로아키의 핵심 이론이 담긴 교육의 나침반!
◆ 잘못된 학습관과 교육이 미래 세대를 망치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의미하게 느껴진 지 오래다. 학생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지나친 체벌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 학생의 권리를 법적으로 마련해주고 나니 이제는 끝없이 추락하는 교권을 걱정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학생에게 욕설을 듣거나 심지어 맞는 교사, 학부모에게 고소를 당하는 교사의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구절벽과 국가의 소멸을 걱정해야 할 만큼 전 세계 출생률 꼴찌를 달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과연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일부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명문대 진학을 위한 준비를 시키는 작금의 현실을 누군들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극심한 경쟁 위주의 잘못된 사회적 풍토가 빚어낸 비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 이를 타파하고 개선할 길은 있는 것일까? 당연히 교육 시스템만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전국의 학생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적나라하게 줄 세우고 사지선다형의 단순한 출제유형이 문제라고 지적되어 학력고사를 수능으로 바꿨지만, 학생들의 상황이 과연 더 나아졌을까? 아니다. 해마다 수능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사교육에 허리가 휘는 부모들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며, 부의 불평등만큼이나 사교육의 불평등도 커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일까?
스즈키 히로아키는 우리나라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 문부성의 교육정책을 매우 강하게 비판한다. 그 비판의 핵심은 교육정책 관계자들이 교육과 학습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어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며, 그 결과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공장에서 제품을 양산하듯 창의성 없는 학생들을 배출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과연 얼마나 다를까?
저자는 40년 가까이 ‘지식과 학습의 전이’(교육)를 연구하며 의식보다 무의식과 (자기 신체를 포함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오랫동안 자신의 주장을 펼쳐왔다. 그 주장의 핵심은 ‘고정관념과 선입관의 타파’, ‘무의식에 대한 이해’, ‘창발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다. 한마디로 ‘인지적 변화’(지식과 학습)를 둘러싼 무의식적 메커니즘을 깨닫고 ‘창발’을 통해 고정관념과 선입관 등을 극복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과는 다르며,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지적 처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창발’은 학생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 혹은 시스템을 일컫는다. 암기 위주의 단답형 학습, 주관식이나 논술이라 해도 자신만의 논리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교사나 강사 등의 어른이 만들어놓은 샘플을 따라가기 바쁜 점수 획득용 학습이 대세인 오늘날의 환경에서 과연 저자가 말하는 학습이나 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불합리한 이런 환경을 언제까지 미래 세대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학부모-교사-정책 담당자들 모두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과 과감한 정책 전환이 시급한 때다.
◆ 우리는 능력, 지식, 발달, 학습, 교육 등에 대해 그릇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저자는 대다수의 사람이 ‘학습’이라고 하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고정되고 시야가 좁은 도식, 즉 정해진 답을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들이 배우는 과정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어서 사람에게 일어나는 변화 전반을 의미하는 ‘인지적 변화’라는 용어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그리고 이 인지적 변화에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실험 결과를 소개하며 설명해나간다. 마지막으로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용어로 ‘창발創發’이 등장하는데, 이는 ‘중추의 명령에 의하지 않는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이 쌓여 형성된 특이한 시스템’, 다시 말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이렇게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는 인지적 변화, 무의식적 메커니즘, 창발, 이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창발에 중요한 세 가지 조건으로 “다양한 요소가 존재할 것, 그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흔들림[動搖]이 발생할 것, 그 상호작용 방식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을 꼽는다.
