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맛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비만 2급 뚱보에게도 달콤한 인생이 찾아올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카톡의 프로필 이미지는 실제와 상관없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내가 사는 집,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쓰는 일상용품, 내가 읽는 책, 내가 바라보는 세계가 모조리 이미지화되어 피드로 박제되는 세상. 그럴듯하게 보기 좋은 이미지를 고르고 프레임을 잘 짜면 그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외모지상주의나 황금만능주의를 개탄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당연하지만 아무런 설득력도 갖기 어렵다. 내면에 담긴 감성과 지성, 도덕성 같은 것들은 아무리 강조해봐야 공허할 수밖에. 그러니 못생기거나 키가 작거나 뚱뚱한 사람이 요즘처럼 살기 힘든 때가 또 있었을까.
『뚱보, 내 인생』은 학교 건강검진에서 명실상부 비만 판정을 받은 뚱보 벵자멩을 주인공으로 하는 청소년소설이다. 십대 청소년들에게 외모가 중요하다는 것은 말하나마나이고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청소년들에게는 그 자체가 심각한 고민거리이자 인생의 짐이다. 특히나 뚱뚱한 몸은 게으르다거나 자제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저렇게 자기 자신을 방치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다니, 쯧쯧. 마치 식욕을 조절하고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도 되는 양 함부로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주인공 벵자멩이 비만 2급이라는 판정을 받는 것은 물론 많이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벵자멩이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벵자멩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 벵자맹의 장래 희망은 손님들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셰프가 되는 것이고, 벵자멩은 잘 챙겨 먹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에게 저녁식사란 잘 보낸 하루를 마무리 지어주거나 혹은 반대로 잘 보내지 못한 하루를 구제해주는 의식이 된다. 음식이 인생의 즐거움이고 꿈을 넓혀 나가는 기반이 된다면 뚱보가 대수랴. 문제는 뚱보 벵자멩에게 첫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쇼핑몰에서 몸에 맞는 옷을 찾기도 힘들고, 수영장에서는 물 밖에 나가기가 부끄럽고, 체육 선생님에게 언제나 지적을 당하는 벵자멩. 이런 뚱보에게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살과 인생 그리고 사랑의 함수 관계
뚱보가 인생을 즐기는 법
『뚱보, 내 인생』은 뚱뚱한 십대 소년에게 닥친 크나큰 인생의 고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잖아도 벵자멩에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엄마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 아빠를 향해 이를 박박 가는 중이고, 학교에서는 뚱보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찌질한 아웃사이더이다. 뭐, 그래도 괜찮다. 엄마와 나름 사이좋은 모자인 데다 성적도 나쁘지 않고 하나뿐인 친구 에릭하고는 ‘뚱보와 꺽다리’ 콤비로 시덥잖은 일상을 공유하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게다가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좀 많은가. 그러나 클레르를 좋아하면서부터 문제가 완전히 달라진다. 되는대로 사는 아이, 게으른 아이, 하루 종일 먹기만 하는 아이라는 비만아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벵자멩은 살을 빼기로 결심하고 비만 치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처음에는 삶은 야채와 무가당 요구르트, 하루 종일 계속되는 배고픔, 친구들의 놀림 등으로 고통받지만 조금씩 몸이 가벼워지자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이 즐겁다. 무엇보다도 클레르가 “너 용기 있다”며응원해주자 잔뜩 고무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최초의 결심은 느슨해진다. 맛있는 음식이 도처에 있고, 음식 솜씨 좋은 할머니가 특제 요리를 권하는데 당할 도리가 있나.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다이어트를 언제까지 해야 할까. 게다가 클레르에게 꽃다발을 보내 사랑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벵자멩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식이조절을 집어치웠을 뿐 아니라 학교생활도 엉망이 되고 만다. 친구관계도 망가지고 수업을 빼먹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벵자멩은 다이어트 전문가 대신 청소년심리상담가를 만나는 신세가 된다.
십대 소년에게 어리석은 실수나 잘못된 선택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상담을 거부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벵자멩에게 상담가가 말한다. “현재의 네 문제들이 아무리 현실이라 하더라도, 미래를 망치도록 놔두진 말아야 한다는 거지.” 어쨌든 벵자멩에게는 사랑하는 엄마, 걱정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좀 더 나은 방향을 가리키는 다정한 손가락들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벵자멩은 주위 어른들의 적절한 개입과 조언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똑바로 깨닫게 된다. 생활을 다잡고 클레르에게도 부담스럽게 다가가는 대신 편안한 친구가 되자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친구들을 초대해 근사한 요리를 대접하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고르는 등 인생을 즐기는 벵자멩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기대했던 대로 클레르는 벵자멩의 진가를 알아본다. 그리고 사랑이 이루어지자 놀랍게도 저절로 입맛이 줄어든다. 세상에, 다이어트가 이렇게나 쉬운 거였다니!
SNS가 대중화된 이래로 십대 청소년들의 우울증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이미지 우위의 세상에 대한 경고이다. 현대인에게 비만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십대 청소년들에게는 프로아나, 뼈말라족, 미용 몸무게 따위의 병적인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델 같은 ‘옷핏’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풍요로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뚱보, 내 인생』은 200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출간된 후 16개의 문학상을 휩쓸고 TV드라마로 제작되기까지 한 스테디셀러이다. 미카엘 올리비에는 비만 문제를 유머나 위로로 얼버무리지 않고 그 실체를 차분히 파고들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에 성공하고 있다. 여전히, 혹은 오늘날 더욱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의는 충분하다.