저자는 이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살펴보기 전에 그동안 단단히 잘못 자리 잡은 ‘능력관’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흔히 능력이라고 하면 ‘어떤 지적인 행위의 원동력이나 원인’을 떠올리기 마련이며, 능력은 힘[力]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한 은유에 바탕을 두고 있고, 힘은 개체에 내재하고 상황과 관계없이 안정되게 작용한다는 이미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인간의 인지 작용은 실제로 주어진 상황이나 문맥에 크게 의존하므로 ‘능력’이라는 말은 그 이미지와는 달리 전혀 내재성과 안정성, 차별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허구’나 다름없다고 꼬집는다. ‘스킬’과 마찬가지로 ‘능력’도 직접적으로는 관찰할 수 없다는 뜻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사고‘력’, 응용‘력’, 관찰‘력’, 표현‘력’ 등등의 숱한 ‘능력’을 키운다며 헛수고를 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지식’에 대해서도 그릇된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한다. 인지과학을 포함해 지금까지 지식을 물건처럼, 즉 실체가 있는 것으로 이해해온 긴 역사가 있으며, 이런 접근방법은 결국 실패했다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지식은 여러 가지 감각의 경합과 협조에 따른 다감각 시뮬레이션이라는 것, 또한 인지 활동이 환경이나 상황의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은 지식이 물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만들어지는 것, 즉 창발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저자는 지식에 대한 이와 같은 창발적 견해를 ‘사건적コト的 지식관’(경험적 지식관)이라는 독특한 용어로 명명한다.
저자는 ‘번뜩임’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해 설명한다. 누구나 번뜩임을 얻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으며, 실제로 많은 제약과 편견이 번뜩임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번뜩임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 신체를 움직이는 행위를 통해 환경에 작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행위를 통해 환경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이 우리의 내부 상태를 변화시켜 결국 번뜩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역설한다. 그리고 인지 활동 외에 몸을 많이 써서 숱한 연습을 거쳐야만 숙련될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매크로화’(자동화)와 ‘병렬화’라는 이론으로 설명하는데, 숙련된 기술도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밖에 단계별로 하나씩 차근차근 ‘제대로’ 가르친다는 ‘스몰 스텝’ 유형의 교육이 지닌 폐해를 꼬집는다. ‘스몰 스텝’ 교육이란 가르치는 내용을 요소로 분해한 뒤, 그것을 기초적인 것부터 순서대로 나열하고, 그다음에 그것들을 조합한 복잡한 내용을 설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법을 가리키는데,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우화를 소개하면서 ‘스몰 스텝’ 교육은 결국 ‘교육 흉내’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고 일갈한다.
어느 날 한 의사가 매우 건강한 어떤 사람을 감기에 걸리게 하려고 생각했다. 감기는 (1) 열이 있고, (2) 두통이 나고, (3) 몸이 나른하다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카레가루와 고추냉이를 혼합한 것을 그 사람의 몸에 마구 발랐다. 이것으로 40도의 열을 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머리를 힘껏 때려서 두통이 생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몸에 납판을 여러 개 묶고 10킬로미터 정도 달리게 해서 몸이 나른해지게 만드는 것도 달성했다. 그럼 이 사람은 감기에 걸렸을까? (184쪽)
마지막으로 매우 인상적인 주장을 소개하자면, 저자는 “의식은 멍청하다. 무의식의 학습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도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고정된 방법으로만 실패를 거듭하면 학습은 제한된다. 다양한 유형의 시도를 통해서만 적절한 평가가 가능하게 되는데, 이것도 거의 무의식의 움직임이다”라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학습의 내밀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충분히 다양한 방법으로 실패를 거듭하면서 단순한 ‘기억’이 아닌 자신만의 ‘지식’을 쌓아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학습이자 교육이라는 것이다.
◆ 교육은 철저히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저자는 초중고는 물론 특히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교육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교육은 말할 것도 없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교사 측이 일방적으로 노력하더라도 교육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전달에 불과하다. 학생이 교사가 주는 정보에 대해 스스로 움직여, 파고들고(신체화한다) 확대해(관련짓는다), 그것을 활용하면서 생각한다, 그러한 구축을 위한 노력 없이는 지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협력을 통해 교사에게도 인지적 변화가 일어난다. 내게도 그러한 경험이 있다. “무리일 거야”, “이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전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고 내가 눈뜨게 된 경험이 몇 번이나 있다. 교육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이란 단순히 알고 있는 내용을 정리해 전달할 뿐인 활동이 아니다. (203쪽)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일부 연구자들도 공유하는 교육의 소박이론은 창발적 학습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깔아놓은 레일 위를 가능한 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게 만들기 위해, 문제를 사전에 준비하고 그 해결에 필요한 사항을 기초부터 순서대로 나열한다. 학습자는 목적지도 모르면서 묵묵히 그 레일 위를 나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길을 걷지 않는 교육을 하는 교육기관(즉 대학을 가리킨다)에 대해 “제대로 하라”고 호령하며, 공장의 제품 생산과 같은 시스템의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중략) 다양한 자원에 따른 흔들림은 배제되고 획일적인 자원과 그 숙달의 정도와 속도만을 다투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규격화된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른바 ‘기초학력’만으로는 임금이 터무니없이 낮은 타국에 일을 전부 빼앗겨버리게 될 것이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곧 창발시키기 위해서는 창발적 관점을 도입한 교육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203~204쪽)
◆ 책의 구성과 각 장 요약
이 책은 크게 머리말~2장, 3~5장, 6장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머리말에서 2장까지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분모이자 근간에 해당한다. 저자의 관점과 가치관, 자주 등장하는 개념들에 대한 설명이 주로 담겨 있다. 그리고 현실 속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관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자극한다. 3~5장은 구체적인 사례에 해당하며 각각 연습·발달·번뜩임이라는 인지적 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해도 분명히 존재하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끄집어낸다. 마지막 6장은 결론에 해당하며,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한계를 지적한다. 각 장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1장: 능력이라는 것은 추론abduction을 통해 발생한 가설이다. 거기에 부적절한 은유가 들어감으로써 잘못된 능력관이 퍼졌다. 그것은 능력의 안정성과 내재성이라는 견해다. 왜 이 능력관이 잘못되었는가 하면 그것들로는 사람의 인지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맥의존성文脈依存性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지적 변화를 생각할 때 능력이라는 가설은 사실 필요가 없다.
2장: 지식은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가 가진 인지 자원과 환경이 제공하는 자원 속에서 창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는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얻은 다양한 인지 자원과 환경(상황)이 제공하는 자원을 이용한 네트워킹과 시뮬레이션이 수행된다. 또한 지식은 환경이 제공하는 정보를 잘 조직함으로써 생산된다. 그러므로 지식은 사실로 파악해서는 안 되며, 끊임없이 그 자리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의미에서 사건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한 성질을 지닌 지식을 말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며 불충분하다. 말은 조잡한 전달미디어이기 때문이다.
3장: 연습을 통한 향상에는 파동이 있어서 직선적으로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형태를 그려낸다. 이 파동은 거기에서 쓰이는 복수의 자원이 매번 미세하게 다른 환경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중에 창발한다. 그리고 그러한 파동은 다음 도약을 위한 토대가 된다.
4장: 발달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그러나 발달에 따른 변화에는 파도가 있으며, 계단식으로 발달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파도는 거기에서 쓰이는 다양한 자원이 끊임없이 새로운 여지를 만듦으로써 발생하며, 이는 창발을 위한 토대가 된다.
5장: 번뜩임은 종종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번뜩임은 연습에 따른 변화나 발달에 따른 변화와 마찬가지로, 다시 말해 다양하고 복잡한 인지 자원과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합에 따른 흔들림이 그것이 실행되는 환경과 일체화될 때 창발된다. 그리고 그 과정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번뜩였을 때의 놀라움은, 실은 자신의 무의식적인 마음의 움직임에 놀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6장: 교육과 관련해서는 일상생활에서 만들어진 소박이론素朴理論이 많이 있다. 그 대부분은 학교 교육에서 유래한 매우 특수한 상황의 교육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그것들이 100퍼센트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어 생각지 못할 폐해를 가져와 인지적 변화에서 창발을 방해할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힌트는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의 암묵적 인식이론과 전통예능의 전승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